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 안산에 위치한 광신판지. <대양그룹 홈페이지>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기승을 부렸던 노조파괴 시나리오가 아직도 사업장에서 노조활동을 위협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노조파괴 범죄를 부채질하고 있다는 비판이 높다.

8일 경기도 안산 골판지 제조업체가 노무전문가를 고용해 노조를 없애려고 시도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금속노조 경기지부 경기금속지역지회에 따르면 안산 단원구에 위치한 광신판지 노동자들이 올해 3월 금속노조에 가입하자 회사가 노무담당 관리이사를 채용해 노조파괴 시나리오를 가동하고 있다는 의혹이다.

18년 장기집권 노조위원장, 정년퇴임과 함께 노조 해산

광신판지에는 1988년 설립한 기업노조가 있었다. 그런데 18년간 노조위원장을 지낸 이아무개씨가 2016년 정년퇴임을 하면서 안산시청에 노조 해산신고를 했다. 정은호 금속노조 광신판지분회장은 "18년 전에 노조위원장을 선출한 뒤 조합원들은 단 한번도 총회에 참석하거나 투표를 한 적이 없다"며 "이씨가 제출한 서류는 산업재해로 병원에 입원 중인 조합원 3명까지 총회에 참석했다고 허위로 작성돼 있었다"고 말했다.

광신판지 노동자들은 이의신청을 통해 서류가 조작됐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노조 해산신고는 서류 허위작성을 이유로 반려됐다. 노조 조합원들은 회사 캐비닛에 보관돼 있던 단체협약을 발견했다. 정 분회장은 "단협에는 조합원들을 위한 각종 휴가제도나 복지혜택이 명시돼 있었는데 전 노조위원장만 알고 있었을 뿐 전혀 실행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노조가 단협 이행을 요구하면서 노사갈등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사측, 산재로 입원한 조합원 찾아가
"복수노조 만들면 적극 지원하겠다"


올해 3월 노조가 조직전환을 통해 금속노조에 가입하자 회사는 4월 '관리이사' 직함을 만든 뒤 윤아무개씨를 채용해 노무업무를 맡겼다. 분회는 "윤 이사는 노조파괴 전문가"라고 밝혔다. 지난 6월 산재로 요양 중인 조합원은 분회에 "윤 이사가 두 차례 찾아와 '복수노조를 만들면 적극 지원해 주겠다'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윤 이사는 10차례 열린 교섭에서 "단체협약은 사문화됐다"고 주장했다. 급기야 지난달 20일에는 노조에 단협 해지를 통보했다. 친기업노조 설립 시도를 거쳐 기존 노조 단협 해지로 이어지는 노조파괴 시나리오를 연상케 한다. 회사측은 의혹을 부인했다. 윤 이사는 <매일노동뉴스> 통화에서 "복수노조 설립을 유도한 사실이 없다"며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노조파괴 같은 소리를 하냐"고 말했다.

"부당노동행위 근절 위한 강도 높은 수사 필요"

노조는 "노조파괴 시나리오 같은 부당노동행위를 근절하려면 정부가 강한 의지를 갖고 강도 높은 수사를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지난달 고용노동부 부산동부지청은 2016~2017년 친기업노조 설립을 통해 노조 말레베어분회 와해를 시도한 말레베어공조를 압수수색해 사측이 작성한 두 건의 노조파괴 시나리오 문건을 확보한 뒤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

정현철 경기지역지회 수석부지회장은 "정권이 바뀌어도 노조파괴 시나리오가 되풀이되는 이유는 부당노동행위를 하는 사용자를 무혐의로 풀어 주거나 솜방망이 처벌을 하기 때문"이라며 "광신판지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당장 근로감독을 하고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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