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우람기자

촛불혁명 이후 한국 사회가 나아갈 방향은 어딜까.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지지부진한 사회개혁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진보적 의제 공론화 장이었던 한국사회포럼이 7년 만에 문을 열었다. 포럼은 2002년 2월 노동·시민·사회단체와 개혁적 학자·연구자들이 만나 분야별로 사회발전을 위한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명박 정권에서 박근혜 정권으로 넘어가는 시기였던 2011년 2월 활동을 멈췄다가 올해 활동을 재개했다. 촛불혁명이 계기가 됐다. 양대 노총을 비롯한 36개 단체가 ‘2018 한국사회포럼 기획단’을 꾸려 1년간 행사를 준비했다. ‘한국 사회 전환 키워드’를 행사명으로 삼고 성찰·교차·전환을 향후 사회운동 지향점으로 제시했다.

국민연금·정치개혁·미투운동·노조 조직화 등을 주제로 주장과 토론의 향연이 펼쳐졌다. 김귀옥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상임공동의장은 기획단을 대표해 "헬조선이 되는 동안 얼마나 많은 노동자·시민이 다치고 저세상으로 떠났는가를 생각하면 참담함을 면하기 어렵다"며 "경제 민주화가 더 이상 뒤밀리지 않도록 머리를 맞대어 논의해 웰조선의 길을 모색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안 없는 비판으로 국민연금 불신 키워"=포럼은 지난 12일부터 이틀간 열렸다. 첫날 행사 장소는 서울 공덕동 경의선 공유지였다. 경의선 철도를 지하화하면서 생긴 땅이다. 빈 공간의 사유화와 국유화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텃밭에 채소를 심고, 문화·예술활동 거점으로 활용하고 있다.

한국노총은 공유지 안에 있는 가온마루에서 ‘국민연금, 청년과 노인이 말한다’ 세션을 열었다. 김정목 한국노총 정책차장의 사회로 세대별 참가자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는 방식으로 세션이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올해 8월 국민연금재정추계위원회 발표를 어떻게 지켜봤을까.

정초원 복지국가청년네트워크 활동가는 “청년 세대에게는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이 유독 많은데 언론이 이를 조장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2040년이 되면 가입자 2명이 1명을 부양해야 한다는 자극적인 헤드라인이 나오고, 국민연금을 지켜야 할 여당이 이를 ‘폭탄’이라고 표현하면서 우려를 키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구정우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사무국장은 “보수쪽에서는 철저하게 재정안정 중심으로 프레임을 짰는데 특히 민주정부 시기에 국민연금 공격이 심하다”며 “이 같은 논쟁과 언론기사의 가장 큰 문제점은 대안과 해결책이 없다는 것인데, 비판이 반복되면서 불신이 커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김윤영씨는 “어느 언론이 ‘민간보험보다 못한 국민연금’이라는 헤드라인을 뽑았는데 둘을 특정 시점에서 금액으로만 비교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노후소득 보장 문제는 금액의 작고 많음보다는 안정적으로 보장을 받을 수 있는냐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연금과 더불어 기초연금과 퇴직연금 역할을 강화해 다층적 노후소득 보장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고현종 노년유니온 사무처장은 “노년기에 접어들면 복잡한 것을 싫어하게 되는데, 다층 체계로 서너 군데에서 연금이 나오면 어디서 나오는지도 모르고 한 곳에서 (연금이) 안 들어오면 그것도 또 모르게 된다”며 “최저생계비 대비 얼마 정도 지급되는지가 중요하며, 다층 체계보다는 통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선거제도 개혁해 노동자 대변 강력한 정당 만들자"=같은 시각 ‘그라운드폴’에서는 정치개혁공동행동이 ‘정치개혁 대중운동 워크숍’을 개최했다. 발제를 맡은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는 “촛불을 들었는데, 정치는 바뀌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촛불 이후에도 대한민국 국회는 여전히 ‘50대 이상, 남성, 기득권’으로 요약되는 사람들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승수 공동대표는 “직접민주주의를 확대하려면 개헌이 필요하고, 이 모든 것은 결국 국회를 통해야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 국회에서 이런 일들이 제대로 진행되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며 “문제해결 능력이 있는 국회, 국민 기대를 배반하지 않는 국회를 만들려면 선거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대안으로 내놓았다. 승자독식 다수대표제를 배제하고 정당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자는 주장이다. 그는 “스웨덴·독일 같은 유럽 복지국가에서는 비례대표제 선거제도를 통해 노동자들을 대변하는 정당이 유력한 정당이 될 수 있었고, 그래서 복지국가를 만들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공유지 ‘꽃들의 놀이터’에서 ‘미투운동의 쟁점과 전망’을 짚는 행사를 기획했다. 이재정 한국여성단체연합 활동가는 △미투운동에 대한 강력한 지지와 연대 확장 △피해자 인권 보호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진상규명 △제대로 된 법·제도 개선운동을 미투운동 활동방향으로 제시했다.

