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통합공무원노조 시간선택제본부 조합원들이 11일 오후 국회 앞에서 시간 확대와 차별 금지 등 시간선택제채용공무원 제도 개선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2014년 국가직 시간선택제채용공무원으로 입직한 A씨. 민간정보통신업체에서 10년간 일했던 그는 하루 4시간 근무에 시간을 선택할 수 있고 겸직도 할 수 있다는 채용조건이 마음에 들어 주저 없이 지원했다. 오전 9시부터 2시까지 일하고, 오후 3시부터는 다른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현실은 완전히 달랐다. '시간선택제'라는 말이 무색하게 근무시간은 마음대로 정할 수 없었다. 기관이 정해 준 업무집중 근무시간은 오전 10시부터 3시까지였다. 기관은 A씨에게 또 다른 시간선택제채용공무원과 격일로 교대근무하라고 했다.

'겸직 허용'이라는 메리트는 사라졌다. 현실에서 오후 3시 이후 격일로 할 수 있는 일은 야간 아르바이트 말고는 없었기 때문이다. 초과근무를 하지 않으면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A씨는 "전일제 공무원이 되겠다는 게 아니다"며 "어정쩡하게 일하느니 차라리 주당 35시간으로 근무시간을 늘려 달라"고 호소했다.

시간 선택 못하고 무늬만 '겸직 허용'

시간선택제채용공무원은 주 20시간 근무하고, 60세까지 정년을 보장하는 공무원이다. 언뜻 보면 진정한 워라밸(일·생활 균형)을 실현하는 것처럼 보인다. 정말 그럴까.

11일 공무원 노동계에 따르면 시간선택제채용공무원들이 정부에 제도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질 나쁜 일자리"라는 비판 목소리가 높다. 시간선택제채용공무원제도는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4년 시행했다. 전일제 근무가 곤란한 경력단절여성 같은 인재들에게 정년이 보장되는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해 일·가정 양립을 실현한다는 취지다.

취지와 달리 제도는 '고용률 70%' 달성 수단으로 활용됐다. 공공부문에는 의무채용비율을 할당했다. 주먹구구식 운영으로 다양한 차별과 부작용을 낳았다. 근무시간 선택권이 노동자에게 주어지지 않아 일·가정 양립은 불가능해졌다. 근무시간은 각 기관장 재량에 따라 정해지는데 6개월에 한 번씩 오전·오후를 교대하거나 시간제로 전환한 전일제 공무원(시간선택제전환공무원)의 공백을 메우도록 했다. 시간선택제 근무에 맞는 직무 개발도 없다.

임금항목 중 출장비나 근무시간과 무관한 자격증수당까지 '시간비례'로 주고, 명절상여금도 전일제 공무원의 절반만 받는 차별을 겪고 있다. 겸직 문제를 놓고도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겸직을 허용하겠다"는 채용공고를 보고 다니던 직장을 정리했지만 채용 후에 겸직이 불허되는 경우가 속출했다. 최종 결정권한은 소속기관장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지원금 지급업무를 하는 한 국가직공무원은 2개월간 근무시간 외 2시간 동안 컴퓨터학원 강의를 신청했지만 영리업무라는 이유로 거절됐다. 공인노무사 겸직이 허용된다는 답변을 받고 임용된 공무원이 7개월 만에 관련 업무라는 이유로 불허된 일도 있었다.

시간선택제전환공무원은 하는데, 채용공무원은 하지 못하는 제도적 차별도 이들을 자괴감에 빠지게 한다. 전환형은 본인 필요에 따라 주 15~35시간 일할 수 있고, 전환·역전환이 자유로운 반면 채용형은 근무시간을 늘리거나 전일제로 전환할 수 없다.

남지선 전국통합공무원노조 시간선택제본부 사무처장은 "낮은 소속감, 박탈감, 비정규직보다 못한 처우를 버티지 못하고 절반 가까운 시간선택제채용공무원들이 퇴직했다"며 "공정한 인사와 처우개선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주당 20→35시간 "근무시간 현실화 필요"

전문가들은 시간선택제 공무원 제도의 취지를 살리는 방향으로 제도 전반을 손질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노조 시간선택제본부가 이날 오후 권미혁·김병관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함께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최한 '시간선택제채용공무원제도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에서 남우근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연구위원은 "전일제 공무원·전환형공무원과 단절된 직제에 배치되는 시간선택제채용공무원제도는 차별을 양산하고 업무효율성을 떨어뜨리는 실패한 정책"이라며 "채용형을 폐지하고 전환형으로 통합 운영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채용형과 전환형 통합운영 전이라도 채용형 근무시간을 주당 35시간으로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김기선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시간선택제채용공무원에 대한 직무나 업무량 분석이 선행되지 않은 탓에 이름만 시간선택제지 사실상 전일제 공무원과 유사하게 활용됐다"며 "시간선택제에서 전일제로 전환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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