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근로기준법 1조는 “이 법은 헌법에 따라 근로기준의 조건을 정함으로써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 향상시키며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법의 목적을 명시한다. 그런데 같은 법 11조에서는 “이 법은 상시 5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에 적용한다”며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제외한다. 임금이 너무 높거나 재산이 많아 특별한 보호가 필요 없는 사람도 아니고(이 경우에라도 노동자라면 당연히 보호를 받아야 하겠지만), 바로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이 근로기준법에서 제외돼 있다. 물론 11조2항에서 4명 이하 사업장의 경우 대통령령으로 일부 규정을 적용하도록 했지만 부당해고·휴업수당·노동시간과 관련한 조항, 연차휴가 등은 적용되지 않는다.

가장 많이 보호돼야 할 노동자는 영세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다. 기업규모에 따른 임금격차가 큰 것은 그만큼 권리가 제대로 보장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통계청에서 발표한 ‘임금근로 일자리별 소득분포 분석’을 보면 50인 미만 기업체 노동자는 300인 이상 대기업 노동자 임금의 55% 정도를 받는다. 5인 미만 사업장으로 내려가면 상황이 심각해진다. 한국노동연구원이 발표한 ‘4인 이하 사업장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6년 기준 4인 이하 사업장 노동자 임금은 월 138만원으로 10인 이상 사업장 노동자 월 279만원의 절반에 불과하다. 4인 이하 사업장 노동자는 2016년 기준으로 521만명에 이른다. 전체 노동자의 4분의 1이 근로기준법을 제대로 적용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 조항은 ‘평등권’에 위배된다. 그런데 1999년 헌법재판소는 이 조항을 합헌이라고 판시(98헌마319)한 바 있다. “국가의 근로감독 능력에 한계가 있다”는 것 때문에 합헌이 됐다. 정부가 근로감독을 하기 어렵다면 노동자들에게 권리를 알려 주고 노동자 스스로가 적극적으로 대응하도록 하면 된다. 부당노동행위를 엄격하게 처벌하고 노조 만들 권리를 주면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해결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국가의 책임 방기를 권리 박탈의 근거로 삼은 것이다. 정부는 2006년 비정규직 관련법안 후속대책으로 ‘5인 이하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을 약속한 바 있다.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대가였으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이 조항이 유지되는 이유는 ‘영세 사업자들의 지불능력’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한국에서 4인 이하 사업장은 편의점과 음식·숙박업 등 서비스업, 제조업의 부품 조립을 담당하는 영세기업, 인쇄·출판기업과 의원 등이다. 이 중에 충분히 지불능력을 갖춘 곳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많다. 대기업이 골목상권까지 밀고 들어오며 프랜차이즈 원청은 과도한 비용을 수탈하고, 건물주들은 임대료를 대폭 올리고 있다. 대기업은 하청업체에 단가인하 압력을 행사하고, 중층적 하도급 구조 말단에 있는 기업들은 원청에 수탈당한다. 모든 정책은 영세 사업자들에게 불리하게 만들어 놓고 영세 사업자들에게 ‘너희도 더 아래에 있는 노동자를 착취해서 살아남아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근로기준법은 최저기준이다. 그 어떤 이유로도 적용제외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특히 그 적용에서 제외되는 이들이 가장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기업규모에 따른 노동자들의 격차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아래를 끌어올리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가장 열악한 노동자들의 권리를 우선 보호하고, 그로부터 파생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논의하면 된다. 이런 논의를 하지 않은 상태로 ‘영세 사업자의 지불능력’만을 탓하는 것은 정부의 책임방기일 뿐 아니라 원청과 프랜차이즈 대기업들에게만 부가 축적되는 지금의 구조에 안주하겠다는 선언일 뿐이다.

2008년 국가인권위원회는 “4인 이하 사업장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의 열악한 근로조건 개선과 노동기본권 및 생존권 보호를 위해 근로기준법을 4인 이하 사업장에도 점차 확대 적용하라”고 권고했다.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도 업무를 마치면서 “근로기준법 시행령을 개정해 5인 미만 사업장에도 관련법 적용을 확대하고 이를 위해 제도개선을 위한 태스크포스를 구성하라”고 주문했다.

문재인 정부가 내세웠던 ‘노동존중’을 조금이라도 실현하고자 한다면, 그리고 정부가 그토록 강조한 ‘양극화 문제 해결’에 조금이라도 성과를 남기고자 한다면 근로기준법을 모든 사업장에 적용해야 한다. 법 개정이 어렵다고 한다면 시행령 개정을 통해서라도 적용제외 조항을 없애 나가야 한다. 정부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이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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