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후 국회에서 김선수·이동원·노정희 대법관 임명동의안이 의결됐다.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에서 ‘서울대 출신의 50대 남성 판사’(서오남) 중심이던 대법관 구성은 드라마틱하게 변하고 있다. 다양화가 화두다.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 8명 중 비서울대 출신이 5명이다. 여성 대법관도 4명으로 늘었다. 비법관 출신인 김선수 대법관은 새로운 대법원의 상징이다. 그는 대법원이 밝힌 대로 변호사로서 국민 기본권 보장과 사회적 약자·소수자 보호에 평생을 바쳤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으로 추락한 신뢰를 회복하는 대법원 개혁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노동문제 무관심·적대적인 대법관 구성 바꿔야
김태욱 금속노조 법률원장(변호사)

김태욱 금속노조 법률원장(변호사)

2007년 정리해고 당한 콜텍 노동자들은 해고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심 재판부는 긴박한 경영상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 부당해고에 해당한다고 봤다. 하지만 대법원은 “해당 사업부문을 그대로 유지하면 기업 전체의 경영상황이 악화될 우려가 있어 장래 위기에 대처할 필요가 있다”는 콜텍 주장을 받아들여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해당 사건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이 대법원과 박근혜 정권의 재판거래 의혹 사건으로 제시한 판결 중 하나로 등장한다. 전교조 사건과 같이 청와대가 개입한 증거가 구체적으로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유사한 배경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법원의 주장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는 파기환송 뒤 2심(서울고등법원)에서도 확인됐다. 법원이 지정한 감정인(회계사)은 대전공장 손실액이 콜텍 전체 자산·매출액 규모의 3.4%에 불과해 비중이 크지 않고, 회사 재무구조가 건실하고 사업 수익성도 양호해 대전공장 손실이 경영상 긴박한 사유에 해당된다고 볼 수 없다는 의견을 냈다. 그런데 재판부는 전문가의 의견을 듣지 않고 반대로 판단해 정리해고를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해고노동자들이 이에 불복해 재상고하자 대법원은 기각해 버렸다.

대법관이 노동문제를 전혀 모르거나, 관심이 없거나, 혹은 적대적으로 보는 이들로 구성된 것이 이 같은 사태를 낳은 원인 중 하나로 보인다. 2004~2005년 논의됐다가 중단된 노동법원 도입 요구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이유다. 대법관 구성을 다양화하거나 노동법원 같은 제도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사법부 개혁 첫걸음은 사법농단 책임자 처벌
김선욱 철도노조 미디어소통실장

김선욱 철도노조 미디어소통실장

‘사법농단’ 양승태 대법원의 철도농단은 3가지다.

철도노조 파업이 한창이던 2013년 12월27일 대전지법은 법인설립등기를 인가하고 국토교통부는 같은날 밤 9시 기습적으로 면허를 발급했다. 당시 수서발 KTX 운영법인 설립 등기 사건은 SR과 코레일이 분리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법원행정처가 공개한 문건에 따르면 대법원은 법리적 관점이 아닌 ‘국가경제적 관점’에서 허가해 철도 파업을 종식시켰다. 대법원 스스로 박근혜 정부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협조한 재판’이라고 자백한 꼴이다.

2009년 철도파업 업무방해죄 적용 사건도 있다. 같은 문건에서 철도노조 파업 사건을 “노사갈등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파업의 법적 기준을 정립한 사건”으로 소개하고 있다. 2014년 대법원은 “예고된 파업이었지만 예견할 수 없었다”는 황당무개한 논리로 업무방해죄를 인정했다. 노동 3권 보장을 위해 파업 노동자들의 업무방해죄 적용을 까다롭게 했던 2011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취지에 정면으로 반하는 판결이었다. 당시 파업으로 철도노조 조합원 200명이 해고되고 1만2천여명이 징계를 받았다. 해고된 조합원 1명은 우울증을 앓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세 번째는 KTX해고승무원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건이다. 2015년 대법원은 코레일이 승무원들의 직접적 사용자라고 판결한 1심과 2심을 뒤집었다. 드러난 문건에 따르면 “노동시장 유연성 확보와 바람직한 노사관계 정립”이 판결의 이유였다. 2015년 민변은 KTX 승무원 판결을 그해 ‘최악의 판결’로 꼽았고, 대법원 판결 18일 후 한 승무원은 3살 난 딸을 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통받은 피해자들에 대한 구제대책도 여전히 마련되지 않고 있다. 책임자 처벌과 피해자 원상회복이 부패한 사법부를 개혁하는 첫걸음이다. 여전히 갈 길이 멀다.
 

노동자 목숨 박근혜 정부 제물로 바친 대법원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

지부는 2014년 2월 고등법원에서 승소했다. 2009년 강행된 정리해고에 대한 무효확인 소송이었다. 핵심 쟁점은 회계조작 여부였다. 해당 재판은 정리해고 합법성을 다투는 뜨거운 재판이었다.

