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노동의 이익과 관점을 정치적으로 배제하는 것은 곧 한 사회가 사회통합, 사회복지, 정의의 실현 등의 공공재를 창출하는 과정에서 경쟁적 이념을 제시할 수 있는 가장 큰 잠재세력의 역할을 배제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회의 계층구조에 있어서나, 시장이 창출하는 불평등 효과에 있어서 그리고 경제와 사회에서 재벌의 일방적 힘의 우위를 견제하는 데 있어서 부정적인 효과를 만들어 낼 수밖에 없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 나오는 일부다.

위 글에서는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에서 노동이 정치세력 및 계급으로서 확고한 자리매김을 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따갑게 지적한다. 동시에 시장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점 또한 분명히 했다. 노동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경우라도 국가는 노동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위 개정 2판이 2015년 4월에 나왔으니 촛불혁명 이전의 상황만을 분석하고 있다.

그런데 어떤가. 절묘하게도 2018년 8월 오늘의 사회와 노동현장을 꼬집는 것처럼 느끼는 것은 나만의 경험 탓일까. 110년 만의 폭염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이 덮친 까닭도 있겠지만 답답하기만 한 날들의 계속이다. 석학의 글을 다시 꺼내어 본 이유다. 또다시 느끼지만 글 곳곳에 분석과 해답이 참으로 절묘하게 들어 있지 않은가. 오늘의 위정자들이라면 분명 읽어 봤으리라. 적어도 자문을 구하지 않았을까.

위 명제를 적용해 보자. 답은? 전문가들 사이 의견이 갈리긴 하지만 적어도 촛불혁명 이후 지금까지 보여 준 모습은 ‘노동배제’는 아니더라도 ‘노동과 함께하려는 의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정작 진짜 노동은 없다는 게 중론이다. 정부 입장에서는 억울할 만도 하다. ‘노동존중 사회 건설’이라고까지 한 정부를 두고 노동을 배제했다고 평가할 수 있느냐고 되물을 수 있다. 안타깝지만 ‘일자리’만 무성했지 ‘노동’은 없었다.

알기 어려운 통계를 그대로 믿어야 하는지, 드디어 언론을 지배한 자들의 왜곡이 시작된 것인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전문가들조차도 의견이 갈리는, 그렇기 때문에 현장 노동자와 시민들은 도저히 알기 어려운 난제들을 정부가 속 시원하게 설명한 일도 없다. 국민연금부터 최저임금 개악까지. 더욱 답답한 일은 정작 촛불을 든 노동자와 시민들에게조차 이해를 구하는 노력을 다하지 않는 데 있다.

촛불을 든 노동자와 시민의 뜻의 반대편에 있는 정책을 시도하는 데에도 스스럼없다. 왜 갑자기 이럴까. ‘조바심’으로 분석하는 이들도 있지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다만 지금의 그런 방식으로는, 우리가 바라고 또 바랐지만, 결코 정부가 원하는 ‘성공’에 이를 수 없다는 점만은 짐작할 수 있다.

짐작의 근거는 위 책에 잘 나와 있다. 지난 세 번의 (범)민주정부는 실패했다고 평가하고 “이는 결국 집권 엘리트들이 그들을 지지한 투표자들에 대해 가져야 할 책임성의 인식이 약했던 결과이며, 이를 강제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가 약한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며 실패 원인을 분석한다. 역사가 보여 주고 있다는 말이다. ‘나라다운 나라’의 성공을 원한다면 지지자들에 대한 책임감이 그 시작이라는 말이다.

짧지 않은 기간이 지나고 있다. 과연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였던가? 사실 ‘진심으로 노동과 함께하려는 진정성’을 느끼지 못했다. 노동자들, 특히 조직된 노동에 대한 신뢰가 높지 않다는 평이다. 기우이길 바라지만 일부 분석에서도 문재인 정부가 조직화된 노동에 호의를 갖지 않는다고도 한다. 예를 들어 <왜 분노해야 하는가>에서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우리 사회 불평등 원인 중의 하나로 거대 노동조합과 사용자의 담합을 꼬집었다. 뼈아픈 지점도 있지만 노동의 역사와 경험 전체를 분석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 동의하지 않는다. 일반화의 오류에 빠질 수 있는 지점이다.

스스로 여러 번 밝혔듯 ‘촛불시민과 노동자에 대한 책임감’ 정도가 이 정부가 가져야 할 최소한의 ‘책임’일 게다. 광장에서의 하나된 목소리가 촛불혁명 이후 수없는 의견이 분출하고 다양해지고 있으니 그 어려움을 모르지 않는다. 최장집 교수도 지적한다. 그럴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자. 지금이라도 당장 시민·노동자와 생각을 좇아 함께해야 한다. ‘책임감’을 실천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노동자와 시민은 현장을 매우 잘 분석하고 답도 알고 있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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