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은선 공인노무사(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교섭국장)

한가위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열흘 가깝게 유례없는 최장기간의 연휴가 이어지던 지난해 이맘때가 생각난다. 긴 추석연휴 동안을 필자가 속해 있는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의 임원진과 중앙집행위원, 그리고 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는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삭발한 채 집단단식을 하며 거리 위에서 보냈다.

학교비정규 노동자들을 가입대상으로 하고 있는 학교비정규직노조·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전국여성노조는 2012년부터 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라는 연대체(공동교섭단)를 구성해 교육부와 17개 시·도 교육청을 상대로 공동교섭과 공동투쟁을 진행했다. 2016년까지 시·도 교육청별로 교섭을 한 탓에 같은 직종에서 동일한 업무를 하는데도 특정 수당 지급 여부는 물론 지급액, 일부 수당의 통상임금 포함 여부 등 노동조건 전반에 차이를 보였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문제점을 바꾸기 위해 학교비정규 노동자들의 단결력으로 지난해 최초로 교육부와 교육청을 상대로 하는 집단교섭을 성사시킨 것이다. 물론 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와 시·도 교육청 사이의 교섭은 완전한 산별교섭도 아니고 그렇다고 정확한 의미의 집단교섭(연합교섭)이라고도 볼 수 없는 중간적인 형태다. 산업별 통일교섭은 하나의 산업별노조가 사용자단체와 교섭하는 것이 전형이고, 연합교섭이라고 불리는 집단교섭은 동일한 업종에 속해 밀접한 관련을 가지는 여러 기업별노조가 여러 사용자와 하나의 협상테이블에서 동시에 교섭하는 것이다.

교육부와 시·도 교육청, 즉 사측은 권한 있는 사용자단체를 꾸렸다기보다는 공동으로 교섭에 임하는 ‘여러 사용자’ 연합 형태다. 이에 대응하는 노동조합은 하나의 산업별노조 각각의 지부이면서 각 사용자와의 관계에서는 기업별노조의 모습을 띠었으니 일반적 의미의 산별교섭에도, 집단교섭에도 해당한다고 보긴 어렵다.

사용자측은 사용자단체를 구성한 게 아니라 각각 독립적 교섭 상대방으로서 사고하고 입장을 내다 보니 자신들끼리 눈치 보고, 힘겨루기를 하는 등 의견을 일치시키지 못했다. 교섭은 오랜 시간이 걸렸고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추석연휴를 풍찬노숙하며 우여곡절 끝에 각 사용자와 전국 14만여명에게 적용되는 통일 임금협약을 체결하며 최초의 정부·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하는 집단교섭이 마무리됐다.

민주노총 조합원의 80% 이상이 산별노조로 조직돼 있지만, 산별교섭은 형식적으로 이뤄지고 여전히 교섭 양상은 기업별노조 습성에 머물러 있는 게 현실이다. 그나마 보건의료노조와 금속노조가 각 보건의료산업사용자협의회·금속산업사용자협의회라는 사용자단체와 산별교섭을 하고 있지만 이 역시 형식에 머무르거나 선언적인 합의를 도출하는 수준으로 정체돼 있다. 사용자들의 교섭 참여 또한 매우 저조하다. 기업별 노사관계 대안으로 선택한 산업별 노사관계는 갈수록 위축되고 있는 듯하다. 이런 현실 속에서 학교비정규 노동자들은 정부와 지자체를 대상으로 한 산별교섭을 만들어 낸 것이다.

학교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가 17일 사용자와 2018년 임금협약을 위한 집단교섭을 개회했다. 사용자인 17개 시·도 교육청이 모두 참여했다. 그러나 사용자 중 하나인 교육부가 교섭 개회 며칠 전 급작스럽고 일방적으로 교섭 개회식 불참을 통보하는 유감스런 일이 있었다. 이는 합의를 위반하는 것이다.

교섭의 힘은 노조에 조직된 노동자들의 단결력, 그리고 교섭을 통해 이루려는 목표에 대한 절박한 요구에서 나온다는 것을 학교비정규 노동자들은 지난 8년간 단결하고 투쟁하며 배웠다. 이번 집단교섭 또한 지난해 실질적인 산별교섭 결과물을 만들어 낸 성과를 다시금 살리길 기대한다. 이번 집단교섭 또한 산별교섭이 잘 되지 않는 노동계에서 실질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낸 지난해 집단교섭 성과를 살려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하길 기대한다.

나아가 사용자들이 사용자단체를 구성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산업별 수준의 임금과 노동조건 표준화라는 목적을 달성하는 산별교섭이 이뤄져 이번 교섭이 노동현장에서 제대로 된 산별교섭을 정착하는 밑거름 역할을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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