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형법 314조(업무방해) 1항에 대한 헌법소원심판(2012헌바66)과 관련해 헌법재판소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2012년 2월 접수된 사건인데, 청구취지는 “단순히 노무제공을 거부한 파업은 형법상 업무방해죄를 적용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위헌”이라는 내용이다.

2일 노동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2010년 3월 회사 정리해고 방침에 반발한 현대자동차 전주공장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하루 휴일특근을 거부했다. 노동자들은 1심과 항소심·상고심 법원이 업무방해죄를 인정하자 헌법소원을 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2007도482)는 2011년 “단순히 집단적으로 노무제공을 거부하는 파업이 사용자가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전격적으로 행해지지 않거나 막대한 손해를 초래하지 않았다면 형법상 업무방해죄가 아니다”고 판결했다. 생산시설 점거 같은 행위 없이 노무제공만 거부하는 파업에도 업무방해죄를 적용했던 기존 판례를 바꾼 것이다.

소수의견을 낸 대법관들은 업무방해죄 인정요건을 까다롭게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들은 “사용자가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행해지더라도 단순히 집단적으로 노무제공을 거부하는 파업은 업무방해죄의 위력에 해당하는 것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헌법재판소가 심리 중인 사건의 청구취지와 같은 논리다.

그런데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헌법재판소가 청구인 주장을 수용하는 결정을 내리는 것을 막은 것으로 나타났다. 법원행정처는 2016년 2월24일 작성한 ‘2016년 사법부 주변 환경의 현황과 전망’ 문건에서 “헌재가 조만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효력을 부정하는 한정위헌 결정을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한정위헌 결정은 특정 법률조항을 합헌으로 보면서도, 여러 해석 중 특정 해석을 제시하면서 위헌으로 보는 결정을 말한다. 헌법재판소가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2011년 판결 소수의견을 받아들일 것으로 예상한 것이다.

법원행정처는 “단순 파업에 대해 원칙적 합법화를 선언하는 결과가 돼 사회적 주목도·파급력이 매우 클 것”이라며 “다양한 대응논리를 개발해 부정적인 여론을 활용한 효과적인 대응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래서 나온 논리가 “한정위헌 결정을 하면 대법원과 헌재의 정면충돌을 초래한다”거나 “파업공화국을 초래한다”는 주장이다. 법원행정처는 2015년 11월 헌법재판소에 이 같은 내용의 의견서를 전달했다.

법리에 대한 객관적인 검토 없이 헌법재판소를 압박하고, 파업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 확산에 대법원이 나선 셈이다. 법원행정처가 적극적으로 움직인 것을 보면 헌법재판소 내부에 전향적인 분위기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 비정규 노동자들의 헌법소원을 대리한 김상은 변호사(법률사무소 새날)는 “2016년 초반에 법조 출입기자의 취재요청을 받으면서 (청구취지를 인용하려는) 헌법재판소의 움직임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그 뒤 공개심리도 없이 결정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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