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충청지역 ㄱ우체국에서 일하는 A씨는 이달 2일 승진인사 결과를 보고 크게 실망했다. 승진대상자 가운데 근속기간이 가장 긴 데다 성실히 일했기 때문이다. 억울한 마음에 우체국 인사담당자를 찾아가 승진에서 누락된 이유를 물었다.

“그러게 평소에 쇼핑·보험 실적 좀 많이 쌓아 두지 그랬어. 실적이 없어서 이번에 승진 못했어.”

18일 집배노조(위원장 최승묵)에 따르면 충청지방우정청이 집배원에게 본업이 아닌 보험·쇼핑 사업실적을 강요해 갈등을 빚고 있다.

A씨가 승진에서 누락한 것은 충청우정청 인사세칙 때문이다. 충청우정청은 인사세칙에 "고객만족, 우편소통품질경영평가, 마케팅, 우편매출 및 예금·보험 사업실적 증대 등 업무수행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사람"을 승진우대한다는 조항을 두고 있다.

집배노조는 "충청우정청이 정부 규정마저 어겨 가며 집배원 업무와 관련이 없는 보험과 예금, 마케팅 실적을 압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공무원 성과평가 등에 관한 규정 14조(근무성적평가의 평가항목 등)는 "평가요소는 평가 대상 공무원이 수행하는 업무와 관련성 있도록 하고, 근무성적평가가 객관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정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업무와 관련한 요소만 평가하라는 얘기다.

실적 강요는 A씨에게만 해당하는 일이 아니다. 충청지역 일부 우체국들은 설·추석이 다가오면 집배원에게 우체국쇼핑 판매물품을 할당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 집배원은 "지난 설을 앞두고 우체국에서 집배원들에게 1만원짜리 김 180개를 팔아 오라고 했다"며 "우체국 안에 집배원 이름과 판매실적이 적힌 상황판이 걸리기 때문에 자기 돈으로 사서 메꾸는 직원들이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집배원들은 사비로 쇼핑이나 보험 실적을 채우는 것을 '자뻑'이라고 부른다. 또 다른 집배원은 "일부 우체국에서는 비정규직 집배원에게 '정규직이 되려면 보험 실적에 신경 써야 한다'며 노골적으로 압박한다"고 전했다. 집배노조는 "충청우정청이 갑질 온상이 되는 인사세칙을 개정하지 않으면 충청우정청장 퇴진투쟁과 국정감사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충청지역 우체국에서 지난해에만 3명이 과로사했다.

한편 우정노조 관계자는 "우체국에서 보험과 예금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과거에는 집배원에게 실적으로 요구하는 사례가 있었지만 현재는 이런 관행이 개선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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