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된 집회 장소로 이동하려는 노동자들을 무리하게 막는 경찰을 제지하다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혐의로 기소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무죄를 선고받았다. 적법성이 결여된 집무행위를 한 공무원에게 대항한 것은 공무집행방해가 아니라는 내용이다. 노동자 집회에서 경찰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공무집행방해죄를 엄격하게 적용하라는 판결이다.

2일 <매일노동뉴스>가 입수한 판결문에 따르면 대전지법 천안지원 제1형사부(재판장 원용일 부장판사)는 지난달 22일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공무집행방해·상해·도주·공용물건손상 혐의로 기소된 금속노조 갑을오토텍지회 조합원 한아무개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혐의로 기소된 문아무개 민주노총 세종충남본부 부본부장도 같은날 무죄를 선고받았다.

갑을오토텍지회는 회사가 2016년 7월26일 직장폐쇄를 하자 같은달 31일 조합원 가족·연대단체와 함께 공장 정문 앞 공터에서 회사의 교섭해태와 합의 불이행, 단체협약 위반을 규탄하고 불법행위 중단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 계획이었다. 경찰은 공장 안에 있던 조합원들이 집회 장소로 나가지 못하게 원천봉쇄했다. 조합원들이 경찰 저지를 뚫고 집회 장소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한씨 등 일부 조합원과 경찰 사이에 충돌이 발생했다. 대열 맨 앞에 있던 한씨는 현행범으로 체포돼 수갑이 채워져 호송차량으로 이동하던 중 인근 노동자들의 도움으로 공장 안으로 들어갔고, 도구를 이용해 수갑을 풀었다. 한씨에게 도주 및 공용물건(수갑) 손상 혐의가 추가된 이유다.

재판부는 "사전에 신고된 집회 장소로 이동해 집회를 하지 못하도록 경찰관들이 제지한 행위는 공무집행방해죄의 보호대상이 되는 적법한 집무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이 과정에서 경찰관들의 방패를 잡아당기고 몸을 밀치는 행위를 한 것은 적법성이 결여된 집무행위를 하는 공무원들에게 대항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경찰이 한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하면서 피의사실 요지와 체포 이유를 고지하지 않은 것은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경찰관 상해와 도주, 공용물건 손상 혐의에 대해서도 "위법한 체포를 면하려고 저항하는 과정에서 이뤄진 행위"라며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밝혔다.

한씨 법률대리인인 김차곤 변호사(법률사무소 새날)는 "박근혜 정부 경찰이 노동자들의 쟁의권과 집회의 자유를 과도하게 막으며 벌어진 대표적인 사례"라며 "공무집행방해죄를 명분으로 한 경찰관들의 위법한 행위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의미 있는 판결"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