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남북 노동자가 3년 만에 만났다. 북측 노동자들은 11년 만에 남측을 방문했다. 남북 노동자들은 4·27 판문점선언 이후 첫 민간교류인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를 열고 통일의 마중물 역할을 자처했다. 분단 73년의 아픈 역사를 청산하고 새로운 평화의 내일을 만들어 가자고 약속했다. 남북 노동자들은 마주하고 화합하며 "남북관계의 획기적인 개선과 비전을 이룩하고 공동번영과 자주통일을 앞당긴다"는 판문점선언을 실천했다.

▲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 조직위원회


남북 노동자 3단체, 판문점선언 이행 약속

12일 오후 북측 노동자들이 2박3일간의 짧은 방남 일정을 마무리하고 북으로 돌아갔다.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 참석차 서울을 방문한 북한 노동자들과 이들을 환송하기 위해 도라산 출입경사무소를 찾은 남측 노동자들은 ‘우리겨레 하나로 자주통일’을 염원하며 “마음과 뜻을 합쳐 노동자들이 통일의 문을 열어 나가자”고 다짐했다.

▲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 조직위원회

주영길 조선직업총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장과 양철식 6·15 북측위원회 부위원장을 비롯한 북측 대표단 64명이 지난 10일 오전 육로를 통해 방남했다. 조선직총과 한국노총·민주노총 대표자들은 같은날 오후 서울 광진구 워커힐호텔에서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 취지와 소감을 밝혔다.

주영길 위원장은 “역사적인 두 차례의 북남수뇌상봉(남북 정상회담)과 판문점선언 채택으로 민족의 화해단합과 북남관계 발전의 새 시대, 평화의 새 시대가 열리고 있다”며 “겨레의 통일열망이 뜨겁게 분출하고 있는 뜻깊은 시기에 북남노동자통일축구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서울을 방문했다”고 말했다. 그는 “북과 남의 각계각층 사이의 래왕(왕래)과 접촉의 길을 넓히고 통일의 대로를 더욱 든든히 다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판문점선언을 고수하고 이행해 나가는 데 선봉적인 역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 조직위원회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은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가 남북 화해와 단합의 소중한 밑거름이 되길 희망한다”고 답했다. 그는 “헤어져 살아온 만큼 남북 노동자가 한길을 걸어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며 “그럼에도 남과 북의 노동자가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지금껏 함께해 온 것은 바로 구존동이(求存同異)의 자세, 우리 민족끼리의 원칙을 지켜 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1999년 처음 평양에서 개최된 통일염원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가 기억난다”며 “분단과 대립의 20세기 끝자락에서 평화와 통일이 너무도 절박했던 시절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네 번째 열리는 역사적인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는 역진불가능한 조국의 평화와 번영, 통일시대를 위해 북과 남의 노동자가 함께 기호지세(騎虎之勢)로 달려가는 출발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북측 대표단, 남측 노동운동 발자취 밟아

북측 대표단은 10일 오후 양대 노총을 각각 방문한 뒤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환영만찬에 참석했다. 양대 노총 위원장을 지낸 권영길·단병호 전 민주노동당 의원과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동만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이 환영만찬에서 건배사를 했다.

남측 노동자들은 북한가요 <반갑습니다>를 부르며 환영했다. 북측 노동자들은 노래패 ‘우리나라’의 축하공연에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4·27 남북 정상회담 영상을 시청하는 동안 박수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남북 노동자 3단체는 11일 오전 대표자회의를 열고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남북노동자단체들의 당면활동방향’을 논의했다. 3단체는 “각계각층과 함께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다양한 연대활동을 주동적·적극적으로 전개하고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운동이 전 민족적 운동이 되게 하자”고 약속했다.

3년 만에 열린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에서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조선직총 건설·경공업팀과 각각 경기했다. 조선직총 건설·경공업팀이 3대 1과 2대 0으로 승리했다. 3만 관중과 선수들은 폭염 속에서도 한목소리로 “우리는 하나”를 외치며 화합의 장을 즐겼다.

북측 대표단은 방남기간에 서울 용산역에 위치한 강제징용노동자상과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을 찾아 전태일 열사와 이소선 어머니, 문익환 목사 묘역에 헌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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