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미영 기자
4차 산업혁명 시대 일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이런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한 자리가 국제노동고용관계학회 2018 서울 세계대회 특별세션으로 마련됐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주최한 ‘일의 미래 : 사회보장제도와 노동시장 규범에 대한 도전’ 토론회가 23일 오후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렸다. 노동고용관계학 전문가들이 진단한 현재는 바야흐로 혼돈의 시대다. 스마트폰을 손에 쥔 이후 노동시간과 개인시간이 모호해지고 유급노동과 무급노동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 여가와 일의 구분도 없어지는 것처럼 소비자와 생산자 사이의 경계도 무너지고 있다. 누가 고용주인지 식별이 어려워졌다. 극단적으로는 전혀 일하지 않는 사람과 엄청나게 장시간 노동을 하는 노동시간의 양극화가 나타나고 있다. 토론회 참가자들은 “고용형태와 노동패턴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며 “노동 규범 역시 새롭게 정의돼야 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일의 미래, 세 가지 메가 트렌드

마크 키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고용노동정책분석실장은 “일의 미래에 세 가지 메가 트렌드가 있다”고 말했다. 첫 번째는 기술이다. 세계적으로 2003~2016년 사이 산업용 로봇 사용이 3배 이상 늘었다. 앞으로 4~5년 사이에 산업용 로봇은 급격하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AI의 발전속도도 눈부시다. 앞으로 더 많은 일자리가 AI와 결합한 로봇에 치여 소멸될 수 있다.

두 번째는 글로벌 공급망이다. 키스 고용노동정책분석실장은 “한국 노동시장을 보면 단순히 국내 공장과 영업장에서 경쟁하는 게 아니라 전 세계와 경쟁하는 구조”라며 “한국의 경우 국내총생산(GDP)에서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1975년 50%에서 2016년 80%로 크게 늘었다”고 진단했다. 이와 함께 주목할 문제는 인구고령화다. 사회가 점점 늙어가면서 소비패턴이 바뀌고 노동시장 구조가 바뀌는 등 많은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키스 실장은 “OECD 데이터에 따르면 자동화로 현재 일자리 14%가 사라지고 32%는 업무방식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경우 자동화로 일자리 8%가 소멸되고 40%는 일하는 방식이 달라질 것으로 내다봤다. 또 영어권 국가에서의 플랫폼 노동을 분석해 보니 2016년 5월부터 빠르게 늘어, 현재 전체 일자리 1~5%를 차지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그는 “메가 트렌드로 인해 소득불균형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며 “기술발전으로 생산성이 늘어나는 만큼 많은 사람들이 평등하게 부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제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최저임금을 플랫폼 노동과 같은 새로운 형태 노동자에게도 적용할 수 있도록 하고, 기본소득 같은 제도로 소득재분배의 효과를 이끌어 내야 한다는 지적이다.

사각지대 노동자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수잔 헤이터 국제노동기구(ILO) 정책개발 전문가는 “내년 100주년을 맞는 ILO는 앞으로 100년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기 위해 2013년부터 준비하고 있는데 그 첫 번째가 일의 미래에 대한 구상”이라고 소개했다. ILO ‘일의 미래 글로벌위원회’는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과 스테판 뢰벤 스웨덴 총리가 대표를 맡고 있다. 오는 11월 ‘일의 미래’에 대한 보고서를 채택할 예정이다. 헤이터 정책개발 전문가는 “현재 노사정 3자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며 “사각지대 있는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덴마크에서 프리랜서로 100시간 이상을 일하는 청소노동자를 상용직으로 간주하는 제도를 도입한 사례나 아르헨티나에서 돌봄노동을 하는 가사도우미를 위한 단체협약을 체결한 사례를 대안으로 들었다.

우리나라의 상황을 발표한 허재준 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재 노동정책이나 제도는 최근 급격히 늘어난 15시간 미만 초단시간 노동자나 특수고용직을 보호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공정노동위원회 도입이나 임금손실보험 도입, 제3자 취업자 분류제도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생산물 시장에서 공정거래위원회가 시장질서를 만드는 것처럼 노동 분야에서 공정노동위원회를 만들어 새로운 노동규범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임금손실보험제도는 구조조정으로 인한 실직자에게 소득을 보전해 주는 제도로, 미국에서 시행하고 있다. 그는 "미래 노동시장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노동정책 접근방식의 전환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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