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이병훈(60·사진)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8월 한 달간 '잠수'를 탔다. 7월31일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 마지막 회의를 끝내고 나서다. 휴대전화에 저장돼 있지 않은 번호가 뜨면 받지 않았다. 그렇게 4주간 조용히 전국을 유랑했다. 한동안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을 만큼 속앓이가 심했던 탓이다.

이병훈 교수는 '고용노동부 적폐청산위원회'로 불리는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9개월간 개혁위를 이끌었다. 내·외부 위원 10명과 함께 5대 분야 15개 과제를 선정하고, 과제마다 무게감 있는 권고안을 내놓았다.

개혁위 활동과 조사보고서는 작지 않은 파장을 낳았다. 그래서일까. 개혁위라는 '현미경'을 마주한 노동부 내부의 견제와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조직을 박살낸다"는 불만이 잇따랐다. 있는 자료를 없다고 하고, 자료제출을 최대한 늦추는 식으로 저항했다. 노동부와 조사위원 사이에 갈등과 긴장이 조성됐다. 이런 과정을 최대한 조율하고 중재하는 역할을 그가 했다.

지난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공공상생연대기금 사무실에서 이병훈 교수를 만나 소회를 들었다. 이 교수는 인터뷰가 끝난 뒤 개혁위가 작성한 824페이지(본문 395페이지·부록 429페이지)의 활동결과보고서(백서)를 김영주 장관에게 전달했다. 김 장관은 "노동부의 부당하거나 소극적인 대응으로 인해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권리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 점에 대해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보수정권 9년 노동부는 일하는 사람 편에 서지 않았다

- 백서 발간으로 고용노동행정개혁위 활동이 마무리됐다. 개혁위 출범 당시 이야기해 달라.

"촛불시민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 국정과제 1호가 적폐의 철저하고 완전한 청산이었다. 노동부는 장관 선임이 늦어지면서 개혁위 구성이 늦어졌다. 고용노동행정 분야에 오랫동안 쌓인 폐단을 찾아 개혁하려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보수정권 9년 동안 일하는 사람들을 행정적으로 보호하고, 대변해야 할 노동부가 오히려 경제부처처럼 기업 편에 서거나 기관과 담합하는 등 정책적·행정적으로 약자들을 보호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나 또한 고용노동행정의 여러 문제점과 개혁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개혁위 위원들과 여러 차례 공감한 이야기가 있다. 개혁위가 조사할 건 조사하고, 밝힐 건 밝혀서 잘못된 행정이 더 이상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이 교수는 2009년 이명박 정부 시절 '100만 비정규직 실업대란설'을 주장하며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을 추진하던 노동부를 향해 "노동부 간판을 내리고 기업부의 비정규양산국(非正規量産局)으로 개정하는 게 맞겠다"는 내용의 신랄한 비판글을 쓴 적이 있다. 적잖게 부담스러운 개혁위원장 자리를 이 교수가 승낙했던 것은 과거 고용노동행정 관행에 대해 갖고 있던 문제의식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 개혁위원장 자리가 부담스럽진 않았나.

"부담감은 (개혁위 활동을) 하면서 느낀 것 같다. 처음 개혁위 제안을 받고 공식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여러 사람들을 만났다. 어떤 활동을 했으면 좋겠는지 의견을 들었다. 그때 부담스러운 얘기들이 나오긴 했다. 과거 잘못된 고용노동행정 적폐를 찾다 보면 그 당시 일했던 사람들까지 문제 삼게 되지 않겠나. 그런 건 자제해야 하지 않겠냐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조사를 통해 위법하거나 문제 되는 사실이 드러나면 (관여했던 사람들을 문제 삼는 것을) 피할 수 없지 않겠나 생각했다."

