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행된 지 이제 한 달이다. 비록 300명 이상, 공공기관 등 일부 사업장부터 시행된 것이지만 저항은 거셌다. 사용자들의 단체와 그를 대변하는 언론은 중소·영세 사업장 등의 사정을 내세워 고용절벽의 노동시장을 더욱 위축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주 52시간제법 시행은 최저임금 인상과 함께 고용시장을 얼어붙게 하고 소득 격차를 더욱 크게 할 것이라고 몰아댔다. 이에 ‘노동시간단축 가이드’를 발표했던 고용노동부는 올해 6월 ‘유연근로시간 가이드’까지 마련해 사용자들에게 주 52시간제에 대응하라고 안내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주 52시간을 초과해서 노동자를 사용하는 사용자의 근로기준법 위반에 대한 처벌을 6개월 유예하겠다고 문재인 정부는 밝혔다.

“연장근로를 포함한 법정 노동시간인 1주 상한 주 52시간 준수, 노동시간 특례업종 및 제외업종 축소, 공휴일의 민간적용 및 연차휴가 사용촉진 등 실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로 민간부문 일자리 50만개를 창출하겠다”고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촛불대선에서 공약했다(19대 대통령선거 더불어민주당 정책공약집, 69쪽). 주 52시간제에 관한 개정 근로기준법의 주요내용은 이에 관한 사항이다. 1주일이 휴일을 포함해 7일이라고 명시함으로써 연장근로를 포함해서 1주 상한 52시간제로 규정하고, 26개에서 5개로 노동시간 특례업종 및 제외업종을 축소하며, 관공서 공휴일을 민간에 적용하도록 하는 등으로 개정된 것이다. 그러니 이제 그걸 통해서 “실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로 나아가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사용자들의 공세에 문재인 정부는 나아갈 길을 잃었다. 유감스럽게도 개정법을 엄격하게 집행함으로써 “실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로 민간부문 일자리 50만개를 창출”하는 것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노동부가 ‘유연근로시간제 가이드’를 마련해 노동시간단축에 대응하라고 사용자들에게 안내하고, 주 52시간제에 관한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사용자를 당분간 처벌하지 않겠다고 발표함으로써 문재인 정부의 노동시간단축은 갈팡질팡하고 말았다. 문재인 정부는 사용자 눈치를 보면서 유약한 집행과 대응을 통해서 실노동시간 단축이 없고, 일자리 창출이 없는 길로 나아가고 있다.

2. 분명히 주 52시간제 관련 근로기준법 개정에 있어서는 노동자의 1주간 노동시간 한도를 52시간으로 해서 실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이를 통한 일자리 나누기로 고용절벽의 현실을 타개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다. 이는 “실근로시간 단축의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고 향후 발생할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1주당 최대 근로시간이 휴일근로를 포함한 52시간임을 분명히 하고 (…) 사실상 제한 없는 근로를 허용해 초장시간 근로의 원인이 되고 있는 근로시간 특례업종의 범위를 축소하는 등 근로시간 관련 제도를 정비하고자 한다”는 개정이유에서 잘 나타나 있다. 주 52시간제 근로기준법 시행에 대응해 사용자가 유연근무시간제를 도입해 활용하면 새로 노동자들을 채용해 사용하지 않아도 기존 사업의 차질 없이 그대로 수행할 수가 있다. 이러하기에 기존 인력의 유연한 활용을 통해서 사용자가 대응할 수 있다면, 노동부의 ‘유연근무시간제 가이드’가 유용하게 활용된다면, 주 52시간제의 근로기준법 시행은 “실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로 나타날 수가 없는 것이고, 따라서 법의 개정이유는 몰각되고 만다. 이는 노동부가 사용자들에게 가이드한 유연근무시간제에 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근로기준법은 2주 및 3개월 이내 단위기간의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규정하고 있다(51조). 사용자가 취업규칙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2주 이내 단위기간), 근로자대표와의 일정 사항에 관한 서면합의에 따라(3개월 이내 단위기간)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이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법정근로시간제의 예외를 허용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사용자가 취업규칙에서 정하기만 하면 도입할 수 있도록 2주 이내 단위기간의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근로기준법이 허용하고 있다. 이것을 노동시간단축에 대응해 사용자에게 적극 활용하도록 노동부가 가이드를 마련해 안내하고 있는 것이다. 이 나라 취업규칙에서는 사용자가 왕이다. 그가 정하면 사업장에서 법으로 선포되는 것이 우리의 취업규칙 제도인 것이다. 사용자가 이러한 취업규칙을 통해 개정법상 노동시간단축을 회피하려는 행위를 하지 않도록 해서 개정 근로기준법이 개정이유에 부합하게 시행될 수 있게 노동부가 노동행정을 했어야 하는데도 오히려 그 반대의 길로 나아갔다. 이에 대해 3개월 이내 단위기간의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일정사항에 관한 근로자대표와의 서면합의를 통해서 사용자가 도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것이라서 어느 정도 노동자들의 의사가 반영될 수가 있다. 하지만 탄력적 근로시간제 자체가 법정근로시간의 예외를 허용하는 것으로서 근로기준법의 노동제를 형해화하는 제도로 악용될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근로자대표와 합의를 통해서 도입하는 것이라 해도 특정일·특정주에 초과근로를 허용하는 법이 바람직할 리 없다. 최근 사용자단체를 중심으로 6개월 또는 그 이상을 단위기간으로 하는 탄력적 근로시간를 허용하도록 법 개정 주장을 하는 것도 그것이 주 52시간제법 시행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 단위기간을 평균해 법정근로시간 이내면 특정일·특정주에 이를 초과해서 사용할 수가 있고, 그에 따른 초과근로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니 사용자로서는 그 업무량을 적절히 조절해 사용하면 추가 인건비 부담 없이 사업을 수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서 그 단위기간의 확대를 바라는 것이다. 단순히 근로기준법상 법정근로시간 내지 주 52시간제를 회피하고, 초과근로수당 지급을 면하는 것을 넘어 휴업수당 지급을 면하는 수단으로도 악용될 수도 있다.

