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설관리노조 기업은행지부

김웅 시설관리노조 기업은행지부장은 지난해 9월 서울 중구 기업은행 본점 15층에서 열린 하청업체 노동자 대표단 구성 회의에 참석했다가 황당한 일을 겪었다.

기업은행 경비·청소·시설관리를 하는 36개 하청업체에서 일하는 50여명이 노동자 대표를 자원하기 위해 회의장에 나왔는데, 상당수가 하청업체 관리자들이었기 때문이다. 회의 참석자들은 거수투표로 노동자 대표 8명을 뽑았다. 이 중 3명이 하청업체에서 소장·팀장·실장을 맡고 있는 관리자들이었다. 다른 한 명은 자회사 전환에 적극 찬성하는 입장을 보였다. 기업은행은 이들의 의사를 근거로 자회사 전환작업에 착수했다.

김웅 지부장은 16일 오전 기업은행 본점 앞에서 <매일노동뉴스>와 만나 “기업은행이 회사 편에 설 수밖에 없는 하청업체 관리자들을 노동자 대표로 발탁해 비정규 노동자들이 반대하는 자회사 방식의 잘못된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협력업체 관리자들이 노동자 대표로 참여

국책금융기관인 기업은행은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에 따라 ‘정규직화를 위한 노사 및 전문가협의기구’를 꾸렸다. 지난해 11월부터 가동 중인데, 최근까지 17차례 회의를 했다.

기업은행은 노동자 대표단 구성상 문제점과 일부 직군 반발에도 자회사 방식을 밀어붙이고 있다. 정규직 전환 대상자는 경비·환경미화·시설관리·사무보조·운전·조리(식당) 일을 하는 하청노동자 2천여명이다. 이들을 대변하는 노동자 대표 10명(기업은행 정규직 대표 2명 포함)과 기업은행측 대표 7명, 전문가 3명이 협의기구에 참여한다.

문제는 비정규 노동자를 대표하는 역할을 하는 8명 중 3명이 노동자들의 현장업무를 감독하는 관리자라는 것이다. 김웅 지부장은 “환경미화직군 노동자 대표는 본점 용역업체 현장소장 A씨, 조리직군은 본점 식당 조리실장 B씨, 사무보조직군은 한남동 고객센터 팀장 C씨”라며 “이들이 비정규 노동자들의 뜻과는 달리 기업은행 입장에 적극 동조하면서 기업은행이 이를 근거로 자회사 전환을 밀어붙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조 반발에도 경비직 자회사 전환 강행

기업은행은 최근 협의기구 운영을 사실상 중단하고 하청업체 관리자가 대표하는 직군(환경미화·조리·사무보조)에 경비를 더해 4개 직군을 자회사 전환 대상으로 분류했다. ‘인력자회사 설립을 위한 TF’까지 운영 중이다. 해당 직군 종사자는 1천500여명이다.

인원이 740여명으로 가장 많은 경비직군의 경우 노조 대표자 의견이 묵살되고 있다는 게 노조 주장이다. 경비직군 노동자 대표는 2명이다. 기업은행 지점 매니저로 일하는 D씨와 기업은행 한남동 고객센터에서 일하는 배재환 공공연대노조 서울경기지부 기업은행지회장이다. 기업은행은 D씨가 찬성한다는 이유로 경비직군을 포함해 자회사 전환을 강행하고 있다. D씨는 협의기구 단장을 맡고 있다.

배재환 지회장은 “D씨가 현장 의견이라며 자회사 전환에 찬성했고 기업은행은 이에 근거해 경비직군을 포함해 자회사 전환 TF를 가동하고 있다”며 “100여명의 기업은행 경비노동자가 가입해 있는 네이버 밴드가 있는데 자회사 전환에 찬성하는 경비노동자는 서너 명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모두 D단장의 결정에 반대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D씨는 이와 관련해 “나는 611명의 은행 영업점 청원경찰을 대표하고 있고, 배재환 지회장은 127명 본점 시설경비를 대표하고 있다”며 “전체적으로 모이는 경우가 없어 별도 의견수렴은 없었지만 직역을 대표해 가이드라인에 따라 의견을 전했다”고 주장했다.

시설관리노조 기업은행지부 관계자는 "기업은행이 노동자 대표로 협력업체 관리자들을 앞세워 자회사 방식을 밀어붙이고, 임금 10% 인상 수준의 처우개선만 가능하다는 입장을 내놓았다"며 "은행과 관리자들이 직접고용시 만 60세 정년 적용·임금피크제 도입·공개채용으로 탈락자가 발생한다는 협박으로 제대로 된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는 비정규 노동자들을 압박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업은행측은 <매일노동뉴스>의 전화와 이메일 해명 요구에 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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