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올더스 헉슬리는 <멋진 신세계>에서 미래사회 런던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모든 것은 자동생산된다. 사람은 공장에서 수정되고 제조된다. 생산단계부터 사람의 등급이 결정되고, 생산된 이들은 등급에 따라 다른 교육을 받는다. 어릴 때부터 그들은 각자의 등급이 자신의 능력에 가장 알맞으며 자신의 현재 상태가 가장 행복한 삶이라고 교육받는다. 모두가 예외 없는 삶이다. 개천에서는 용이 나지 않고, 등급이 정해지면 그 등급이 담당해야 하는 직무에서 벗어날 수도 없다. 올더스 헉슬리는 과학기술이 발달한 사회에서 가능한 디스토피아를 그렸으나, 우리는 지금의 현실에서 그런 계급사회를 목도한다.

한국 사회는 학교 교육에서부터 사람의 등급이 정해진다. 그리고 등급에 따른 직무도 정해진다. 일부만이 높은 등급의 직무를 담당하게 된다. 낮은 등급을 받은 사람은 단순직무·비핵심직무에 배치되는 것이 당연하며, 이 노동자들은 낮은 임금을 받게 된다. 낮은 등급의 직무에 들어가면 그곳에서 벗어날 수 없고 평생을 낮은 임금으로 일해야 한다. 그 사람의 삶의 역사, 개인의 가능성, 노력, 성실함, 그 노동의 사회적 가치는 인정되지 않는다. 과도한 상상이라고 생각하는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굳이 ‘직군’을 분리하고 직무에 따른 임금체계를 만드는 과정을 보면 이 불행한 상상이 현실화되는 것 같다.

정부는 올해 1월 ‘표준임금체계(안)’이라는 이름으로 공공부문에서 정규직으로 전환한 청소와 경비·조리·시설관리·사무보조 10만명에 대한 임금체계를 만들었다. 모두 5개의 직무등급을 두고, 6개 승급단계로 구성했다. 각 등급과 단계의 급여율은 최저임금의 일정비율로 구성된다. 이에 따르면 가장 높은 등급의 노동자가 15년간을 일해서 최고 단계로 승급할 때 받을 수 있는 최대임금은 최저임금의 142%다. 이 직무의 노동자들은 중위임금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저임금 노동자로 평생을 살라는 것이다. “당신들이 하는 일의 가치가 낮으니 당신들은 평생을 저임금으로 살아야 한다”는 규정이 신분제도가 아니고 무엇인가?

모두가 동일한 임금을 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임금 차이의 기준은 그 사회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에 따라 달라진다. 예전에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낮은 임금을 주는 것이 당연했지만 지금은 그럴 경우 처벌된다. 근속은 의미 있는 임금기준이었지만, 지금은 근속을 중요한 기준으로 여기지 않는다. 사회의 가치가 변화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직무급’이 대안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왜 ‘직무’여야 하는가? 직무가 주요 기준이 된다 하더라도 직무 평가기준은 시장가치여야 하는가, 사회적 가치여야 하는가? 노동자의 건강한 삶을 보장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비용은 임금에 어떻게 반영돼야 하는가? ‘직무의 시장가치를 기준으로 삼는 직무급제’는 신자유주의적 경쟁을 주요 가치로 삼고 있는 것일 뿐이다.

‘임금’은 점차 신분의 표지가 되고 있다. ‘임금은 낮지만 보람 있는 직업’은 수사로만 존재할 뿐이다. 높은 임금이 전리품이고, 낮은 임금은 패자가 감당해야 할 처벌로 간주하는 것이 타당한가? 우리 사회가 ‘신자유주의적 경쟁’ 가치를 수용할 것이 아니라면 임금 격차를 줄이고, 노동자 전체의 삶과 미래를 고려하며, 공동체를 살리는 임금체계를 고려해야 하는 것 아닌가. 기업별 임금격차가 심각한 지금 기업 단위를 넘어서는 임금체계는 필요하다. 그러나 동시에 고용형태와 직무에 따른 임금격차를 줄이기 위한 임금체계 개편도 필요하다. 그러려면 임금의 기준이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이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지난달 10일 ‘공공병원 노사정TF’에서 공공병원 임금체계 가이드라인에 합의했다. 최고임금이 최저임금의 1.17배에 불과하고 직군 이동도 안 된다. 보건의료노조에만 해당하는 합의라고 하지만 정부가 경제사회노동위원회를 통해 관철하려고 하는 직무급제가 결국은 ‘직무위계적 임금체계’임을 보여 준다. 모든 노동은 연결돼 있다. 병원이 ‘치료와 회복’을 제대로 하려면 의사와 간호사와 간병인, 환자이송 노동자, 시설관리 노동자, 영상사, 조리원, 미화원 등 모든 병원노동자의 노동이 필요하다. 이들 모두가 합력할 때 치료와 회복이 가능하다. 필요한 노동을 하는 어떤 노동자들에게 “당신들의 직무가치가 낮으니 낮은 임금을 받아도 된다”고 결정할 권한은 지금 그 누구에게도 없다. ‘멋진 신세계’는 결코 멋지지 않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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