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강경 주도세력 퇴사를 추진하고 온건 가입자는 개별 면담으로 탈퇴를 유도한다.” “자구책 일환으로 ○○관리팀 아웃소싱을 철회한다.” 무슨 사건일까. 노동조합을 잘 모르는 이들도 알아챌 만하다. 노동조합 파괴의 전형적인 시나리오. 어느 회사일까. 렉스필드. 이름은 들어 봤나. 내로라하는 거대 제조업도 아니고 생소하기까지 한 그저 그런 작은 골프장이다. 2012년 이곳에서 진행된 노조파괴 작전이 ‘문서’로 확인됐다.

지난주 중부지역공공산업노조 렉스필드CC지부 집행부가 한국노총 중앙법률원을 찾아왔다. 위 문건을 근거로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의 엄벌을 구하겠다고.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회사가 계획한 시나리오대로 노조파괴가 진행돼 왔음이 확인되고 있다는 게 지부장의 설명이다. 최근 진행된 부분파업에 대한 회사의 대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천막농성장은 고사하고 노동조합의 요구사항이 적힌 플래카드 한 장도 회사 업무방해라고 위협하고 손해배상 청구를 운운하며 협박한다.

이번 사건은 ‘설마 여기까지?’라고 했던 물음을 무색하게 만든다. 노조파괴가 넓고 치밀하게 진행됐다고는 하지만 정말이지 여기까지 있었으리라고는 감히 생각지 못했다. 대부분 아웃소싱을 하고 정규직이야 그저 수십 명에 불과한, 무엇보다 조합원들의 임금이라야 고작 최저임금 수준을 겨우 넘기는 수준의 사업장이다. 그런데 실제 실행됐다. ‘지난 세월 상당한 기간 우리의 노동현장에서는 사실상 노동조합활동이 불가능했다’는 결론에 이른다.

다양한 자들이 가담했다. 사용자·전문가, 마지막으로 정부. 먼저 사용자를 따져 보자. 렉스필드는 웅진그룹 계열사로 알려져 있다. 웅진에서는 극구 부인하지만 사업장 규모와 형편을 볼 때 렉스필드 단독으로 판단했을 리 없다는 지적이다. 그동안 거대그룹 차원에서 계열사·협력업체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자행된 노조파괴 사건은 부지기수다. 삼성·현대·포스코·이랜드·웅진. 노동현장에는 악명을 떨쳐 왔고 최근에서야 관련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그야말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그룹들이 아닌가. 대부분 사용자가 먼저 시작했다.



‘노사문제 컨설팅’이 한시절 유행했다. 여기에는 변호사·노무사·교수·박사 등 전문가를 자임하는 자들이 참여했다. 이들은 아마도 ‘노동자와 노동기본권을 지키고 바로 세우는 데 기여하겠다’는 다짐으로 전문가의 길에 들어섰을 게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높은 이상은 고사하고 상식수준의 도의마저 버린 자들이 속출했다. 변질한 이들을 두고 시장에서는 ‘노조파괴 전문가’라 불렀다. 점점 많은 사실이 확인되고 있지만 이들은 노동법 개악을 위해, 사용자의 변호를 위해 참으로 열심히도 뛰었다.

노조파괴 문건을 버젓이 만들어 큰돈을 받고 팔고, 때로는 재판정에 제출할 증거조작에도 나선다. 부끄럼과 염치가 사라진 지 오래다. 렉스필드의 노조문건을 보라. ‘이 전 사무장을 상대로 흥분을 유도하고 지시불이행으로 징계’는 ‘코스팀장과 시나리오를 짜 이아무개 전 사무장을 1차로, 김아무개 전 지부장을 2차로 해고한다’는 계획의 세부 실행내용이다. 조잡하고 비열해 얼굴이 화끈 거린다. 만약 유능한 ‘전문가’가 이런 내용 작성을 주도했다면? 그가 과연 전문가인가? 아니면 작가인가?

“관공서와 긴밀하게 연락체계를 유지해 사전 정지작업을 한다.” 위 문건에 적시돼 있다. 억울할 수도 있다. ‘우리와는 관계없다’고, 모든 ‘관공서’가 주장하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노동조합을 만들어 본 노동자들에게 물어보라. ‘관공서’가 과연 억울한지. 관공서의 기대와는 달리, 그러나 노동자들은 예상했던 대로 ‘관공서가 노조파괴에 도움을 줬다’는 의견이 훨씬 많을 것이다. 단순한 의심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드러나는 사실이고, 범죄행위임이 밝혀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삼성 노조파괴 사건이 그렇다. 앞으로 진행될 수사과정에서, 렉스필드 사용자가 관공서 누구에게 어떤 도움을 받았는지도 밝혀지리라.

우리 사회가 풀어 가야 할 켜켜이 쌓인 숙제가 수없이 많다고 한다. 노동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잘 진행되고 있다는 평가는 드물다. 고작 1년 만에 장관이 경질된 것이 증명한다. 실패를 돌아보고 생각을 바꿔야 한다. 조언한다면,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문제가 없겠지만 그래도 경중을 따져서 계획을 세워야 하지 않겠나. 노동과 고용, 기본권과 일자리. 헌법 아래, 헌법에서 부여받은 책무 중 노동부는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가? 노동부는-누가 뭐래도-노동과 기본권 보장을 앞세우고 실현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그리고 핵심 제도가 노동조합이다.

노동자와 노동조합이 노동현장의 주체다. 우리 사회 주체다. 렉스필드의 노조파괴 문건은 지금도 여전히 주체인 노동조합이 위협당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들이 살아갈 수 없는 노동환경에서 어찌 노동문제가 풀리겠는가.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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