개혁위 조사 과정에서 박근혜 정부 청와대가 2015~2016년 '노동시장개혁 상황실'이라는 비선기구를 운영하면서 노동계에 외압을 행사하고, 보수청년단체와 언론을 동원해 여론몰이를 한 사실이 확인됐다. 상황실이 고용보험기금을 전용해 노동개혁을 홍보한 사실도 드러났다. 개혁위는 상황실을 운영하며 전방위 외압을 행사한 이병기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김현숙 전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을 각각 직권남용과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수사의뢰하라고 권고했다.

적폐조사에는 반발, 제도개선에는 '무성의'

- 개혁위 15대 과제가 광범위했다는 지적도 있다.

"과제를 선정할 때만 해도 일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웃음). 다른 부처는 위안부 합의나 국정교과서,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처럼 이슈가 됐던 사안을 중심으로 개혁위가 꾸려졌다. 반면 노동부는 고용노동행정 전반을 살펴야 하기 때문에 다뤄야 할 의제가 많아졌다. 노사단체 간담회와 행정개혁신문고를 통해 15대 과제와 추가 안건을 선정했다. 과제별로 철저하게 심의했다. 어떤 과제는 네댓 번씩 심의한 것도 있다. 6개월로 활동기간을 계획했다가 3개월 더 연장했다. 막판에는 한 달에 서너 번씩 회의를 했다. 위원들의 피로도가 컸다. 그래도 모든 과제에 대한 개선방안과 필요조치를 권고하고 마무리할 수 있게 돼 다행이다."

- 노동부 공무원들의 반발이 컸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긴장관계가 조성될 수밖에 없었다. 조사위원들이 문제를 포착해 관련 자료를 해당 부서에 요구하면 쉽게 내놓지 않았다. 분명히 있는 자료인데 없다고 하거나 자료 제출을 질질 끌었다. 조사위원과 공무원 간 불편한 관계가 만들어졌다. 대면조사 때 사실관계를 알아내야 하는 조사위원과 조사를 받으러 오는 공무원 사이에 감정의 골이 생기기도 했다. 불편한 상황이 조성될 때마다 '조사는 투명하고 충분히 진행돼야 한다'며 장관과 실·국장을 설득했다. 개혁위 조사 권한의 한계는 분명히 있었다.

노동부가 불법파견·부당노동행위·권력개입 같은 적폐사건은 강하게 저항하면서 노동행정이나 산업안전 같은 제도개선 권고는 귓등으로 듣는다고 해야 할까? 성의 없는 태도를 보였다. 개혁위 안에서 '노동부가 개혁을 하겠다는 거냐, 말겠다는 거냐'는 불만이 나왔다."

"개혁위 권고 이행, 장관 의지가 중요"

- 권고가 권고에 그치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백서를 만들었다. 개혁위 활동을 정확하게 공개된 기록으로 남기는 게 중요하다고 봤다. 고용노동행정을 하는 사람들이 개혁위 권고를 의식하고 과거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는 데 의미가 있다고 본다."

- 후임 장관 의지가 중요할 것 같다.

"김영주 장관이 개혁위 활동을 전폭적으로 지지해 주고 이행점검 노력을 많이 했다. 물론 해당 부서로 내려가면 더디게 움직이거나 아예 안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장관이 개혁위 활동에 동의하고 이행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야 그나마 실·국에서 움직인다는 얘기다.

최근 관료 출신 장관이 내정됐다. 내부를 다독이는 과정에서 개혁위가 했던 일을 덮어 두고 가면 어쩌나 걱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개혁위가 권고한 해법에 대해 다른 의견이 있다면 추가적인 논의는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장관은 개혁위가 던진 과제를 중요하게 여기면서 책임 있게 이행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혁위는 우리가 하는 일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 주는 시대적인 과제를 수행하는 것이라고 의미부여를 하면서 최선을 다했다. 적폐를 개혁하기 위한 개혁위의 여러 권고를 노동부가 제대로 실천해야 한다. 국민에게 사랑받는 행정부처로 거듭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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