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남북노동자가 다시 만났다. 안녕한 모습으로. 110여 년 만에 가장 뜨겁다는 한반도 여름, 상암벌에서. “반갑습니다.” 2박3일 짧은 기간이지만 남과 북의 노동자들이 서로를 격려하는 모습에 노동자·시민·남녀노소 모두가 참으로 오랜만에 가슴속 깊은 곳에서 뭔가 뜨거운 것을 느끼지 않았을까. 양대 노총이 “4·27 판문점선언 이행 촉구”를 외친 것처럼, 이번 남북노동자통일축구는 그냥 축구가 아니었다. 노동자와 시민이 앞장서 남북의 평화와 통일을 이끈 축제였다.

감동을 준 장면이 한둘이 아니다. 조선직업총동맹 주영길 위원장을 포함한 27명의 임원진이 양대 노총을 방문한 것 자체가 상징이다. 오랜 선배들의 말씀으로는 70여 년 역사상 북측 노동단체에서 노총을 방문한 게 처음이란다. 북쪽에서 오신 손님들의 모습을 보고 싶어서인지,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주변에는 방문단을 맞이하는 이들로 한참을 북적였다. 김주영 위원장과 주영길 위원장의 조우를, 대회의실 양측에서 역대 위원장들과 열사들이 지켜보던 모습은 또 하나의 노동역사가 되리라.

점수는 숫자에 불과하다? 그래도 경기는 경기다. 3대 1과 2대 0.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직총의 생활체육이 남측을 앞도했다. 더 큰 점수차가 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는 평가가 대부분이었다. 2015년 가을과 비교하면 말이다. 기억이 생생하다. 6대 0. 그것도 경기 시작 후 얼마 되지 않은 시간에 벌어진 사건이다. 그날의 5·1 경기장의 다소 부끄러운 장면과 비교한다면, 고작 3년 만에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에서 선발된 선수들이 이룬 ‘급격한’ 경기력 향상에 외려 기뻐했다. 그리고 내년엔 역전이다!

축구만 하러 만난 것은 아니다. 남북노동자들은 용산역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참배했다. 분단 전의 역사다. 노동자상 앞에서 느낀 감정은 남과 북이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에게 가장 큰 울림을 준 장면은, 누구나 동의하겠지만, 마석 모란공원 전태일 열사 묘역에서의 묵도였다. 말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남과 북 모두가 열사의 희생을 기렸다. 이 순간, 우리만이 아닌 북측 노동자에게도 열사가 되는 순간이다. 가능하다면 앞으로도 이런 모습이 많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얼마나 기억할지는 모르겠지만, 다음에 평양을 가게 되면 강주룡 열사(북측에서 열사를 기리는지는 알 수 없다)를 참배할 수 있다면 어떨까. 그 자리에서만은 “우리는 하나다”라고 한 번 더 공감하지 않을까.

손에 손을 맞잡고 어우러진 우정 한마당도, 다시 만나자는 환송 자리도 끝났다. 짧았지만 많은 교훈을 남겼다. 개인적으로 통일을 위해 시민과 노동자가 앞장서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생각이 있는 정부라면, 노동자와 시민이 나서겠다고 하면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앞장서게 해야 한다. 4·27 판문점선언 이후 실로 오랜만에 사회 곳곳에서 ‘통일’ 담론이 일고 있지만 확실한 변화를 느끼기엔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다.

그런데 어떤가.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에서 보듯이 정부 주도가 아니더라도 남과 북 노동자와 시민은 서로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작지만 함께 실천할 수 있는, 서로가 이미 공감하기 때문에 무엇이든 잘할 수 있다. 통일을 염원하는 정부라면 이들이 희망하는 그 어떤 종류의 교류라도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양측 정부나 대외적 환경에 좌우되지 말고, 때론 공식적인 관계가 소원해지더라도, 노동자와 시민들의 교류는 강화하고 보장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 시대에 진정 필요한 통일은 높은 수준의 정치가 아니라 노동자와 시민의 생활이기 때문이다.

마침 남북노동자 3단체는 이번 방남을 계기로 남북노동자 간 교류를 크고 진지하게 이어 가기로 했다. '남북노동자대표자회의 공동합의문'에 따르면 3단체는 2001년 결성된 ‘조국통일을 위한 남북노동자회’를 이어 나간다. 10·4 선언에 즈음해 2차 남북노동자회를 개최하는 것은 물론 대표자회의를 해마다 정례화할 계획이다.

반드시 계속돼야 한다. 양측 정부도 적극적으로 지지하지 않겠나. 3년 만에 남과 북의 노동자들이 만났다. 2007년 창원에 이은 무려 11년 만의 남측 방문이다. 이런 정도의 속도는 5G세대에 걸맞지 않다. "만나야 통일"이라고 하지 않던가. 단순하지만 현상적으로 통일을 이보다 잘 표현한 말을 보지 못했다. "자주 만나자." "안녕히 다시 만나요." 상암벌에 모인 모두가 노래하고 약속했다. 그때까지 모두 안녕하시길.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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