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다솜 공인노무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한 시립예술단에 비상임 합창단원으로 위촉돼 10년 가까이 노래를 하며 주민들에게 좋은 소리를 들려준 예술노동자 A씨가 있다. A씨는 2015년 말 예술단에서 쫓겨났다. 그해 10월 중순에 아이를 낳고 출산휴가 중이었던 A씨는 예술단 요구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나와 연말에 실기평정을 치러야 했다. 결국 최하위 등급을 받고 해고됐다.

누구라도 억울했을 상황이었다. A씨는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제기하고 중앙노동위원회 판정을 받아 이듬해 9월 복직했지다. 하지만 예술단은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해고일로부터 1년7개월이 지나 행정법원의 부당해고 인정 판결을 받고 나서야 싸움을 멈췄다.

2015년 해고 사건은 비정규 예술노동자이기에 남들보다 몇 배는 많은 산을 넘어야 했음을 보여줬다. 슬프게도 A씨는 자신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임을 증명하는 일부터 해야 했다. 그리고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상 사용기간 제한 예외에 해당하는 초단시간 근로자인지 여부를 다퉈야 했다. 나아가 기간제 근로계약의 갱신기대권이 존재하는지, 재계약을 거절할 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는지까지 계속해서 다퉈야만 했다.

A씨가 넘어야 했던 산의 숫자는 비정규 예술노동자의 고용불안과 열악한 노동조건에 비례했다. 예술노동자이기에 가장 넘기 힘든 산은 갱신 거절의 합리적 이유, 즉 평정의 객관성 문제였다.

예술단의 정기평정은 실기평정이 70%를 차지한다. 1년에 단 한 번 실기평정으로 재고용 여부를 결정한다는 의미다. 그만큼 실기평정이 중요한데도 성악이라는 전문적인 예술 분야라는 이유로 ‘깜깜이 평가’가 수년간 계속됐던 것이다.

실기평정 곡마다 성격과 평가 목적이 달랐음에도 곡별 비율이 정해져 있지 않았고, 각 곡마다 세부 평정항목이 없었으며, 녹음·녹화 등을 통한 이의신청 절차조차 없었다. 실기평정의 객관성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오로지 외부 전문가의 평가라는 사실뿐이었다.

다행히 평정의 문제점이 인정돼 A씨는 복직됐다. 그런데 예술단은 외부 평정위원수를 늘리는 것 외에 실기평정 기준을 바꾸지 않았다. 행정법원 판결이 확정되던 지난해 12월 말 첫 번째 해고 때와 동일한 평정기준으로 A씨에게 최하위 등급을 매기고 해고를 통보했다.

두 번째 해고에 대한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공익위원들이 가장 많이 주저했던 부분이 바로 ‘전문적인 예술 분야’라는 점이었다. 사측이 집요하게 파고들었던 지점이기도 하다. "예술 분야이므로 주관적 평가일 수밖에 없다"거나 "다른 대부분의 시립예술단도 다르지 않다"는 주장이었다.

전문영역에 속하는 예술노동자 평정이라고 해서 달리 볼 것은 아니다. "예술 영역이므로 주관적 평가일 수밖에 없다"는 것은 변명에 불과하다. 주관적 평가일 수밖에 없기에 사용자는 평정자의 자의적 평가 개입을 최소화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해야 할 의무가 있다. 전문적인 예술 분야라는 이유로 사용자로서 취해야 할 최소한의 조치도 이행하지 않은 채 외부 평정위원 뒤에 숨어 책임을 회피하는 일은 용납될 수 없다.

더욱이 동종업계의 낙후한 관행을 방패 삼아 사용자 책임을 무마하려는 모습도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오히려 종종 발생하는 시립예술단 해고 사건마다 평정의 객관성과 공정성이 결여돼 번번이 부당해고로 판정받는 모습을 통해 ‘우리 예술단부터’ 객관적인 시스템을 만들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시(市)는 예술단 운영 목적이 주민에게 수준 높은 공연을 제공함으로써 지역문화를 발전시키고 예술을 진흥시키는 데 있다고 했다. 진정으로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후진적인 평정시스템을 개선해 비정규 예술노동자의 고용안정을 보장하고, 주민에게 공연을 제공하는 노동자들이 예술적 기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토대를 마련해 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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