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진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집행위원장

여유로운 주말을 보내던 당신. 매캐한 냄새가 후각을 자극한다. 곧바로 냄새의 진원지를 찾아 나선다. 같은 아파트 단지 내에서 발생한 화재를 발견하고 숨 돌림 틈도 없이 119에 화재 사실을 알리기 위해 전화를 한다. 그런데 화재신고를 접수하는 소방공무원이 당신에게 황당한 말을 건넨다. “빨리 불을 끄든지, 주민들 대피시키고 전화하세요.”

예상 밖의 반응에 당혹해하는 당신에게 수화기 너머로 담당 소방공무원이 한마디를 덧붙인다. “아무때나 불났다고 전화하면, 그때마다 출동하라는 겁니까?”

당신이 화재상황에 대처하고자 119에 전화했는데 이런 반응을 들었다면 어떨까.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실제 존재해서는 안 될 일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이와 비견할 만한 일이 일터에서 발생했다. 산업재해가 발생한 긴급 상황에서 즉각적 대처와 현장출동을 요구하는 ‘1588-3088 위험상황신고전화’에서 벌어진 일이다.

지난 21일 저녁 7시20분께 경기도 안산 소재의 한 자동차부품 공장에서 오일히터 오작동으로 인해 작업자들이 구토를 하고, 호흡곤란 증세를 보이는 일이 발생했다. 문제를 확인한 노조 노동안전부장은 즉각 ‘1588-3088 위험상황신고전화’로 전화했다. 그러나 돌아온 답변은 예상 밖이었다. 전화를 받은 고용노동부 직원은 “위험 사실을 먼저 사업주에게 알리고, 작업자들을 현장에서 대피시키고, 작업을 중단시키라”고 말했다. 당혹스러움에 “뭐라고요?” 하고 반문하자 돌아온 답변은 더욱 황당했다. “조치를 요구했는데 사업주가 하지 않으면 그때 긴급전화로 신고해야지, 아무때나 신고해서 법적근거도 없이 현장에 나오라고 하면 되겠느냐”는 취지의 얘기였다.

5분 뒤 노안부장에게 산재예방과 소속임을 밝힌 노동부 직원이 전화해 상황을 설명해 달라고 했다. 상세히 현장상황을 설명하자 돌아온 답변은 “지금은 근로감독관이 부족해서 현장에 출동할 수 없으니 내일 중으로 현장에 나가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결국 해당 사업장에 사고 다음날인 22일 오후 4시께 근로감독관 2명이 현장을 방문해 상황을 파악한 후 몇 가지 조치를 취했다.

노동부에서 운영하는 ‘1588-3088 위험상황신고전화’는 노동자가 작업상 생명에 위협을 느끼거나 큰 위험이 예상되는 현장상황을 신고하면 담당 공무원이 현장에 출동해 사태를 점검하고 조치하도록 하기 위해 마련됐다. 365일 24시간 가동되는 위험상황신고전화는 전국 어느 곳에서든지 전화를 하면 해당 지방노동관서로 자동 연결된다. 2001년 1월부터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위기상황에서 무용지물에 가깝다는 현장노동자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폭염이 한참이던 지난 7월 말, 대전 소재 한 타이어 제조공장에서 황당한 일이 발생했다. 현장 고온작업에 문제를 느낀 작업자가 위험상황신고전화를 한 것. 이미 같은 공장에서 며칠 전 열경련 등으로 2명의 작업자가 쓰러진 것을 지켜본 상황에서 적정한 조치를 요구하기 위한 신고였다. 그러나 잠시 후 찾아온 것은 노동부 근로감독관이 아니라 회사 관리자였다. “왜 위험상황신고전화를 했냐”며 따지러 온 것이다. 위험상황신고전화는 신고자 신원보호를 기본지침으로 하고 있으나, 위 사례처럼 회사에 신고자의 신변을 노출해 사업주 눈치를 보느라 위기상황이 발생해도 위험상황신고전화에 전화하는 것을 꺼리게 되는 상황 또한 발생하고 있다.

위에 언급한 최근 사례들을 통해서 확인하듯이 위험상황신고전화에 대한 종합적인 점검과 정비가 필요하다. 담당 직원의 실수라고 치부하기엔 비슷한 사건이 이곳저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근로감독관이 부족해 현장에 출동할 수 없다는 하소연은 위험상황신고전화에서 자주 접하는 단골메뉴가 되고 있다. 적정한 인원의 확충, 전문성을 갖기 위한 교육 등 여러 현실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이와 함께 최소한 노동조합이나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이 현장에서 위험상황에서 작업중지를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 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예방 조치에 적극 나설 수 있도록 노동자에게 그에 걸맞은 권한을 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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