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동희 공인노무사(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2016년 자살·정신질환으로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 보상을 신청한 사건 169건 중 70건이 업무상재해로 인정됐다. 2017년에는 186건 중 104건이 승인됐다. 그런데 법원에서 자살·정신질환 사건은 2016년 18건 중 6건(33.3%), 2017년 34건 중 10건(29.4%), 2018년 상반기에는 17건 중 13건(76.5%)이 업무상재해로 확정됐다. 근로복지공단의 행정소송 패소율이 2017년 11.4%, 2016년 11.1%임을 감안하면, 자살·정신질환 패소율은 매우 높다. 이는 공단의 자살·정신질환 기준과 판정에 있어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보여 준다.

우선 자살·정신질환의 법령 요건과 이에 대한 공단 해석의 소극성이 문제다. 정신질환의 경우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 별표3에 ‘외상후 스트레스장애, 적응장애, 우울증 에피소드’가 명시돼 있으며, 공단 지침(정신질병 업무관련성 조사지침, 2016-11호)에는 ‘불안장애, 적응장애, 급성스트레스반응, 수면장애’가 추가로 규정돼 있다. 시행령 별표는 하나의 예시기준에 불과할 뿐 명시되지 않은 질병이더라도 업무기인성이 인정되는 이상 판단할 때 이를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공단은 특히 정신질환 중 공황장애·수면장애·양극성장애에서 소극적인 판단으로 일관하고 있으며, 정신질환의 경우 유발 측면보다 ‘악화·발현’ 측면에서 판단이 미흡하다.

자살은 산재보험법 37조2항 단서에서 “부상·질병·장해 또는 사망이 정상적인 인식능력 등이 뚜렷하게 저하된 상태에서 한 행위로 발생한 경우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유가 있으면 업무상재해로 본다”고 규정돼 있다. 이에 대해 산재보험법 시행령 36조에서 3가지로 구분하고 있지만, 이 또한 예시규정으로 봄이 타당하다. 또한 공단은 법령에서 “정상적인 인식능력 등이 뚜렷하게 저하된 상태”를 ‘정신적 이상 상태’와 ‘정신적 이상상태임을 의학적으로 인정하는 경우’로 한정해 해석하는 경향이 강하다. 공단의 위법한 해석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위임입법의 한계를 벗어난다는 지적을 받는 산재보험법 시행령 36조 개정이 긴요하다.

둘째, 정신질환이 산재보험법 37조1항2호에 해당됨은 명확하지만, 자살이 업무상질병인지 여부는 불명확하다. 산재보험법 37조2항 단서 규정에 있지만 이를 엄밀하게 질병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오히려 법령 취지와 판례 법리상 업무상사고에 가깝다. 그러나 자살을 포함해 정신질병은 정신건강의학과의사 2인 외에 직업환경의학과·법률가 등이 참여하는 판정위원회에서 판정하고 있다. 법률적·규범적 관점에서 상당인과관계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의학적 원인주의에 입각해 판단하는 것이다. 따라서 법률적·규범적 판단 원칙상 판정위원회에서 임상의사를 배척하는 것이 타당하다.

셋째, 재해조사의 정밀성을 높여야 한다. 공단이 패소한 판결을 분석한 결과 공단 재해조사 과정에서 지침에 기재된 내용을 조사하지 않은 경우뿐만 아니라 조사 과정에서 업무관련성을 부정하는 회사의 진술에 근거한 경우가 많았다. 회사의 인사권 행사가 정당하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하더라도 그것이 업무상재해 인정 여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므로(대법원 2010. 4. 25. 선고 2010두710 판결), 재해자의 주장을 명확히 반증하는 증거가 없는 이상 뇌심혈관계질환 사안처럼 재해자 주장으로 사실인정을 함이 타당하다. 또한 관련자 문답, 경찰 조사 적극적 반영과 추가조사 요청, 병력의 치료 조회와 정신병력 상태에 대한 정리 같은 적극적 조사가 필요하다.

넷째, 심의·판정에서 ‘동종 근로자 기준, 개인적 취약성, 자살 이전 정신병력 상태’가 아니라 ‘당해 근로자 기준, 실질적인 업무스트레스 과중 여부’를 면밀하게 반영해서 판단해야 한다. 법원은 “우울증을 앓게 된 데에 망인의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 등 개인적인 취약성이 영향을 미쳤다고 하더라도 업무상과로나 스트레스가 그에 겹쳐서 우울증이 유발 또는 악화됐다면 업무와 우울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함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할 것이다(대법원 2011. 6. 9. 선고 2011두3944 판결)”라고 판시했다. 또한 자살 사건에서 “내성적인 성격 등 개인적인 취약성이 자살을 결의하게 된 데에 영향을 미쳤다거나 자살 직전에 환각·망상·와해된 언행 등의 정신병적 증상에 이르지 않았다고 해서 달리 볼 것은 아니다(대법원 2017. 5. 31. 선고 2016두58840 판결)”고 판시했다. 개인적 취약성이 있다 하더라도 이로 인한 악화 발현 여부를 중요하게 보고, 정신병적 증상을 자살의 인정요건으로 보지 않는 법원 판단 원칙에 따라 심의·판단을 해야 한다.

결국 법률적 판단을 중심으로 하지 않는 구조를 바꾸지 않는다면 공단의 패소율은 높을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심리부검 또한 마찬가지다. 중앙심리부검센터조차 심리부검을 하지 않고, 행정소송 때 대학병원조차 심리부검이 무엇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특별진찰 형태로 이를 추진한다면 지난 10여년의 과오를 반복할 뿐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