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교육노동자 한 분이 36년의 긴 교육여정을 끝내고 정년퇴직을 했습니다. 전교조 결성에 참여했다가 해직되기도 했던 ‘늘 푸른 청년’을 자처하는 유기창 선생님입니다. 정년퇴직과 함께 그동안 썼던 교단일기를 비롯한 편지글 등을 지금 시점으로 다시 정리해서 책을 썼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책 제목을 <우물쭈물하다 끝난 교사 이야기>로 하고, 부제로 ‘부끄러움의 역설, 늘청 유기창의 교육인생 회상록’이라 붙였답니다.

‘교장·교감 되지 못한 것이 교육자로서 실패’라는 선배교사의 말에 평교사로 정년퇴임하겠다는 결심을 실천했고, 교사로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한 36년이지만 그는 고백합니다.

“많은 시간을 실패하면서 지나온 교사 생활이었습니다. 애는 썼으나 서툴렀습니다. 미안한 일입니다. 36년 동안 학생들을 만나면서, 가르친 것이 아니라 학생들을 그저 만나 온 것은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 때는 참 부끄럽습니다. 학교에서 교사가 가르쳐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괴로워하다 마친 36년이었습니다.”

학교현장 최전선에서 학생들과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괴로워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 조건에서 최선을 다했음에도 스스로 만족할 수 없는 결과를 놓고, 그 모든 잘못을 상대에게 떠넘기지 않고 자신의 탓으로 끌어안고 몸부림치는 이 나라 교사의 모습을 대변하는 것 같아 안타깝고 몹시 아픕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다르게 얘기합니다. 30년 전 어느 중학교 때 교지편집위원과 지도교사로 만났던 학생의 말입니다.

“저는 참 행복한 제자입니다. 평생을 관통해 가르침을 주시는 선생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저를 가르치려고 무엇을 하지 않으시는데도 선생님 곁에 있으면 배우게 됩니다. 듣는 모습, 느리고 천천히 생각을 말씀하시는 여백, 서두르지 않고 기다려 주는 모습에서 삶의 자세를 배웁니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보여 주십니다.”

동료이자 후배교사인 홍종언 선생님도 얘기하시네요.

“제게 선생님은 참 좋은 인생 선배이자 말동무였습니다. 주변에 좋은 분들이 많이 계시지만 맘을 툭 터놓고 대화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특히 사회개혁에 대해 고민을 나누는 것은 더더욱 어렵습니다. 그러나 선생님과는 일상생활, 아이들의 희망과 고통, 교내 민주주의, 교육제도, 각종 사회적 이슈 등 어떤 사안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함께 고민하는 등 나눔의 영역에 제한이 없었습니다. 꽉 막힌 틀에 갇혀 자유로운 사고와 행동이 극도로 규제당하는 이 답답한 현실에서 완고한 기성세대 의식을 훌쩍 뛰어넘은, 청년보다 더 청년 같은 분이었습니다. 앞으로 선생님이 안 계신 교정에서 누굴 붙잡고 이야기해야 할지….”

본인의 사양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이 마련한 출판기념회는 너무나 따뜻했습니다. 그가 36년간 거쳐 온 8개 학교 제자들과 선후배 동료교사들이 골고루 참석한 자리에서 그는 또 부끄러움을 얘기하고 그동안 본의 아니게 상처받은 학생을 염려했지만 함께한 우리 모두에게는 크나큰 위로와 자기 성찰, 그리고 다짐의 시간이었습니다. 정년퇴직을 한 유기창이었지만 그 시간만큼은 우리 모두의 교사였고 가장 멋진 수업시간이었습니다. ‘부끄러움의 역설’, 참 멋진 주제였습니다.

그러면서 난맥상에 빠져 있는 우리나라 교육현실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촛불혁명 이후 가장 개혁 속도가 더딘 분야가 교육과 노동이라는 것은 정평이 나 있습니다. 1년 만에 책임을 물어 장관을 경질하는 것만 봐도 충분히 짐작할 것 같습니다. 특히 교육은 진전은커녕 후퇴하고 있다고 당사자들은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고도의 전문성과 지속성을 생명으로 함에도 여론에 맡긴 단기적 처방으로 정책을 마련한다거나 성과에 조급해하는 것은 교육적이지 않습니다.

우물쭈물하는 것처럼 보이는 유기창의 교단 36년도, 역설적이게도 그 안에는 탄탄한 교육철학이 있었고 그것을 관철하기 위해 일관된 교육적 삶을 살았습니다. 한 교사의 교육도 이런데 하물며 한 나라의 교육은 말해서 무엇하겠습니까? 전교조 등 책임 있는 교육단체들이 중심이 돼 정부와 함께 우리 교육을 혁명적으로 개혁해 끌고 가야 할 때입니다.

전태일재단 이사장 (president11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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