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남북정상회담이 반전의 성공을 이뤄 내면서 한반도 정세가 다시 요동치고 있다. 고용지표 악화로 집권 이후 가장 큰 궁지에 몰렸던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도 반등했다. 남북관계와 북미관계 개선 훈풍이 21세기 한국의 최대 난제인 불평등 양극화 해소를 위한 절호의 기회를 다시 되살렸다. 위태로워진 소득주도 성장을 결실 맺지 않으면 대통령의 핵심 민생공약 이행도 실패하게 되므로 중요한 국면이다. 이제야말로 사회적 대화가 관건이다. 이전 실패한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를 반면교사 삼아 진중하게 추진하되 노사정 주체 모두가 공동의 책임을 자임하며 결단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지난해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최저임금을 둘러싼 논란 속에서 사회적 대화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공공부문 전체 비정규직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학교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심의위원회에 위원으로 참여해 겪은 경험이 아직도 생생하다. 비정규노조 추천 위원이란 이유로 뜻밖의 표적이 됐다. 짧은 기간 동안 2천건 가까운 항의 문자와 메일을 받았다. 사범대생과 교대생·임용고시생·발령대기교사와 정규직교사·학부모 등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이 격하게 항의했다. 당시로선 전의를 상실할 정도였다. 기간제교사의 정규직화는 물론이고 강사 직군의 무기계약직 전환마저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의 반발에 부딪쳤다. 믿었던 전교조마저 반대 대열에 동참했다. 임용고시라는 험난한 벽에 부닥친 기간제교사의 정규직화까진 어렵더라도 강사들의 무기계약직 전환은 가능하겠다 예상했다. 고등법원의 영어회화전문강사 정규직화 승소 판결이 있었고, 국가인권위원장의 강사 정규직화 권고까지 있었던 터였다. 무기계약직 전환마저 좌초되는 최악의 결과는 피해야 했다. 하지만 결과는 최악이 됐다. 심의위원을 사퇴하면서 비감했다. 교사와 공무원,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 일자리를 평범한 일자리로 변화시켜야만 이 악순환의 비정한 의자놀이를 그만둘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지만, ‘어떻게’가 난망해 넋두리로 그치고 말았다.

인천국제공항공사 정규직화를 반대한 정규직 노조 조합원들이 외친 ‘기회의 평등 YES, 결과의 평등 NO’ 구호도 충격이었다. 대통령이 당선 이후 처음 방문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한 곳에서 정규직 노동자들의 거센 정규직화 반대가 일어난 것이다. 양대 노총과 주요 산별노조 지도부의 공식 입장은 제대로 된 정규직화 찬성이었지만, 현장 조합원들의 여론은 정반대였다. 일자리와 임금, 사내복지를 둘러싼 격론 앞에서 정규직화의 사회적 정당성은 무력하게 주저앉았다. 상급단체의 입장도 영향력이 미미했다. 비정규직 노조가 있어 그나마 직접고용 정규직화를 일부 실현했지만 정규직 노조 위원장은 조합원들에 의해 탄핵당했다. 노동자 단결과 연대로 쟁취해야 할 최우선 과제인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현장 노노 갈등의 뇌관이 돼 버렸다. 어처구니없었다.

최저임금도 마찬가지다. 산입범위 논란 속에 최저임금 인상의 순기능과 선순환 효과는 왜곡되고 부정당해 버렸다. 올해 최저임금 16.4% 대폭인상 이후 최저임금이 졸지에 죄인으로 내몰렸다. 경제지와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언론의 십자포화를 맞고 전형적인 여론재판의 희생양이 돼 버렸다. 재벌과 건물주 중심 경제구조를 바꾸는 것과 최저임금 1만원 실현은 불가분의 관계라는 사실이 드러났지만, 구조개혁은 요원한 상황에서 인상된 폭만큼 인건비를 감당해야 하는 영세 자영업자의 고충만이 압도적으로 부각돼 버렸다. 최저임금 인상과 위반율 최소화 논의는 뒷전으로 제친 채 최저임금 불복종운동이 기세등등하다. 최저임금 인상을 매개로 한 을들의 상생은 말도 못 꺼낼 정도가 돼 버렸다. 소득주도 성장의 마중물로 주목받았던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감소와 불안의 원흉으로 비난받는 형국을 보면서 최저임금을 살리는 비상구가 어딘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최저임금 모두 일개 사업장과 특정 직종과 산업 수준에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들이다. 민감한 만큼 서로 견줘 보면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상황으로 돌변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결국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제 역할을 해야 한다. 협상대 위에 계급·계층 간 첨예한 쟁점사안을 올려야 한다. 백화점식으로 해선 성과를 내기 어려운 만큼 의제 선정도 우선순위를 따져 합의해야 한다. 최저임금과 정규직화 문제도 노사정이 합의한 기준이 있었다면 훨씬 나은 결과를 얻었을 것이 분명하다. 소모적 논란도 줄이고 신의성실 원칙으로 합의 이행을 담보하는 것도 수월하다. 사회적 대화가 만능이 아니고 그럴 수도 없지만 노동계가 요구해 반영된 주요 노동정책과 공약 이행이 진전되려면 다른 방도가 없다. 사회적 대화, 더 이상 미룰 수도 없고 실패해서도 안 된다. 노동계가 적극 개입해 사회적 대화를 통해 핵심 노동현안을 해결해 가야 한다. 노사 간 힘 대결만으로는 상충되는 사회적 현안 문제를 제대로 매듭짓기 어렵다. 시행착오는 충분히 겪었다. 사회적 대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namsin196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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