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가 무노조 경영 50년 만에 세워진 민주노총 소속 노조를 약화시키기 위해 반노조 여론 확산과 다른 노조 지원 같은 조치를 취하려 한 정황이 담긴 문건과 메모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론 확산 주체로 ‘제철소장’을 적시해 최고경영진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포스코, 새노조 불온단체로 몰아"=금속노조와 국회 정무위원회 추혜선 정의당 의원은 지난 25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포스코가 민주노조 와해 공작을 펴고 있다”고 주장했다. 노조와 추혜선 의원은 노조 포스코지회가 이달 23일 오후 1시45분께 포항 소재 포스코 인재창조원에서 노사문화그룹 주도로 열린 회의에서 확보한 문건과 메모·사진을 공개했다. 포스코는 올해 4월 말 노무협력실 산하 노사문화그룹을 신설했다. 지회 설립이 구체적으로 추진되던 시기와 겹친다.

이달 17일 지회가 출범을 선언했다. 지회는 포스코가 추석연휴에 대책회의를 연다는 제보를 받았다. 대책회의는 23일 실제 개최됐다. 포스코는 회의에서 13페이지 분량의 활자화된 자료를 공유했다. 주제별로 "화해와 대화의 시대적 분위기에 역행하는 강성노조" "강성노조의 부작용" "노동운동의 정치세력화 우려" 같은 제목이 달렸다.

포스코는 정치세력화 주제에서 "특정단체의 세력확산이 목적인 노조는 정당화되지 못함" "M단체 카톡방에서 정치색을 띤 의견이 지속 등록” 같은 의견을 실었다. "화해와 대화의 시대적 분위기에 역행하는 강성노조"에는 "H자동차와 H제철"을 노조 때문에 피해를 본 사업장으로 지목했다.

추혜선 의원은 “회사가 포스코에 만들어진 지회를 노동자 권익과 무관한 활동을 하는 강성노조로 연결시킨 것”이라며 “현대자동차와 현대제철 사례를 들며 지회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극대화해 회사 경쟁력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불온한 단체로 몰아가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반노조 정서' 전 직원에게 전파 시도=포스코는 '반 민주노총 정서'를 전체 직원들에게 유포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지회가 회의 참석자에게서 확보한 메모에는 “우리가 만든 논리가 일반 직원에게 전달되는지 확인” “시범부서를 선정해 조직화”라고 적혔다. "양소(포항과 광양제철소)는 행정부소장 또는 제철소장이 해야. 미션 분명히 줘야 (한다)"는 문장이 뒤에 붙었다.

김태욱 금속노조 법률원장은 “제철소장은 부사장급이고 행정부소장은 전무급임을 고려할 때 이들에게 미션을 주는 것은 노무협력실장 차원에서는 불가능하며 포스코 최고경영진만이 가능하다”며 “반노조 논리 개발을 포함한 반노조 시나리오 작성은 포스코 최고경영진과의 교감하에 이뤄지고 있음을 추정해 볼 수 있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지회는 현장에서 '포스코를 사랑하는 직원의 한 사람으로서 드리는 호소문'이라는 제목을 단 문건도 입수했다. 호소문에는 "상급단체의 무책임한 방침을 그대로 이행했던 쌍용차 정리해고 노동자와 그 가족이 건강악화와 생활고에 시달리다 수십명이 자살한 비참한 결과가 있었다"고 적고 있다. 한국지엠을 언급하며 "투쟁일변도의 운동노선을 고수해 오다가 결국 군산공장 폐쇄수순에 들어갔다"고 했다. 포스코 노무협력실이 일반 직원을 가장해 민주노총을 비방하는 내용의 글을 배포하려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지회는 회의장에 놓인 칠판에서 "비대위 가입 우수 부서 발굴(본사, 제철소 부서) 홍보"라는 판서도 발견했다. 비대위는 지회 출범과 동시에 만들어진 포스코노조 비상대책위원회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노조는 “포스코가 새노조에 대한 반감을 조성해 조직이 확대되지 못하도록 고립시키고, 비대위를 적극적으로 지원해 친회사노조로 육성하려는 시나리오를 짜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포스코는 “최근 노사관계 상황을 고려해 추석연휴 첫날임에도 노사신뢰 증진과 건전한 노사문화 정착 방안 마련이 시급해 휴일근무를 했던 것”이라며 “여러 차례 입장을 밝힌 것과 같이 회사는 자유로운 노조활동을 보장하고 있으며. 특정 노조에 호불호하지 않고 법과 원칙에 따라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포스코노조 비대위는 성명에서 “한국노총·금속노련과 함께 ‘포스코노조 재건추진위원회’를 만들어 민주노조 건설을 위해 불철주야 백방으로 현장을 누비는 등 노력해 왔지만 사측 노무팀의 어이없는 행태로 한 순간 어용으로 매도되는 현실에 분노를 넘어 허탈감을 감출 수 없다”며 “사측 노무팀이 비대위를 자신들의 회의 내용에 언급한 것은 틀림없는 지배·개입 행위로 처벌받아 마땅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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