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지난주부터 내로라하는 세계적인 노동·고용·노사관계 전문가들이 서울로 모였다. 23일부터 27일까지 국제노동고용관계학회(ILERA)가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고용노사관계-무엇을 할 것인가”를 두고 다양한 생각이 치열하게 토론되고 있다. 3년마다 열리는, 워낙 거대한 행사인지라 ‘무엇을 할 것인가’에 부합할 만한 논의가 노사정 각자의 입장에서 다양한 형태로 열리고 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주관한 토론회에서는 우리나라 노동이 직면한 현안 중 현안인 최저임금과 노동시간단축을 3자 입장에서 들어보는 기회도 있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최저임금 수준이나 인상속도가 예상보다 높고 빠르다는 평가도 있었다. 함께한 이들 중에는 의외라는 표현도 있었다. 다만 ‘지속가능한 사회와 최저임금’ 세션에서 확인된 결론은 최저임금 인상이 곧장 일자리를 줄인다는 실증적 근거는 없다는 점이다.

‘지속가능한 사회’라는 전제는 오늘의 노동환경이 상당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는 방증으로 보였다. ‘불안정한’ ‘변동성이 큰’ ‘과거의 방법으로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운’ 같은 표현들이 많이 등장하는 듯했다. 그래서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 각자가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해서는 정답이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그 어떤 대안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보였다.

노동조합은 무엇을 할 것인가. 개인적으로 두 번의 중요한 기회를 가졌다. 토마스 코칸 MIT 교수로부터 ‘노동조합 : 성과와 향후 과제’라는 짧은 강연을 한국노총 간부들과 함께 들었다. 기술변화에 직면한 오늘, 노동조합의 전략을 제시했다. 그는 변화를 직시하고, 미리 대비한다면 미래의 일과 일자리 모습도 우리가 만들 수 있다고 자신했다. 어찌 보면 단순한 답이었다. “기술변화에 앞서 전문적이고 분석적인 훈련이 시작”이라며 “새로운 기술 도입 때 노조가 참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기업 내에서의 직업훈련뿐만 아니라, 기술변화가 아예 노동자들로부터 일자리를 앗아 갈 경우에도 노조 역할은 여전하다고 했다. 실업과 실직에 대비하고 새로운 일자리로의 전직을 원활하도록 재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 “저는 긍정주의자입니다.” 아무리 급격한 변화라 하더라도 우리가 노력한다면 대응할 시간은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물론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를 위한 사회안전망은 필요조건이다.

기존과 다른 노동조합의 역할은 동아시아 각국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 국제노동고용관계학회와 같은 기간에 22회 ‘소셜아시아포럼’이 열렸다. 포럼의 주제는 노동조합 입장에서는 매우 직접적이고 실무적이다. '일의 미래에 있어서 노동자의 능력강화를 위한 노동조합의 역할’을 두고 한·중·일·대만 각국이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고, 늘 그랬던 것처럼 열심히 배워 갔다.

“조합원이 되는 데 있어 굳이 그 사용자가 특정될 필요는 없습니다.” 대만에서 온 전문가 발표 중 한 대목이다. 아예 직업교육을 중심으로 모인 노동조합을 설명하면서 한 답변이다. 미용에서부터 기계정비까지, 고용이 돼 있든 취직을 준비하든 모두 노동조합이라는 이름 아래 모였다. 그리고 공통주제는 ‘새로운’ 변화된 환경을 위한 교육이었다. 고용과 피고용이라는 기존 관계 중심의 전형적인 노동조합에서는 조금 벗어난다. 하지만 우리나라 어느 전문가는 “저런 유연한 모습이 요즘의 비전형노동자들을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겠어요” 하고 말한다.

노동에 관한, 이처럼 큰 토론의 장을 우리가 볼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짧은 소견이지만 피부와 언어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함께한 이들은 정말이지 매우 비슷한 고민을 나누고 있었다. 노동환경이 그다지 우리보다 나을 것 없다고 생각한 사회에서도, 오히려 우리보다 더 다양하고 깊은 고민을 하고 있음을 발견하기도 한다. 플랫폼·공유경제·GIG이코노미·비정규직·프리랜서 노동자, 회색지대, 사회보장. 노동조합의 역할에 관해 누군가는 이런 고민을 털어놓는다. “노사가 다룰 수 있는 영역을 더 넓혀야 한다. 복지든 안전망이든.” 지금부터 찬찬히 찾아보려 한다.

마지막으로 노회찬 정의당 의원의 명복을 빈다. 우리 사회 유일한 노동일간지 매일노동뉴스의 탄생에 고인이 있었다. 어느 곳, 어느 상황에서나 꼭 맞아떨어지는 표현에는 어떤 감탄도 부족하다. 오늘과 미래를 살아갈 많은 이들에게 분명 귀감이 될 것이다. ‘언론인’으로서 그가 보여 준 진면목은 그 후배들이 이어 가리라.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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