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석호 전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문재인 정부 출범의 영향이다. 양대 노총 200만 조직화 경쟁의 영향도 있다. 산별 조직화 경쟁도 한몫한다. 곳곳에서 노조 가입이 꾸준하게 늘고 있다. 그에 힘입어 공공운수노조 조합원이 20만명을 넘어섰다. 양대 노총 통틀어 최대 산별이 됐다. 내친김에 30만명까지 돌파하길 응원한다. 금속노조도 신났다. 무노조 철옹성 포스코에 노조 바람이 분다. 삼성재벌에 노조가 속속 결성되는 것만큼 반가운 일이다. 파리바게뜨 덕에 화학섬유에서 식품까지 명칭을 넓힌 화섬식품노조가 또 이름을 바꿔야 할지 모르는 즐거운 상태에 있다. 네이버에 이어 넥슨도 노조를 만들어 가입했다. 때가 왔을 때 기회를 잡으라 했다. 양대 노총 어디든 적극 매달려 조합원 규모를 늘려야 한다. 노동자 힘의 원천은 쪽수 아니던가.

더욱 반가운 소식이 있다. 여러 산별·업종과 지역에서 작은 사업장 노동자 조직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소식이다. 그전에도 관심을 갖기는 했다, 그러나 일부에 그친 관심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노동운동 흐름으로 형성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전체 노동자의 80%에 이르는 1천500만명의 밑바닥 노동자를 주체로 세우지 못한 노동운동 오류를 바로잡는 측면에서는 많이 늦었지만, 이번에 형성되고 있는 흐름은 치열하게 고민하고 구상하면서 성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전망한다.

최근 서울 성수동에 활동가가 늘었다고 한다. 탠디 투쟁 이후 제화노동자 700명 안팎이 노조에 가입하면서 생긴 현상이다. 관련 얘기를 나누던 중에 문종찬 서울노동권익센터장이 재밌는 말을 했다. 바깥에서 들어온 활동가가 나서다 보니 꾸준히 지역을 지킨 활동가가 소외감을 느낄 정도라는 거였다. 위로하려고 술을 마셨다고 했다. 얘기를 듣고 한마디 했다. 이삼 년 지나도 꿋꿋이 남을 활동가는 그이들일 테니 소외감 느끼지 말라고 전해 달라는 말이었다. 그러고는 서로 크게 웃었다. 그러나 실은 씁쓸함이 배어 있는 웃음이었다.

부쩍 활발해진 성수동의 최근 모습은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현상이다. 성수동에선 이미 여러 번 반복됐고, 구로·안산 등 각 지역에서도 겪은 현상이다. 일반노조들이 겪은 현상이기도 하다. 작은 사업장 조직화 역사에서 반복된 현상이다. 영세사업장 노동자를 조직해야 한다는 당위에 의해, 또는 일시적으로 뜨는 분위기에 의해, 활동가들이 몰렸다가 몇 년 지나지 않아 빠졌던 그 현상 말이다.

성수동의 노조 바람이 이어지게 하려면, 또한 분위기를 타고 가입한 제화노동자들이 과거처럼 이삼 년 안에 우수수 빠지지 않게 하려면, 그들이 계속 남아 있을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이전과 같은 투쟁단선전략만으로는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을 묶어 둘 수 없다. 탠디 사례를 성수동의 모든 영세사업장에 적용할 수 없다는 점, 그 누구보다 성수동 활동가들이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보완전략이 필요한 것이다.

보완전략의 하나로 공제노조운동을 제안한다. 노동공제회를 만들자는 주장이다. 1천500만이 노동하며 삶을 꾸역꾸역 지탱하고 있는 밑바닥 영세사업장까지 노조 물결을 일으키려면 노조는 그이들의 필요를 채워 줄 수 있어야 한다. 노조가 당장의 삶에 도움이 돼야 한다. 그것 없이 투쟁을 통해 언젠가 쟁취할 수 있다고 하면서 마냥 붙들어 놓을 수는 없다. 그이들은 노조할 권리 이전에 노조할 동인이 필요한 처지다.

노동운동을 하면 국제담당에게 종종 듣는 얘기가 있다. 이탈리아는 조합원 절반이 퇴직자라는 것 말이다. 거기 말고 독일·영국·일본 등 퇴직노동자 다수가 조합원인 경우는 숱하다. 한국 노동운동은 부러워했다. 한국도 빨리 그리되면 좋겠다고 했다. 한데 거기까지였다. 고민이 더 나아가지 못했다. 퇴직노동자가 노조에 남아 있는 조건을 고민하지 않았다. 그건 바로 서비스망이었다. 노조가 각종 서비스망을 구축해서 조합원의 필요를 채워 준다. 퇴직자의 삶에 도움을 주는 것이다. 당연하지 않은가. 노조에 가입해도 아무 혜택이 없으면 누가 가입하겠는가. 한국의 내로라하는 노동운동가들도 자신과 가족의 일상을 챙기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또 실제 챙기는 것이 현실 아니던가.

작은 사업장 대부분은 영세하다. 작은 사업장에서는 노동자와 사업주가 함께 붙어서 일하고 밥 먹고 술 마시며 친밀한 관계를 형성한다. 작은 사업장 노동자는 일거리와 좀 더 나은 조건을 찾아 사업장을 수시로 이동한다. 그런 처지에 놓여 있는 노동자들을 노조로 묶고 지속시킬 수 있는 방안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이들도 긴 일상을 ‘살아가야’ 하는 시대다. 긴 일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그이들도 지금, 여기에서, 평균적으로 먹고살아야 한다, 는 의미다. 투쟁으로 체제와 구조를 바꾸자는 것이나 투쟁으로 자본과 정부에 얻어 내자는 투쟁단선전략만으로는 그이들을 주체로 세울 수 없다. 그렇게 했던 지난 노동운동 조직전략은 실패했다. 100인 미만 사업장의 노조 가입률이 1%가 안 되는 게 그 증거다. 노동운동은 그이들의 삶에 도움 되는 서비스망을 구축해야 한다. 다른 나라 노동운동이 다 하는데 우리라고 못 할 바 없다.(다음 편으로 이어짐)

전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jshan8964@gmail.com)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