다음으로 시업과 종업 시각을 노동자 결정에 맡기는 노동자에 대해 근로자대표와 서면합의하면 1개월 이내의 정산기간을 평균해 휴게시간을 제외한 1주 40시간, 1일 8시간을 초과해 근로시킬 수 있는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경우도 노동제·법정근로시간의 예외를 사용자에게 허용하는 것이다. 탄력적 근로시간제와 마찬가지로 주 52시간제에 관한 개정법 시행에 따른 노동시간단축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 노동부가 가이드를 통해 사용자들에게 그 활용을 안내하고 있는 것은 이를 부추기는 것이다. 그 외에 사업장 밖 간주근로시간제·재량근로시간제 등도 노동부는 유연근로시간제로 안내하고 있다. 모두가 사용자들이 주 52시간에 관한 근로기준법에 따른 신규채용 등 인건비 부담을 덜 수 있는 제도다.

이상과 같이 노동부 가이드는 사용자로 하여금 기존 인력의 노동시간을 유연화해서 신규인력 채용에 따른 인건비 부담을 덜어 주겠다는 것이라서 개정 근로기준법의 엄격한 시행을 통해 달성해야 할 공약 이행을 기대하기 어렵게 하고 있다.

지난 25일 노동부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주요 업무추진 계획’을 제출했다. 여기서 노동부는 주 52시간으로 단축되는 300이상 사업장 3천627곳 중 22.4%인 813곳에서 총 2만9천151명을 신규채용한다고 보고했다. 노동부는 주 52시간 초과 근무자가 없는 곳을 제외한 나머지 중 인력을 충원하지 않는 곳은 탄력근로 등 유연근무시간제 35.2%. 교대제 등 근무형태 변경 16.8%, 생산설비 개선 16.6%를 활용할 거라 보고했다. 이를 통해서도 유연근무시간제 등으로 이번 주 52시간 관련 근로기준법은 개정이유를 잃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3. 2016년 기준 우리 노동시간은 2천52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서 두 번째로 길다. 경기가 좋지 않던 상태에서 이전보다 많이 줄어든 것이지만 여전히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사용자 자본은 사업을 위한 설비 투자에 나서기보다는 엄청난 사내유보금을 쌓아 두고 있다. 그런데도 고용시장은 절벽이다. 마땅히 노동시간단축으로 풀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노동시간단축으로 일자리 나누기를 하겠다는 것은 노동시간 연장으로 거둬 왔던 이득을 박탈하는 것이다. 그러니 사용자 자본의 저항은 당연하다. 그 저항을 넘어서야 일자리 나누기 실현 등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국가가 법으로 노동시간을 제한하는 것은 이를 위한 것이다. 노동제·법정근로시간이 그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거기서 번번이 좌절했다. 법 집행에서, 법대로 집행해야 할 단계에서 기업 사정, 경제 사정, 나라 사정으로 법을 편의대로 집행해 왔다. 입법 고려사항을 법 집행자가 입법자로 행세해 왔다. 이 나라에서 권력의 온갖 추태는 여기서 발생했다. 법 집행기관으로서 법원조차도 이런 짓을 태연히 해 왔다. 수많은 노동판결이 그 증거자료로 남았다. 노동부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우리가 노동시간단축으로 나아가는 방법은 무엇보다도 법이 정한 노동시간이 준수되도록 하는 것이다. 사정 봐주지 말고 법대로 법을 집행하는 것이 권력의 일이다. 법 집행 앞에 갈팡질팡하는 것은 권력의 일이 아니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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