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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노동자 보호법’ 아니라 ‘감정노동 중지법’ 돼야김정수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 김정수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산업안전보건법 26조의2(고객의 폭언 등으로 인한 건강장해 예방조치), 소위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3월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후속 법령인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개정안이 6월18일 입법예고돼 10월18일 시행될 예정이다.

그동안 고객들의 다양한 갑질사례 보도가 있었고,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여론이 높아졌다. 고객 폭언 등으로 인한 건강장해 예방조치가 사업주 의무로 산업안전보건법에 명문화됨에 따라 이에 대비하기 위한 조치들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을 필두로 안산·전주·광주 등 지방자치단체들이 관련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민간기업에서도 이미 대책을 마련했거나 준비하고 있다. 그만큼 실질적인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높은 상황이다. 10년 가까이 사회적 쟁점이었던 감정노동 문제를 개인적인 영역으로 보지 않고 제도화했다는 것은 분명 진일보다. 하지만 성과만큼이나 한계도 분명하다.

근본적인 한계는 이 법이 감정노동자 ‘보호’법으로 불리는 것이다. 감정노동자를 고객의 과도한 갑질에서 보호해야 할 존재로 규정하는 것이다. 돈을 지불하고 서비스를 제공받는 고객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의 관계를 갑을관계로 규정하는 것이다. 그 이면에는 이런 갑을관계에서 감정노동이 발생하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논리가 숨어 있다. 이런 규정이 현실적으로는 사회적 약자인 서비스 제공 노동자의 권익증진에 다소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근본적으로는 이런 관계를 고착화시켜 서비스 제공 노동자를 ‘보호받아야 할 존재’로 수동적인 위치에 놓이게 한다.

서비스를 제공받기 위해 돈을 지불했다고 해서 서비스를 제공한 노동자에게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투사할 권리를 부여받은 것은 아니라는 사회적인 공감대 형성이 절실하다. 서비스 제공 노동자 역시 그런 상황이 불가피한 것이 아니라 있어서는 안 되는,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는 인식을 명확히 하고 그런 상황에 단호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감정노동자 보호법은 산업안전보건법 26조의2를 일컫는데, 같은 법 26조가 작업중지에 관한 조항이라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작업중지는 비록 현실에서는 많은 제약이 있으나 법적으로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으로부터 노동자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는 적극적인 권리다. 작업중지 관련 산업안전보건법 26조는 3항에서 노동자가 사업주에게 관련 조치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감정노동 관련 산업안전보건법 26조의2의 성패는 바로 노동자가 사업주에게 조치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한 3항에 달려 있다. 1항(건강장해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과 2항(건강장해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현저한 우려가 있는 경우의 조치)은 사업주의 예방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감정노동으로 인한 건강장해 예방을 위해 필수적인 조치다. 하지만 고객이 왕이라는 인식이 팽배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사업주가 먼저 나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감정노동을 유발하는 업무는 주로 서비스업에 속한다. 서비스업 특성상 노동자 상당수는 소규모 사업장에서 일할 가능성이 높다. 소규모 사업장에서는 감정노동에 대한 적극적인 예방조치를 기대하기가 더욱 어려울 것이다. 정부가 적극적인 관리·감독을 해야겠지만, 고용과 소득주도 성장이 정부의 최대 현안인 상황에서 이 또한 기대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는 감정노동 관련 조항 또한 다른 여러 산업안전보건법 조항처럼 그림의 떡이 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당사자가 나서는 것이 관건이다. 산업안전보건법 26조의2 3항에 명문화돼 있는 노동자 권리가 충분히 보장돼야 한다. 감정노동을 유발하는 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이 법을 통해 자신의 권리를 지킬 수 있도록 애써야 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이 법을 ‘감정노동자 보호법’보다는 ‘감정노동 중지법’으로 부르는 것은 어떨까.

또 한 가지 한계는 이 법이 감정노동 전체를 포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법은 ‘감정노동자’ 보호법으로 불리고 있으나 실제로는 노동자들이 노동과정에서 겪는 감정노동 전체가 아니라 고객을 응대하는 감정노동에 국한돼 있다. 땅콩 회항 사건으로 대표되는 직장내 폭력·폭언이나 갑질 등 일터 괴롭힘 또한 노동자들이 겪는 주된 감정노동 중 하나지만 이 법에 해당하지 않는다. 앞으로 감정노동 문제는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모든 감정노동, 정신건강 문제로 확대해야 한다.

김정수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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