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큰비는 흘러 더러운 것들을 씻어 낸다. 길바닥에 개똥 같은 것들이 뒹굴다가도 한바탕 쏟아진 비에 말끔하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잘린 사람들은 분향소 천막 부여잡고 죽음을 말린다. 살아 지옥을 견딘다. 9년째다. 언젠가 대테러 진압작전 벌어진 공장 옥상 불구덩이 속에서 두들겨 맞고 피 흘린 해고자가 오늘 경찰청 앞에서 세상 등진 사람의 이름을 부르다 그만 눈물을 왈칵 쏟고 만다. 구멍 난 듯, 곧 비가 쏟아졌다. 온갖 더러운 일들이 하루 멀다고 쏟아진다. 지옥도의 조각 일부가 드러났다. 놀랍지도 않은 일이었다. 이 악다물고 소리쳐 그 죗값을 따져 물었다. 사진을 찢어 던졌다. 비 내려 저기 길 위의 비루한 것들을 씻어 낸다. 흠뻑 젖은 사람들이 비닐집에 들어 조끼와 신발을 말린다. 절한다. 한 끼 또 꾸역꾸역 주린 속을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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