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진 금융노조 수출입은행지부 위원장

헌법은 사회 구성원의 합의를 명문화한 국가의 운영철학이자 국민과의 약속이다. 그런 헌법 1조는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인간으로, 또 국민으로 누리고 있는 인권과 주권은 이 한 문장의 가치를 지켜 온 수많은 희생 위에 놓여 있다.

그럼에도 다른 한편으로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기에 그만큼 쉽게 흘려버린 한 문장이기도 하다. 단어들이 주는 거창한 어감에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태어난 가정이, 자라온 학교가, 일하는 직장이 민주적이지 않은데 나라만 민주적일 수 있을까? 일상에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민주주의인데, 어느 날 갑자기 민주시민이 될 수 있을까? 대통령 한 사람이 바뀌었다고 모든 비정상이 하루아침에 바로잡히지 않는 것처럼 그런 착각은 가능하지 않다. 헌법 1조가 진정한 내 삶이 되기 위해 우리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해야 할 일이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냥 주어진 것은 쉽게 잃어버리지만 노력으로 이룬 것은 온전한 우리의 것으로 간직되는 법이다.

노조의 가치는 직장내 민주주의 실현에 있다. 임금과 복지, 노동시간을 이야기하는 것부터가 우리 노동조건을 우리 스스로 결정하겠다는 민주주의 실천이다. 인사권이 직원인권 위에 설 수 없고, 경영권이 직원주권 위에 설 수 없고, 조직논리가 노동권리 위에 설 수 없다는 외침 또한 내가 주인인 내 일터를 사람이 먼저인 곳으로 만들겠다는 민주주의 실천이다. 직원들의 자주적 결사체인 노조가 당당히 할 수 있고, 또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다.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이며, 노조에게 주어진 의무다.

안타깝게도 현실은 열악하다. 이 땅 노동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당당한 권리를 제대로 배워 본 적이 없었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하고, 주면 주는 대로 받았다. 주인의식이란 말은 소처럼 일할 때나 가져야 할 덕목이었지, 정작 주인으로 존중받았던 적은 없었다.

노조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노조가 존재하는 일터도 극히 일부분일뿐더러 거리로 나와 팔을 흔들고 소리치는 것이 언론에 비치는 전부인 세상에서 노조의 의미가 무엇인지,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생각해 볼 겨를은 없었다. 인사나 경영은 말할 것도 없고, 가장 기본적인 노동조건에 대한 요구조차도 이기적이라고 매도당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한참을 머물러 있었다. 비정상도 오래되면 마치 정상인 것처럼 느껴지는지라,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난 것이 아니라는 상식이 깡그리 무시되는 야만의 시대가 마치 당연한 것인 양 그렇게 오랫동안 살아왔다.

비정상은 어디까지나 비정상일 뿐이다. 변화가 때로는 고통스러울 정도로 더디다 하더라도 인류는 항상 전진했다. 노동자가 주인 되는 노동이사제가 사회적 의제가 되고, 직장내 갑질이 국민적 공분을 사고, 반헌법적인 무노조 경영을 오히려 선진 노사문화인 양 자랑스럽게 선전했던 재벌그룹조차 변하고 있지 않나.

역사는 증언한다. 민(民)이 주인(主人) 되는 민주주의라는 인류보편적 가치를 향해 희망을 잃지 않고 쉼 없이 가다 보면 언젠간 반드시 그곳에 도착한다는 것을. 한 사람이 꾸는 꿈은 꿈에 그칠 뿐이지만, 모두가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는 것을. 그러므로 이 글은 오늘도 투쟁 현장에서 같은 꿈을 꾸고 있는 모든 동지 여러분들에게 바치는 헌사다. 인간을 부속품으로 여기는 자본(資本)에 맞서 사람이 먼저인 인본(人本)을 지키기 위한 고귀한 투쟁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힘내시라.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역사의 주인공 여러분이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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