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아무개씨는 화약류 제조회사인 H사 노조위원장으로 활동하다 2015년 4월께 노조사무실이 있는 건물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사지마비·거미막하출혈 진단을 받은 뒤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 보상(요양급여)을 신청했다. 공단은 노조전임자인 김씨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노동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요양불승인 처분했다. 김씨는 공단 처분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낸 끝에야 산재를 인정받았다.

앞으로 김씨처럼 전임활동 중 스트레스나 장시간 활동에 따라 질병을 얻게 된 노조전임자가 산재를 한결 쉽게 승인받게 됐다. 업무관련 행사 중 사고에 의한 재해만을 산재로 인정했던 고용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이 산재 인정기준을 완화했다.

노동부 "전임활동 중 발생한 질병도 업무상재해"

22일 <매일노동뉴스> 취재 결과 노동부는 노조전임자를 산재보험법상 노동자로 인정하고 사업장 노무관리업무와 관련된 노조전임자의 전임활동 중 발생한 사고·질병은 업무상재해로 인정하는 내용의 행정지침을 최근 공단에 시달했다.

2010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으로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제도가 도입된 이후 노조전임자의 전임활동 중 재해를 업무상재해로 볼 수 있는지 여부는 줄곧 논란이 돼 왔다. 공단은 전임활동을 산재보험법에서 말하는 '업무'가 아니라고 봤다. 노동조합 업무만 수행하는 근로시간면제자여서 산재보험법에 의한 노동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반면 법원은 회사의 승낙에 의한 전임활동 자체를 회사업무로 보고, 전임활동이나 통상적인 활동을 하는 과정 중 업무에 기인해 발생한 재해는 산재로 인정했다. 산재를 인정받지 못한 적지 않은 전임자들이 행정소송을 통해 업무상재해 여부를 다퉜다. 정부는 사업주 승인을 받은 노조 주관 행사 중 발생한 사고를 산재로 인정하지 않다가 행정소송에서 번번이 패소하자 그제야 입장을 바꿨다. 2014년 8월 노조 행사 참여 중 사고를 업무상재해로 보는 내용으로 행정해석을 변경했다.

2014년 변경된 행정해석도 사회적 흐름에는 부합하지 못했다. 행정해석을 ‘업무관련성이 있는 행사 중 사고’에만 적용하고 ‘업무관련성이 있는 그 밖의 사고’나 ‘업무관련성이 있는 질병’에는 적용하지 않았다. 근로시간면제자가 아닌 상급단체 파견처럼 휴직자 지위를 갖는 노조전임자는 기존 행정해석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노동부는 이번에 변경한 행정해석에서 전임자를 산재보험법상 노동자로 인정했다. 전임활동을 회사의 노무관리업무 일환으로 판단해 활동 과정에서 업무에 기인해 발생한 재해를 산재로 인정한다. 특히 노동부는 단체교섭·임금협상처럼 정신적·신체적 부담이 큰 전임활동 중 발병한 뇌심혈관계질환을 업무상재해로 인정하기로 했다.

상급단체 활동·쟁의행위 중 재해·질병은 불승인

한계도 남겼다. 회사의 노무관리와 무관하거나 노무관리를 저해하는 상급단체 활동, 쟁의행위 이후의 노조활동은 업무상재해에서 제외하는 기존 입장을 유지했다. 노동부의 행정해석 변경을 적용한 사례는 조만간 나올 것으로 보인다. 철강업체 H사 노조전임자였던 A씨는 올해 초 노조 성명서를 게시하다 뇌출혈로 쓰러졌다. 장기간 임금교섭과 전임자 공석에 따라 1인4역을 하며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 19일 공단에 산재보상을 신청했다.

김민호 공인노무사(노무법인 참터 충청지사)는 "공단이 전임자의 노동자성을 부정한 바람에 법원 소송을 한 뒤에야 산재를 승인받을 수 있었다"며 "노동부가 기존 판례 일부를 수용하고 교섭 등 정신적 부담이 큰 전임활동 중 뇌심혈관계질병을 산재로 인정한 반가운 결정을 했다"고 평가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법원 판례와 산재 승인 여부에 대한 공단의 판단기준이 일관되지 않아서 명확하게 한다는 취지로 행정지침을 마련한 것"이라며 "변경한 지침은 지난주부터 시행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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