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그때 입건만 했어도…"

법원이 노조파괴로 악명을 떨친 심종두 전 창조컨설팅 대표에게 실형을 선고한 지난 23일. 창조컨설팅이 할퀴고 간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와 보쉬전장지회의 법률대리인이었던 김상은 변호사(법률사무소 새날)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명박 정부 고용노동부는 2011년 말 순천향대학병원 압수수색을 통해 심종두와 창조의 노조파괴 행위를 알고도 입건조차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당시 심종두를 구속수사했다면 얼마든지 2011년 말 이후 창조의 유성(기업)·보쉬(전장) 등에서의 노조파괴 공작은 중단될 수 있었다"며 안타까워했다.

김 변호사가 지목한 순천향대병원(순천향대중앙의료원)은 창조컨설팅과 인사노무자문계약과 경영자문계약을 체결한 사업장 중 한 곳이다. 노동부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 조사보고서에도 언급된 바 있다. 개혁위는 조사보고서에 "노동부는 순천향대병원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위반 사건에서 노무법인 창조컨설팅의 노조법 위반 사실을 인지하고도 대응책을 수립하지 않았으며, 그 결과 창조컨설팅의 노조파괴 행위가 지속될 수 있었음"이라고 썼다. 2011년 순천향대중앙의료원과 창조컨설팅, 노동부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26일 <매일노동뉴스>가 심종두 전 대표와 조아무개 전 노사혁신팀장 등 창조컨설팅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2010년 3월부터 2011년 8월까지 순천향대중앙의료원 회의록을 입수했다.

유성기업·보쉬전장에서 창조컨설팅이 작성한 전략 문건은 다수 공개됐지만 심 전 대표가 회의에 참석해 구체적으로 노조파괴를 어떻게 조언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회의록은 공개된 적이 없다.

회의록은 모두 48건이다. '순천향중앙의료원 인사·경영 전략회의록' '병원 가치제고를 위한 전략회의' '병원 경영활성화를 위한 전략회의' 같은 문서 몇 개만 읽어 봐도 창조컨설팅의 전략을 알 수 있다. 기존 순천향대중앙의료원노조를 고사시키기 위해 어떤 복수노조 설립 시나리오를 만들고, 시나리오가 실행됐는지 말이다. 해당 문건은 2011년 12월9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서울서부지청이 노조법 위반 혐의로 순천향대중앙의료원을 압수수색해 확보한 것이다.
 

정희연 전 원장 취임 후 창조컨설팅과 계약

순천향대의료원 부속 4개 병원 중 천안병원을 제외한 서울·부천·구미병원노조가 2009년 10월 순천향대중앙의료원노조로 통합했다. 통합노조 세력이 커지는 것을 우려한 병원측은 2010년 3월 창조컨설팅과 계약을 체결했다. 심종두 전 대표는 2010년 3월3일부터 2011년 8월3일까지 매주 또는 격주로 38회에 걸쳐 회의에 참석했다. 노조 활동과 동향, 노동부를 비롯한 정부기관 동향을 브리핑하고 대응전략을 제시했다.

창조컨설팅의 컨설팅 방향은 당시 통합노조 위원장이었던 최재준 전 순천향대중앙의료원노조 위원장을 징계해고하고, 집행부 반대파 노동자들을 움직여 노노갈등을 일으키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회의록을 보면 '노노갈등' '반대계파' '2노조'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심 전 대표는 컨설팅 계약기간이 끝나기 직전인 2011년 7월 복수노조제도 시행에 맞춰 서울·부천·구미병원에 2노조 설립을 사실상 진두지휘했다. 회의록을 보면 당시 병원측은 2010년 2월 정희연 원장 취임 이후 임금·단체교섭을 앞두고 통합노조 견제에 집중하고 있었다.

병원측은 최재준 전 위원장의 조합원 자격을 문제 삼았다. 2008년 승진으로 3급갑 직급에 있었던 최 전 위원장을 조합원이 아닌 관리자로 본 것이다. 그런데 병원 단체협약에는 재임기간 중 승진할 경우 잔여임기 동안 조합원 자격을 인정하도록 돼 있었다. 병원이 단협을 해지하는 한편 노조 내부 집행부 반대파를 부추기는 방안을 검토한 이유다.

창조컨설팅은 "노조의 내부갈등을 이용하는 방안은 현 집행부 반대계파가 주도적으로 진행하지 않을 것이므로 협공형식으로 진행"(2010년 3월24일 4차 회의록)하라고 제안했다.

