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단체협약에 정리해고 등 구조조정과 관련해 노동조합의 동의를 받도록 정한 것으로 보이는데, 동의권을 포기한 적이 있나요?” “없습니다.” 중앙노동위원회 공익위원의 질문은 어느 때보다 날카로웠다. 얼마 전까지 이 정도 질문을 하는 이가 많지 않았다. 어쩌면 그렇게 물어도 결과가 크게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높디높은 법원에 가면 아예 무시당하는 게 예사다. “2018년 8월28일 오후 2시 옥시레킷벤키저 정리해고 사건.” 지난 28일 중앙노동위 심문회의에 참석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가습기 살균제 사태(옥시 사태)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비록 지난달 26일 국회가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법)을 통과시켰지만 해결해야 할 문제는 아직도 쌓여 있다. 2011년에 발생한 사건이 밝혀지는 데만 5년여, 지금까지 피해자만도 수천명에 육박한다고 한다. 사실 정확한 피해자수를 확인할 길은 없다. 태아부터 산모에 이르기까지, 안타깝게도 얼마일지도 모르는 이들은 이유도 모른 채 우리 곁을 이미 떠났기 때문이다. 특별법이 만들어졌지만 구제대상 범위를 두고는 여전히 많은 이들이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늦었지만 부디 진실만은 밝혀지길.

옥시 사태 피해자들 중에는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적지 않은 노동자들도 있다. 물론 신체와 생명의 위해를 입고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는 당사자나 가족과 비교할 수는 없다. 살균제를 불법 사용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옥시에 대한 불매운동이 일었다. 회사는 이를 핑계 삼아 직접운용사업에서 철수하거나 소유한 제조공장을 폐쇄하는 조치에 들어갔다. 지난해 11월30일 익산공장 폐쇄도 그 조치 중 하나다. 그리고 노동조합의 동의를 받은 적이 없다. 노동조합과 조합원들은 “정리해고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지금까지 싸우고 있다.

옥시 사태가 알려지고 진행되는 과정은 우리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그림이다. 전혀 바람직하지 않은 모양이지만. 회사는 감추고, 전문가는 부역하고, 정부는 방조했다. 마지막은 늘 그랬듯 노동자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노동자들은 거리로 나선다.

확인해 본 결과 지금까지 회사가 받은 공식적인 처벌은 과장광고를 이유로 한 공정거래위원회 벌금이 고작이다. 대표와 회사를 상대로 한 형사재판 과정은 진행 중일 뿐 결과는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소위 유명대학 소속 학자는 살균제의 위험을 분명히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와 공모해 아무 문제가 없는 제품처럼 조작했다. 정부는 어떤가.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지 않았다.

분명하다. 노동자들은 책임이 없다. 그러나 정리해고를 결행했다. 뭐가 그리 두려웠던지 법원도 아닌 (지방)노동위원회에서부터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유명 법무법인을 대리인으로 세웠다. 아마도 회사는 익숙한 유행가처럼 결론이 나기를 기대했을 게다. “경영상 어려움으로 (…) 정리해고는 정당하다.” 그러나 그런 시나리오는 더 이상 없다. 지난 6월 전북지노위는 회사에 “노동자 36명에 대한 정리해고는 부당하다”며 “이들을 원직에 복직시키고 해고 기간에 정상적으로 근로했더라면 받을 수 있었던 임금상당액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참으로 다행이었다. “워낙 명확한 사건이라 회사도 노동위 판정을 수용하지 않을까요?”라고 물었다. 하지만 위원장은 “아닙니다. 분명 끝까지 갈 것 같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의 예상은 맞았다. 사건은 중앙노동위로 갔다. 무슨 믿는 구석이 있는지. ‘혹시나’ 하는 걱정이 커져 간다. 그러나 그럴 리 없다. 심판 내내 보여 준 공익위원들의 단호함이란. 그 어떤 사건에서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경영상 필요가 아니라 ‘긴박한’ 경영상 필요가 있어야 합니다”라거나 “당시 기준으로 노동조합 위원장만이 응모한 것이 맞죠?”라고 또 묻는다.

정리해고제는 반드시 폐지돼야 한다. 단시간 안에 그러지 못한다면 법은 반드시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 그날의 노동위원회가, 특히 공익위원들이 이런 우리의 바람을 들어줬다. 중앙노동위 심판정 안에서는 ‘단체협약을 노동자를 위한 살아 있는 최고의 규범’으로 되살렸다. 정리해고 피해를 노동자들에게 돌려서는 안 된다는 의지까지. 요즘 따라 노동에서의 더딘 개혁에 다소간 애를 끓이고 있었던 터라, 시원한 한줄기 소나기 같았다.

중앙노동위를 나서는 길에 “이 정도라면 더 이상 법원으로는 가지 않겠죠?” 하고 누가 묻는다. “그래야죠” 하고 대답하면서도, 회사측보다 대리인에게 더 관심이 간다. 그 이유는 다들 잘 알 것이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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