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포괄임금제 약정으로 초과근로 기록이 없는 노동자의 돌연사를 업무상재해로 인정했다. "출퇴근시간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가 없어 업무시간의 증가를 확인하기 어렵다"며 산업재해를 불승인한 근로복지공단 판정을 뒤집었다. 법원의 이번 판결로 회사가 형식적으로 제출한 자료만 놓고 산재 여부를 판단하는 공단의 재해조사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부산고법 2행정부(재판장 박종훈)는 혈관이 찢어지는 '대동맥 박리'로 사망한 건설회사 관리자 A씨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취소 소송에서 이같이 판결했다. A씨는 대전 유성구 음식물·음폐수 바이오가스화시설 설치공사에서 철근콘크리트공사 도급을 받은 D개발의 관리자다. 그는 2015년 6월19일 밤 10시께 집에서 잠을 자다 가슴 부위 심한 통증으로 병원 응급차에 실려갔다. 그는 대동맥박리 치환술을 받았으나 다음날 오후 1시51분 사망했다. A씨 유족측은 "고인이 사망 3개월여 전부터 공무부장을 맡아 공사현장으로 출근하게 되면서 과로를 했다"며 산재신청을 했다. 그러나 공단은 "A씨의 출퇴근시간에 대한 객관적 자료가 없어 업무시간 증가를 확인하기 어렵다"며 "고인의 사망원인은 만성 고혈압 관리 소홀 때문"이라면서 반려했다.

그러나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법원은 "회사가 고인과 포괄임금제 약정을 하고 출퇴근시간과 휴가사용 등 근무실태에 대해 별도 기록과 관리를 하지 않은 것"이라며 "(회사가 제출한) 근무내역표의 근무시간을 초과해 근무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고혈압 관리를 소홀히 했다”는 공단측 주장은 "근무지 변경과 함께 업무내용 변경으로 고혈압 치료를 적절히 받지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조철기 변호사(법무법인 조앤김)는 "지금까지는 사용자가 제출하는 형식적인 서류를 보고 업무상재해 여부를 판단했는데 이번 사건은 동료의 증언을 비롯해 사용자의 주장을 뒤집을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를 가지고 법원이 실제 근무시간을 추정해 업무상재해를 판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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