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거령 이후 몸을 피했던 민주노총 단병호 위원장이 보름만에 모습을 드러내자 최고의 관심사는 그동안 어디에 머물렀으며, 어떻게 명동성당에 잠입했는가에 모아졌다. 그러나 단위원장은 29일 기자회견에서 "28일 오후 늦게 들어왔으며 그 이상은 자세히 밝힐 수 없다"고 딱 잘라 말해 더욱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자세한 내막을 알리지 않는 속에서 일부 알려진 바에 따르면 28일 일명 '남산작전'을 펼친 끝에 명동성당에 잠입에 성공할 수 있었다. '남산작전'이란 28일 단위원장과 이홍우 사무총장의 차를 남산에 대기시킨 상태에서, 경찰의 눈을 피할 수 있는 일종의 위장전술을 이용해 차를 타고 정문을 통과해 각각 진입할 수 있었다. 단위원장은 한번에 성공했고, 이사무총장은 한번 실패 이후 다시 남산으로 돌아갔다가 두 번째에 성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진입 시각은 '오후 늦게'라고 표현한 것과는 달리 다른 시각이었고, 그 위장전술에 대해서는 일체 함구했다.
특히 왜 28일이었냐에 대해서도 관심이 모아졌는데, 사실 명동성당측은 단위원장이 몸을 숨긴 후 대략 사흘 뒤에 '수배자들에 한해' 농성장소를 제공하기로 응락했으나, 경찰의 검문검색이 워낙 심해 기회를 노려오다가 28일에서야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 그 동안 경찰은 명동성당, 조계사 등지에서 진을 치고 출입차의 트렁크를 열어보는 등 철저한 검문검색을 펼쳐왔다.
그밖에 단위원장과 이사무총장은 검거령 이후 함께 은신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내와 근교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주로 라면 등으로 끼니를 때워왔고, 휴대폰도 2∼3일에 한번씩 교체해 경찰의 추적을 피해왔다. 특히 28일 경찰은 단위원장 등이 보름 전까지 머물렀던 봉천동 은신처를 뒤늦게 기습하기도 하는 등 그 동안 머물렀던 적이 있는 은신처 3곳을 28일 하루동안 한꺼번에 들이닥쳤던 것으로 알려졌다.
단위원장은 길거리에 붙여있는 자신의 수배전단을 본 적이 있다며 "씁쓸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