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감옥에 모인 재소자들은 상대를 보통 '사장'이라고 부른다. 이름 대신 수인번호를 앞세운다. 사람들은 한상균(56·사진) 전 민주노총 위원장을 사장이 아닌 위원장이라 불렀다. 4년 사이 '폭도'라는 오해의 시선은 추임으로 바뀌었다.

담벼락 너머에도 세상 돌아가는 일은 전해진다. 국민이 최고권력자를 자리에서 내쫓은 ‘혁명’은 말할 것도 없다. 한상균 전 위원장이 주도한 2015년 11월 민중총궐기는 1년 후 촛불혁명 도화선이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서교동 사무실에서 한상균 전 위원장을 만났다. 한 전 위원장은 2009년 쌍용자동차 옥쇄파업을 이끌었다는 이유로 3년간 옥살이를 했다. 2015년 12월부터는 민중총궐기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두번째 옥살이를 했다. 석 달 전 출소했다.

"민중총궐기는 촛불혁명 심지, 자부심에 그쳐선 안 돼"

- 출소 후 어떻게 지내나.

"감옥 안에 있을 때 어렵게 투쟁하는 동지들이 늘 마음에 걸렸다. 최대한 일정을 쪼개서 힘들게 싸우는 동지들을 찾아가고 있다. 백남기 농민께 소주 한잔 못 올렸다. 광주 망월동을 찾아 가족들에게 인사드렸다. 연대해 주신 동지들과 지역별로 만나는 시간을 갖고 있다. 사람들을 만나면 첫마디가 '이제는 남편·아빠·자식노릇 제대로 하라'다. 담장 안에는 '단절의 안락함'이 있다. 밖에 나오니 온갖 것들이 눈에 보여 한시도 편치가 않다. 출소한 뒤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는 것 같다. 한 달에 책 한 권 읽을 짬이 안 난다. 감옥에서 동지들이 넣어 준 책을 많이 읽었다. 가벼운 소설에서 시작해서 경제 관련 서적까지. 조선인 혁명가 김산의 삶을 다룬 <아리랑>을 오랜만에 다시 읽었다. 노동자로서의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 민중총궐기 주도자로서 촛불혁명과 탄핵 과정을 어떻게 지켜봤나.

"국민의 혁명적 분노가 촛불로 모아지는 과정을 감옥 안에서 봤다. 경이로웠다. 보수정부를 거치며 국민이 '나만 잘살면 된다'는 의식에 길들여지고 강요받던 시기였는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불의에 맞섰다. 그 자리에 함께하진 못했지만 나에게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을 행운이라고 여겼다. 민중총궐기는 촛불혁명의 심지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것을 자부하는 것에 그치면 역사에 대한 잘못이다. 평가가 뒤따라야 한다. 민중총궐기대회를 조직할 때 수많은 단체들이 박근혜 정권 퇴진을 목표로 세웠다. 20분 만에 말이다. 결정이 일사천리로 난 것은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다. '토요일 촛불'은 언론을 통해 조명됐다. 불빛이 환해지기 위해 필요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광장을 지키고 전국에서 들불처럼 번지는 촛불을 전체적으로 모으는 것은 민주노총의 몫이었다. 향후 촛불혁명을 조명하는 과정에서 민주노총의 이러한 역할을 확인하고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촛불혁명 과정에서 민주노총의 역할을 보면서 대단히 기뻤다."

두 번의 옥살이 끝에 '폭도'에서 '위원장'으로

- 재소자나 교도관과의 에피소드가 있다면.

"쌍용차 파업으로 감옥에 들어갔을 때와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당시 언론이 우리를 폭도로 내몰았다. 저에 대한 경계의 시선이 많았다. 이번에는 ‘저렇게 순하게 생긴 사람이 투쟁을 선두에서 이끌었다’며 깜짝 놀라더라. 민주노총 하면 무서운 이미지가 있었는데, 약자를 위해 싸우는 모습을 보고 신뢰하게 됐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재소자들과 얘기하면서 자주 마음이 아팠다. 대부분 생계형 범죄였다. 많은 사람들이 파견·하청노동자였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노동자 이름으로 머리띠를 매고 분노를 외치는 일이었다. 그런 세상이 빨리 오려면 민주노총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했다. 교정직 공무원들은 어찌 보면 죄수들과 함께 징역을 사는 노동자들이다. 노동조건이 열악하다. 많은 교도관들과 노조 결성과 관련한 얘기를 주고받았다. 교도소에서는 상대를 '사장'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나에게 자꾸 위원장이라고 했다. '나도 사장이라고 불러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박근혜를 감옥에 보내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을 위해 일한 사람이니 위원장이라고 부르겠다고 하더라."

