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하경 변호사(법률사무소 휴먼)

삼성 80년 무노조 신화가 깨지고 있다. 아니 신화라고 불러서는 안 되겠다. 80년 헌법유린 불법경영이 그 죄상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그림' 크기가 엄청나고 복잡하다. 고용노동부·경찰 등 국가기관과 한국경총이 모세혈관처럼 얽혀 삼성 무노조 경영이라는 암세포를 지켜 주고 있었다.

노동부는 삼성전자서비스에 대한 2013년 불법파견 수시근로감독 결과를 애초에는 불법파견이 맞다고 했다가, 삼성측과 경총 방문 이후 차관 등 고위임원이 갑자기 회의를 열어 일선 감독청들에게 경고성 발언 또는 결과를 뒤집으라는 압력을 준 후 근로감독기간을 일방적으로 연장했다. 그리고 연장된 기간 동안 추가조사를 한 것이 아니라 노동부가 자발적으로 삼성에게 '출구전략'을 짜 준 후 불법파견이 아니라고 결과를 바꿔 버렸다. 근로감독 결과를 바꾼 회의 자리에서 노동부 주요 간부는 "노동계에서 전략적으로 불법파견 의혹을 제기한 것"이라거나 "불법파견이라고 결론 낼 경우 재계가 흔들린다"는 취지의 발언을 노골적으로 했다. 또 다른 고위간부는 일선 근로감독관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삼성측 이야기를 잘 들어주라"고 했다.

당시 노동부 내부 실무자들은 삼성측이 제출한 불법파견이 아니라는 의견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런데 윗선에서는 그 보고서마저 삼성에 그대로 전달했다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그야말로 노동부가 삼성의 노무관리부서 또는 법무팀 역할을 했다.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불법파견 사건은 2013년 7월 여름에 노동부 근로감독으로 끝났어야 했다. 그런데 노동부가 삼성을 비호하면서 2013년 하반기부터 삼성의 본격적인 노조탄압이 시작됐다. 노동자들은 생계곤란과 해고·폐업에 직면했다. 그 과정에서 두 명의 조합원이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

경찰은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염호석 열사 장례식장에 무장경력 300여명을 투입했다. 출동사유도 밝히지 않았다. 최루액을 난사하고 방패를 내려찍으며 20여명의 조합원과 조문객들을 연행한 후 시신을 빼돌려 화장해 버렸다. 노조 투쟁동력을 꺾기 위함이었다.

경찰의 행위는 삼성의 목적과 정확히 일치했다. 경찰은 유족의 112 신고를 받고 시신을 이동시키기 위해 출동했다고 변명했다. 그러나 검찰에 의하면 신고자는 유족이 아닌 브로커 이아무개씨였다. 브로커는 현직 경찰간부가 섭외한 뒤 계속 연락했던 사람이었다. 더 놀라운 일은 해당 경찰간부가 삼성전자서비스와 노조 사이 단체교섭에서 삼성측 교섭위원으로 자리했다는 점이다. 국가가 삼성의 일개부서에 불과하다는 점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영화 같은 장면이었다. 경찰간부는 김아무개씨다. 그는 지난달 삼성 노조파괴에 협력한 혐의로 구속됐다.

무장경력 300여명을 출동시키고, 브로커를 구해 노조와 유족을 분열시키고, 삼성측 교섭테이블까지 앉는 정도의 시나리오는 일개 경정이었던 김씨 혼자 할 수 없는 일이다. 최소한 서울지방경찰청 고위직의 지시·감독이 있었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이다. 삼성 정도의 ‘고객’이라면 대한민국 경찰청 본청이 연루됐을 것이라는 추정도 무리는 아니다. 그럼에도 수사 대상은 김씨 개인에 머물러 있다.

2013년에는 삼성이 에버랜드 노동조합인 삼성지회를 예시로 삼아 노조파괴 실행계획을 담은 'S그룹 노사전략 문건'이 폭로됐다. 노조가 이를 노동부에 고발했는데, 당시 수사팀장이었던 서울지방고용노동청장은 해당 문건을 삼성이 작성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혐의 처분했다. 최근 공개된 당시 수사보고서에 따르면 작성주체가 삼성경제연구소, 작성의뢰자가 삼성인력개발원, 폭로 이후 수습총괄은 미래전략실로 기재돼 있다. 행정법원 판결에도 문건이 삼성 것이 맞다고 적혀 있다. 그런데 결론은 "삼성은 문건과 관련이 없다"로 귀결된다.

수사보고서 본문은 담당 근로감독관이 나름 충실히 작성한 것으로 보이나, 결론 부분은 최소한 수사팀장 권한으로 결정된 것으로 의심하기에 충분하다. 수사팀장이 누구인고 하니, 삼성전자서비스 불법파견 결과를 뒤집기 위한 회의를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회의 석상에서도 반노조·친삼성 발언을 쏟아 낸 당시 서울노동청장 권아무개씨다. 권씨는 지난달 대구지방고용노동청장으로 발령이 났다. 노동부 고위관료로 있으면서 노동자를 죽이고 삼성을 살린 혐의를 물어 징계를 해도 모자랄 마당에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인사다.

삼성의 노조파괴 행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외부자가 대한민국 정부임에도 실상 파악과 책임추궁은 더디기만 하다. 그래서 올해 국회 국정감사는 사기업 삼성의 한 부서처럼 행동하면서 국민을 병들게 하고 죽게 해 헌법을 유린한 노동부, 경찰 등에 대한 매서운 질타와 처벌의 장이 돼야 한다.

이를 위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반드시 국감 증인으로 세워야 한다. 그의 입으로 추악한 삼성의 헌법파괴 실체를 고백하도록 하고, 그의 입으로 삼성 무노조 경영 폐기선언을 토해 내게 해야 한다. 그리고 삼성에 부역한 국가의 책임을 하나하나 밝혀내서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정경유착의 뿌리를 이번 기회에 발본색원하자. 유독 삼성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더불어민주당이 이와 같이 엄중한 상황에서는 이재용 부회장을 국감 증인으로 세울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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