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민족 최대 명절’ 추석이 지났다. 중추절·가위·한가위. 불리는 이름만으로도 참으로 좋은 날이구나 싶다. 한 해 농사를 마무리하면서 오곡을 수확하는 시기이므로 가장 풍성한 명절이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그랬다. 그러나 오늘 우리에게는 꼭 그런 건 아니다. 명절이 아니라 오히려 더 힘든 날인 이들이 많다. 경제적으로 말이다. 하루벌이 생활 노동자들은 일하는 날이 줄어서, (이들보다는 낫다고 해야 하나) 하루라도 더 일해야 생계가 가능한 노동자들에게는 애초 '빨간날'은 없다. 이들 노동자들에게 추석은 그 어느 때보다 괴로운 날이지 않겠나.

올해도 이맘때 등장하는 뉴스, 단연 최저임금 문제다. 추석 전후가 되면 “체불임금이 1조원을 육박했다. 정부는 이런 저런 조치를 취하겠다고 한다”는 투다. 지난해 것을 그대로 써도 될 정도로 굳이 기사문을 새로 작성할 필요조차 없다. 한심하고 안타깝다. 비교가 무의미하지만, 몇 해 전만 하더라도 1조원 정도였던 1년간 체불임금이 1조4천억~1조5천억원에 이를 정도로 많아졌다. 무려 일본의 3배 내지 최대 10배 규모라고 한다.

과연 체불임금은 해소할 수 없는 불치의 병일까. 아니면 방치하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후자가 맞을성 싶다. 우리 사회 각 주체가 “내 일이 아니다”는 이유로 외면하는 모습이 현실이다. “기층 노동자의 임금체불은 의식주 문제고 가정파탄의 원인입니다.” 어느 노동전문가는 체불임금 문제의 심각성을 이렇게 말한다. “고용노동부는 그럴듯한 모양의 힘 있는 노동자들의 목소리에만 신경 쓰고, 총연맹은 표 많은 단위노조와 산별 눈치만 보고, 변호사 등 실무전문가라는 자들도 인기영합에 머문 지 오래입니다”며 현실을 비판했다.

체불임금 해소 방법은 수없이 연구됐다. 그런데 왜 해결이 되지 않을까. 1주체는 사업자의 양심이겠지만 하루에도 수십 번 바뀌는 게 인간의 맘 아닌가. 그래서 제도가 있지 않는가. 우리는 어떤가. 체불임금 처벌과 예방 두 측면 모두, 제도가 형편없다. 처벌 사례만 보자. ‘처벌만이 능사가 아니다’는 주장을 받아들여 반의사불벌죄(피해자의 의사를 고려해 처벌 여부를 가리는 죄)로 바꾼 지 12년, 그 결과가 지금의 모습이다. 체불임금 내용도 날로 악성화하고 있다. 아르바이트 청소년들의 소액임금을 상습적으로 떼먹은 부도덕한 프랜차이즈 사업자가 대표적인 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강력한 처벌이 불가피하다. 징벌적 손해배상도 도입해야 한다. 아예 사업장 폐쇄 같은 행정벌은 필수다.

관건은 실천의지다. 체불임금을 해결하는 좋은(?) 예를 소개한다. “바퀴벌레!” 푸틴은 임금체불을 일삼은 재벌을 사회를 좀먹는 ‘바퀴벌레’라면서 체불임금을 해결하지 않으면 처벌을 감수하라고 경고했다고 한다. 물론 우리에게 곧장 적용하기 어렵겠지만 ‘노동자의 임금을 지켜 주겠다’는 그 정신만은 새겨볼 만하지 않은가. ‘그 무엇보다 임금만큼은 지켜 주자’는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자본가가 아닌) 노동자에게 임금만큼 중요한 게 또 어디 있는가. 아예 헌법에 못을 박아도 좋겠다. 헌법이 별건가.

앞서 소개한 방법들은 간접적이다. 시간이 걸린다. 노동자에게는 하루가 힘겹다. 아예 국가와 사회가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 이러한 체불 구조를 만든 원죄다. 1조원이라면 많은 돈이다. 그러나 노력하기에 따라서는 0원 수준으로 만들 수도 있다. 당장의 체불 1조원(그 이상이더라도)은 즉시 해결해야 한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큰 돈’이 아니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규모(1조5천억달러, 세계 11위)나 500조원을 넘나드는 한 해 예산에 비하면 말이다. 나랏돈을 소중하게 써야겠지만, 1조원을 투입해서 20여만명의 노동자와 그의 가족에게 추석을 돌려줄 수 있다면, 나름 효율적인 예산 집행이지 않는가. 1조원 중 상당액은 체불임금 사업주에게 구상할 수 있는 돈이기도 하지 않는가.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이번 추석에는 최저임금에 관한 얘기도 많았다. 필자가 들은 말 중 하나다. “매월 180여만원이 더 지출되더군요.” 참으로 힘겹게 여름을 났다는 어느 소규모 봉제공장 사장. 이에 반해 약간은 들뜬 “내후년이면 1만원 정도 되지 않을까요?” 하고 묻는 어느 알바생. 겉만 보면 지금의 최저임금 수준을 바라보는 둘의 관점에 커다란 차이가 있다. 그러나 들으면 들을수록 짐작과는 달리 서로 적대적이진 않았다. “150만원의 최저임금으로는 살 수 없다는 걸 아는데 더 주고 싶어도 도리가 없네요. 떼인 돈만 받았더라도.” 위 사장의 말이었다. 목적은 달라도 함께 갈 수 있다는 느낌이랄까. 아마도 1년여 계속된 토론 과정에서 처음에는 헷갈렸지만 누구에게 책임(죄)이 있는지, ‘을과 병’ 스스로 알아 가고 있는 듯했다.

“공정경제를 동시에 추진하지 않은 게 문제다.” 어느 저명한 학자가 최저임금 인상 비난에 이렇게 반비판한다. “최저임금에는 죄가 없다”고 더한다. 영세기업이 일한 만큼의 공정한 대가가 제때 정의롭게 지불되기만 한다면, 최저임금은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게 필자가 본 노동현장의 모습이다. 그런데 빨리 해야 하지 않겠나. “돌아서면 설이다. 참 세월 빠르다.” 고향 어른들이 늘 하시는 말씀이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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