그는 “미투운동을 전후로 하는 일련의 흐름 속에서 대중 인식은 성장했고, 여성들의 감수성과 성평등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며 “남성들의 인식수준과 제도적 시스템을 다루는 권력에 대한 인식수준이 올라오지 못하는 상황인 만큼 전 사회적인 성찰과 변화가 촉구된다”고 말했다.

첫날 저녁 공유지 야외상설무대에서 개막식을 기념해 사회운동가 6명이 발표를 했다. 조돈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공동대표는 “노동계급의 헤게모니 확보와 사회적 대화의 성공을 위해 기업별노조주의 한계를 극복하고 국민 지지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며 “집단 이익보다는 노동계급 내에 비정규직·여성·청년·노년 등 취약집단의 보편적 이익을 지향해 신뢰와 계급 헤게모니를 증대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우람기자

◇"10만 조직화 바람, 노동악법 철폐로 이어 가야"=이튿날 서울 대흥동 서강대 정하상관에서 세션이 계속됐다. 민주노총은 이날 오후 정하상관 215호에서 ‘촛불 이후 노동자의 새로운 조직화, 어디까지 왔나’ 세션을 펼쳤다.

올해 4월 민주노총은 촛불항쟁이 본격화한 지난해 1월 이후 7만6천여명의 노동자들을 노조로 조직했다고 밝혔다. 국내 대표 IT기업인 네이버와 넥슨에 노조가 생겨 민주노총에 가입했다. 포스코에도 금속노조 산하 조직이 생겼다. 공공운수노조는 "5월부터 8월 사이 조합원이 1만3천여명 늘었다"고 밝혔다. 합치면 10만명에 달한다.

김태현 민주노총 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1987년 노조 조직화 같은 혁명적 격변은 이어지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촛불항쟁은 일정한 단절을 느낄 만한 변화를 이뤄 냈다”며 “이명박·박근혜 정권 10년간 수구보수 정권이 가한 각종 노조탄압과 친기업 행보가 노조할 권리를 헌법 장식물로 만들었는데, 이에 대한 분노와 권리의식이 노조 결성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그는 △단결권 침해 각종 노동악법 철폐 △남성·정규직·대기업 노동운동 탈피 △사회연대 재구축을 민주노총의 과제로 제시했다. 김 연구위원은 “노조운동 의제와 관련해서도 보다 목적의식적인 재구성 노력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며 “백화점식 사업과 과제를 열거하기보다는 노조 조직화에 진전을 이룰 핵심 과제를 선정하고 이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문했다.

전교조와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는 ‘문재인 정부 교육개혁 후퇴와 향후 과제’를 논의하는 세션을 마련했다. 이현 전교조 참교육연구소장은 “교육개혁을 추진하기 위한 객관적인 상황은 매우 좋다”며 교육개혁 주체 형성을 당면과제로 꼽았다. 실제 올해 6·13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14명의 진보 성향 교육감이 당선했다. 이를 동력으로 국가교육회의를 대대적으로 재편하자는 주장이다. 이 소장은 “지금처럼 관료주도성이 유지되는 상황에서 교육개혁은 불가능하다”며 “국가교육위원회를 조속히 출범하고 국가교육회의 구성원을 현장 교육전문가로 물갈이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한국사회포럼은 이틀간 20여개의 개별세션과 개막 발표, 플로어 토론을 한 뒤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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