- 경찰청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원회가 최근 쌍용차 사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발표가 조금만 빨랐다면 억울한 죽음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미안했다. 국가 최고통수권자가 권력에 반한다고 국민을 위법한 수단으로 탄압했다.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인간의 영혼까지 파괴하는 행위를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자행했다. 언론은 우리를 폭도로 매도했다. 권력과 언론에 의해 선과 악이 뒤바뀔 수 있는 것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한계가 아닌가 싶었다. 10년 만에 밝혀진 진실에 회사가 '해고자 복직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식으로 책임을 회피한다면 그것은 또 다른 폭력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여러 차례 쌍용차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어렵게 살아가는 해고자들이 그런 약속 때문에 희망을 갖게 된 것도 사실이다. 서른 번째 희생자인 김주중 조합원 죽음에 대한 사회적 애도가 이어지고 있지만 사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 회사가 또다시 여론이 잠잠해지기만을 기다리지 않을까 우려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 지난 정부가 저지른 국가폭력에 대해 사과하고, 국가가 해고자들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취하해야 한다."

"기득권 눈치 보며 재벌개혁 모른 체하나"

- 문재인 정부의 전반적인 노동정책을 평가한다면.

"최저임금 삭감법이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정부와 국회가 어느 편에 서 있는지 정치적 민낯이 드러난 것이다. 근로기준법 개악과 규제프리존법 도입에는 속도를 낸다. 반면 노동적폐를 청산하는 것은 굉장히 속도가 느리다. 이를 계승하거나 오히려 후퇴시키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1년이 훌쩍 지났다. 전교조는 지난 정부에서 팩스 한 장으로 법외노조가 됐다. 다시 팩스 한 장으로 권리를 회복시키면 될 문제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 기득권 눈치를 보며 재벌개혁에 손을 놓은 것 같다. 정부는 노동존중을 외친다. 노동은 민주주의의 심장이다. 하지만 심장을 어떻게 뛰게 할 것인지에 대한 비전과 로드맵이 없다. 자본을 독점한 재벌을 중심으로 경제를 발전시키는 것을 국정의 유일한 지향점으로 여겼던 1970년대 프레임을 계승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 민주노총이 최근 노사정대표자회의 참여를 결정했는데.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대회기구 출범 과정을 검토하지 않았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언급하기 어렵다. 다만 민주노총이 공식적으로 제기하는 사회안전망 구축과 재벌개혁, 노동법 전면 개정과 함께 노동자들이 노조할 권리를 통해 자기 삶의 희망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여러 제도를 마련하려면 밑그림이 필요하다. 이런 준비 없이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만나는 회의체계라고 한다면 결과적으로 자본의 요구를 얼마만큼 더 들어줄 것이냐를 논의하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 출소 기자회견에서 새로운 노동운동을 강조했다. 어떤 노동운동을 말하는 것인가.

"노동운동의 우선과제는 가장 열악한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하는 것이다. 노조간부에서 정치집단까지 누구나 같은 진단을 내린다. 부뚜막에 있는 소금도 넣어야 짜다. 어떻게 실현할 것이냐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과 실천을 한국 사회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새로운 노동운동은 사실 그다지 새로운 게 아니다. 그동안 민주적인 방식으로 노조를 운영하고 권력과 자본의 간섭을 받지 않는 자주적인 노조, 노동자 요구를 단결된 투쟁으로 쟁취하는 노조를 민주노조라고 불렀다. 그러다 보니 외환위기 이후 소외되고 배제된 노동자들을 노동운동에 담지 못했다. 가장 힘든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손을 잡지 않는 노조를 어떻게 민주노조라고 부를 수 있을까하는 질문을 자신에게 하게 됐다. 근로기준법도 적용받지 못하는 5인 미만 사업장 560만명의 노동자, 어디로 팔려갈지 몰라 내일을 꿈꾸지 못하는 파견·용역 노동자들과 함께 어떤 희망을 만들어 갈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다. 그들과 함께하고, 그들의 삶을 바꿔 내는 구체적인 계획이 필요한 시점이다. 노조를 통해 나의 권리를 찾을 수 있다는 믿음조차 없는 가장 힘든 노동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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