2심에서 대법원 판결이 나기까지 대게는 2년, 길게는 3년이 걸린다. 그런데 대법원이 2심 판결이 나온 뒤 불과 몇 개월 후 선고를 내렸다. 그 자체가 이례적이다. 때문에 제대로 된 판결이 나올까 우려가 있었다. 2심 판결이 파기환송되기 위해선 새로운 증거가 나오고 상황 변화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대법원은 2심 재판증거 자료가 그대로인 상황에서 판결을 내렸다. 회사는 2심 판결에서 패소하고 대법관·고등법원장 출신 등 19명으로 법률 대리인단을 다시 꾸렸다. 전관예우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파기환송으로 우려가 현실이 됐다. 정리해고 합법 판결을 비롯한 ‘노동자 죽이기’ 판결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이뤄졌다. 대법원 판결 후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가족 5명이 세상을 떠났다. 양승태가 노동자의 목숨을 박근혜 정부 제물로 바쳤다.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그런데 양승태 압수수색이 기각되고 있다. 법원이 아직도 제 식구 감싸기로 일관하고 있다. 정말 화가 난다. 압수수색도 모자라다. 구속수사를 해야 한다. 여러 재판거래 정황이 드러나고 있음에도 이를 제대로 단죄하지 못한다면 어느 누가 사법부를 인정하겠나. 서민·약자·노동자가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는 곳은 사법부, 그중에서도 대법원이다. 그런데 재판거래를 벌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누가 사법부를 신뢰하겠는가.

대법원 재판은 현재 계류돼 있는 많은 노동재판에 영향을 준다. 대법원을 바로잡는 것은 당장의 문제이면서 앞으로의 문제이기도 하다. 국가가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에게 청구한 손해배상 소송이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2009년 폭력을 자행한 경찰이 진압장비가 파손됐다고 건 소송이다. 사건 진위 여부가 전혀 밝혀지지 않는 상황에서 국가의 일방적인 청구다. 파업이 끝나고 10년이 다 돼가는 시점이다. 국가는 이를 철회해야 한다. 2심까지 재판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 재판부는 노동자의 얘기를 듣지 않고, 경찰이 제출한 자료만을 근거로 재판을 진행했다.

대법원은 경찰의 진압이 합당했는지, 인권을 탄압하지는 않았는지 보다 꼼꼼히 살펴야 한다. 향후 대법원 판결의 신뢰를 위해서라도 지금 양승태 사법농단을 바로잡아야 한다.
 

과거와 단절하고 주판알 대신 법전 품어야
송재혁 전교조 대변인

송재혁 전교조 대변인

국정농단에 이어 사법농단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해를 손으로 가릴 수 없듯이 진실은 언제든 드러나고 마는 법. 재판을 놓고 청와대와 거래한 무서운 증거가 담긴 대법원의 대외비 문서 일부가 대외적으로 발표됐다.

대한민국이 3권분립 국가가 아니었음을, 법원이 정권의 횡포에 제동을 걸기는커녕 함께 놀아났음을 자복하는 적나라한 자료들이다. 그들의 검은 거래로 민주노조들이 파괴되고 노동자들이 죽어 나갔다. 전교조 법외노조화라는 폭력 행정은 합법을 가장하게 됐다. 이명박근혜 통치 기간 중 청와대·정보기관·고용노동부·교육부·기무사는 물론 법원도 비정상이었으니, 가히 국가기관의 총체적인 파탄이라고 할 만하다.

사법부는 검찰수사에 적극 협조함으로써 법을 존중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이번 기회를 놓칠 경우 바닥으로 떨어진 사법부 신뢰를 회복하지 못할뿐더러, 법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마저 무너지게 될 것이다. 법치의 붕괴를 자초하지 않으려거든 사법부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국민 앞에 겸허하게 서야 할 것이다.

사법농단 세력이 개입한 재판은 당연하게도 원천무효다. 따라서 재판거래의 희생자들을 구제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전교조의 경우 사법부와 입법부 이전에 행정부의 긴급한 조치가 필요하다. 2013년 10월24일 노동부의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함” 통보 자체가 위법 부당한 것이었음이 명백하다. 이를 뒤집어 취소시키는 것은 어디까지나 행정부의 몫이다.

이 당연한 과제를 이행하지 않기에 전교조가 뙤약볕 아래 40일째 농성을 이어 가고 위원장이 12일째 ‘아사투쟁’에 임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진정 ‘노동존중 사회’를 이루려거든 사용자 입장에서 교사·공무원 노동자에 대해 자행했던 자신의 과오부터 바로잡는 것이 순서다. 위험한 우측 깜빡이를 끄고 좌측에 놓여 있는 촛불을 다시 번쩍 들어 올리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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