▲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비정규노동 문제 해결이 다시 화두다.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싼 논란이 뜨거워지고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자회사 방식을 용인하면서 하향평준화 경향으로 치우쳐 여러 문제를 낳고 있다. 문재인 정부 초기 비정규노동 문제의 실마리가 풀리는 듯하다 다시 어려운 형국으로 돌아가고 있다. 지금까지의 과정을 냉철하게 평가하고 세밀한 공약이행 로드맵을 다시 짜야 한다. 남북관계 개선으로 인한 지지율 반등에 자족하면 큰일 난다. 다시 초심을 회복해야 할 때다. 정권의 성패는 결국 일자리와 경제에 달려 있다. 그 모두와 직결된 핵심 민생의제가 비정규노동 문제다.

이른바 ‘비정규직 보호법’을 논의했던 2006년은 한국 사회 노동시장 양극화 문제를 개선할 결정적인 호기였다.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과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입법화 여부가 핵심 쟁점이었다. 노무현 정부가 기간제한 방식의 무기계약직 전환과 실효성 없는 차별시정을 받아들이는 바람에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결정적인 계기를 놓쳤다. 이는 대통령과 집권여당의 정치적 의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반증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남았다. 비정규직 보호법은 중규직으로 불리는 무기계약직을 양산해 고용안정 효과가 없진 않았으나, 노동계 우려대로 초단기계약과 간접고용 비정규직 전환을 가져와 부정적 효과가 더 컸다. 정부는 당시의 뼈아픈 실패 경험을 새겨야 한다.

한국 사회를 정말 바꾸려면 비정규직 규모를 줄이고 차별을 해소해야 한다. 비정규 미조직 노동자 노동기본권을 높이고 노조 조직률도 빠르게 올려야 한다. 저녁이 있는 삶, 노동이 있는 민주주의가 반향을 불러일으킨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이전과 비교하면 사회적 인식 수준도 대단히 높다. 지금이 호기다. 비정규노동 문제 해결을 위해 꼭 실현해야 할 6대 과제는 △포괄적인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 △초기업 단위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특수고용 비정규 노동자 노동자성 인정 △원청사업주 사용자성 인정 △고용보험 확충 △비정규직 수당 신설이다. 대다수가 문재인 대통령 공약에 포함돼 있는 내용들이다.

가장 심각한 비정규노동 문제인 고용불안과 차별시정을 해소할 핵심 입법과제가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과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실현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입구규제 방식의 정규직 일자리 표준모델과 차별해소의 대원칙이 실현된다면 한국 자본주의체제의 획기적인 변화가 가능하다. 진정한 선진국 반열로 올라설 수 있다. 비정규직 고용형태 중 최악인 간접고용과 특수고용 비정규직 문제 해결도 중요하다. 특히 특수고용 비정규직 노동자성 인정은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 취지와 맞물려 있기도 한 사안이다. 무노조 사업장 노동자가 너무 많은 조건에서 고용보험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것도 빠뜨릴 수 없다. 비정규직 수당 신설은 인건비부터 손대고 보자는 나쁜 사용자 관행을 바꾸는 시발이 될 것이다. 노동자에게 불리한 고용이라면 응당한 보상을 해 줘야 한다. 그래야 합리적인 계약이 될 수 있다. 6대 과제를 의미 있는 수준에서 실현하면 한국 사회의 불평등 지표는 바뀔 수 있다. 최저임금 인상의 경제적 선순환 효과도 가능하게 하는 경제·사회구조를 만드는 초석이 될 것이다. 재벌과 보수관료·수구언론 삼각기득권동맹의 격렬한 반발과 저항을 이겨 내기만 한다면.

문재인 대통령 스스로 촛불정부임을 수차례 자임했다. 바람직하다. 하지만 대통령만 개혁적이란 평가가 끊이질 않는다. 노동 문제는 민감한 계급 의제다. 최저임금 인상 후폭풍에서 확인됐듯이 악재에 대비하지 않으면 정책 효과는 반감된다. 난제인 비정규노동 문제를 해결할 핵심 개혁과제를 끈기 있게 밀고 갈 정치적 의지와 시스템이 필요하다. 사회적 대화를 통한 사회시스템도 제대로 작동돼야 한다. 촛불민심은 불평등과 양극화가 극단화된 재벌 독식 자본주의가 아니라, 국민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노동자가 제대로 대우받고 권익을 보장받는 사회를 원했다. 비정규노동 문제 해결을 위한 6대 과제는 시대적 요구다. 그동안 치른 비정규 노동자들의 희생과 고통이 너무 막심했다. 비정규 문제는 노동문제를 넘어 인권문제고 사회문제다. 촛불항쟁을 기화로 반전의 계기가 마련된 만큼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namsin196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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