창조컨설팅 제안은 그대로 이행됐다. 병원은 노동부에 위원장의 조합원 자격 여부를 질의했고, 노조 집행부 반대파도 내부에서 조합원 자격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회의에선 집행부 반대파들이 임시총회 개최를 요구해 위원장 불신임 안건을 가결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그러자 창조컨설팅은 "임시총회를 위해 3분의 1을 모으기가 쉽지 않다"며 "반대계파가 법원 판결을 받아 뒤통수치는 것으로 해야 할 것"(2010년 4월28일 9차 회의록)이라고 조언했다.

잇따라 업무복귀 명령을 내린 뒤 이를 거부한 최 전 위원장을 무단결근으로 징계해고하도록 아이디어를 제공한 것도 창조컨설팅이었다. 최 전 위원장은 같은해 11월 창조컨설팅 프로세스대로 징계해고됐다.

2011년 복수노조제도 시행되자마자 3개 병원 2노조 '뚝딱'

병원측은 최 전 위원장이 해고된 뒤인 2011년 회의부터는 반대파를 이용한 노노갈등과 복수노조 설립방안을 논의했다. 당초 최 전 위원장을 탄핵하고 새로운 노조위원장을 선출하는 방안을 구상했다가, 반대파에 의한 임시총회 소집 요구가 여의치 않자 2노조 설립을 지원하는 쪽으로 선회했다.

2노조 설립 방식이나 노조가입 시기를 결정하는 데에도 창조컨설팅의 깨알같은 '컨설팅'이 한몫했다. 창조컨설팅은 한꺼번에 많은 인원이 가입하면 설립총회를 할 때 의결정족수를 채우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설립총회는 발기인 5명이 모여 진행하되 가입원서에 날짜를 비우고, 노동조합이 설립된 이후에 날짜만 기입하는 것이 바람직"(2011년 6월29일 경영활성화 전략회의)하다고 밝혔다.

창조컨설팅은 반대파 일부를 기존 노조에 잔존시키라고 조언했다. 최 전 위원장을 탄핵시킨 뒤 선거에서 당선된 후 2노조 합병을 추진하기 위해서다. 창조는 "탄핵/선거에도 실패하는 경우 현 집행부 세력만 남겨 놓고, 모두 2노조로 가입하고, 교섭창구 단일화 전략을 통해 대응함으로써 2012년 이후 시나리오를 완성"(2011년 7월13일 경영활성화 전략회의)하라고 주문했다.

노조파괴 공작은 알려진 대로 성공했다. 구미·부천·서울병원에 복수노조가 설립됐다. 2011년 4월 2천353명이던 기존노조 조합원은 같은해 8월 399명으로 급감했다.

창조컨설팅의 등골 서늘한 마지막 조언
"신설노조 변질 가능성 방지하라"


소름 끼치는 반전은 아직 남아 있다. 노조파괴에 성공한 창조컨설팅은 그해 8월3일 마지막 회의에서 병원에 2노조를 다루는 방법을 설명했다. 이른바 '2노조 변절 방지 방안'이다.

창조컨설팅은 "현재는 각 병원별 신설노조가 의료원과 협조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향후 집행부 주요 인물 변경 등의 경우나 노사관계 변동으로 인해 각 병원별 신설노조도 중앙노조와 같이 변질될 가능성이 당연히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신설노조 집행부의 장기집권 체제를 의료원에서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방안과 신설노조 집행부 인물들을 철저히 관리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노조는 노조일 뿐이니 지속적인 지배·개입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노조파괴 설계' 증거 확보하고도 손 놓은 노동부

순천향대중앙의료원노조가 같은해 10월5일 이아무개 서울병원 사무처장과 오아무개 시설팀장을 노조법 위반 혐의로 노동부에 고소했다.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서울서부지청은 두 달 만인 12월9일 순천향대중앙의료원을 압수수색해 다량의 회의록을 확보했다.

문제는 심종두 전 대표가 회의에 참석해 노조의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을 침해하는 부당노동행위를 설계하고 이행을 점검한 사실이 회의록에서 확인됐는데도, 노동부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심 전 대표와 조아무개 전 팀장은 입건조사는커녕 참고인조사조차 받지 않았다.

순천향대중앙의료원노조의 손해배상 청구소송 등을 대리했던 김차곤 변호사(법률사무소 새날)는 "2011년이면 유성기업 문제로 (창조컨설팅 등에 관해) 정부 유관기관이 대응전략을 논의하던 시기"라며 "12월이면 정부가 심종두를 입건해 처벌할지 내버려 둘지 판단했을 시점인데, 결국 후자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심종두를 내버려 두면서 병원 사업장과 제조업을 중심으로 창조컨설팅의 노조파괴가 지속됐다"며 "노동부가 직무를 유기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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