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호 한국노총 교육선전본부 실장

“새벽 세 시, 고공 크레인 위에서 바라본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100여일을 고공 크레인 위에서 홀로 싸우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의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해 봅니다. 올가을에는 진짜 고독한 사람들은 쉽게 외롭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조용히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쉽게 그 외로움을 투정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어딘가에 계시겠죠? 마치 고공 크레인 위에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 이 세상에 겨우겨우 매달려 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지난 하루를 버틴 분들, 제 목소리 들리세요?”

지금은 고인이 된 정은임 아나운서의 2003년 10월22일 라디오 오프닝 멘트다. 농성 129일 만에 고공 크레인 위에서 목숨을 끊은 김주익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장의 이야기를 새벽 3시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는 이렇게 전했다.

김 지회장에게 새벽의 어둠은 끝이 보이지 않는 외로움과 고독에 비하면 차라리 나았을 것이다. 새삼 이 오프닝 멘트를 떠올리게 된 것은 여전히 세상에는 외로운 싸움을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28일 쌍용차 노동자들이 쏟아지는 장대 같은 빗속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2009년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의 파업 농성을 무력진압하라는 지시를 이명박 정부 청와대가 최종 승인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경찰의 파업 진압은 ‘대테러 작전’이었다. 대테러업무를 담당하는 경찰특공대가 대테러 장비를 들고 투입됐고 저공비행하는 헬기는 발암물질이 주성분인 최루액 20만리터를 노동자들에게 뿌려 댔다. 음식이 끊기고 전기와 물은 차단됐다. 이 역시 경찰의 작전계획이었다.

그날의 진실이 밝혀지기까지 쌍용차 노동자들은 정은임 아나운서의 표현처럼 ‘이 세상에 겨우 매달려 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10년 같은 하루하루를 보냈으리라. 그사이 30명의 노동자와 가족이 세상을 등졌다. 그렇기에 “10년 가까이 지나서 이제야 우리 해고노동자들이 잘못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같다”며 “책임자를 처벌하라”는 쌍용차 해고노동자의 절규는 지난 시간의 무게보다 무겁게 다가온다.

정리해고를 반대하면서 싸운 쌍용차 노동자들의 요구는 단순하고 명확했다. “함께 살자.” 우리 사회에서 해고는 살인이기에 노동자들은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자고 이야기했던 것이다. 2018년, 가을로 들어서는 길목에서 함께 살자는 이 말이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미용실·피시방·주유소 사장 같은 소상공인들이 “최저임금 때문에 벼랑 끝으로 몰렸다”며 청와대로 행진했다. 그들은 최저임금을 자신들의 머리 위에 떨어진 ‘폭탄’에 비유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해 자영업자들은 궤멸상태라고 말한다. 정말 그럴까. 우리 사회에서 가장 적은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 역시 ‘이 세상에 겨우 매달려 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하루를 버티고’ 살아가고 있음을 우리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이들의 임금이 최저의 최저수준이 된다면 자영업자들의 살림살이는 나아질까. 왜 사회의 ‘을’들은 보수 정치권과 보수언론의 장단에 맞춰 서로에게 총구를 겨눠야 하는가.

함께 살지 못한 채 공장 밖으로 내몰린 노동자나 그 안에 남게 된 노동자 모두 행복할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알바 임금을 기어코 깎겠다는 업주와 그럼에도 그 돈을 받고 일해야 하는 노동자 또한 좋은 마음을 가질 수가 없다. 그러기에 소상공인들이 따지고 찾아야 할 것은 함께 살기 위한 방안이어야 한다.

한국노총 교육선전본부 실장 (labor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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