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회사와 계열사 간 파견근로자 연속사용을 사용사업주 지위 승계로 보는 판결이 나왔다. 지주회사가 근로자파견계약을 종료한 뒤 계열사가 같은 파견노동자를 2년 미만 사용했더라도 두 기간을 합해 2년을 초과하면 직접고용의무가 발생한다는 취지다.

15일 법무법인 민심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41민사부(재판장 박종택)는 지난달 28일 KB국민은행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낸 파견노동자 김아무개씨를 직접고용하라고 판결했다. 국민은행이 김씨를 고용한 기간이 2년에 미치지 않더라도 직전 김씨를 사용했던 KB금융지주의 사용사업자 지위를 승계했으니, 두 기간을 합산해 사용기간을 산정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KB금융과 국민은행 파견기간 합산해야

원고 김씨는 운전업무를 하는 파견노동자다. 2013년 7월 인력파견회사 ㅌ사와 KB금융에서 일하는 내용의 1년 단위 근로계약을 체결했다. KB금융은 ㅌ사와 같은 기간 파견노동자인 김씨를 사용한다는 근로자파견계약을 체결했다. 사용사업주인 KB금융 HR부 팀장의 직접적인 지휘·명령을 받아 KB금융 사업장에서 자동차 운전업무에 종사한다는 내용이다.

김씨는 그때부터 KB금융 ㅅ상무의 운전기사로 일했다. 그런데 ㅅ상무가 이듬해 1월 계열사인 KB국민은행 지역본부장으로 전보하면서 김씨의 사용사업주도 KB금융에서 국민은행으로 바뀌었다. ㅅ상무 차량운전을 계속할지 묻는 KB금융 인사담당자에게 김씨는 "그러겠다"고 답했다. 국민은행과 ㅌ사는 2014년 1월부터 1년짜리 근로자파견계약을 맺었다. 김씨는 ㅅ본부장 기사로 근무한 지 2년이 되기 직전인 2015년 12월 말 ㅌ사에서 퇴직했다.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에 따르면 파견기간은 1년을 초과하지 못하고, 사용사업주와 파견사업주, 노동자 간 합의가 있으면 파견기간을 1회 연장할 수 있다. 전체 파견기간이 2년을 넘으면 사용사업주가 파견노동자를 직접 고용해야 한다. 국민은행이 김씨 계약을 연장하지 않은 이유는 분명했다.

그런데 김씨가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2년을 초과해 계속 사용했으니 국민은행이 직접고용의사를 표시하고 정규직이 됐으면 받았을 월급을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국민은행은 파견법상 사용사업주도 아니고 설령 사용사업주더라도 2년을 초과해 사용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묵시적 합의 계속근로' 소송 잇따를 듯

재판부는 “국민은행이 2014년 1월 KB금융과 묵시적 합의에 따라 ㅌ사와 원고에 대한 사용사업주 지위를 승계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국민은행이 KB금융의 ㅌ사와 김씨에 대한 사용사업주 지위를 그대로 승계했다”며 “김씨가 파견근로를 개시한 날부터 2년이 만료된 다음날인 2015년 7월29일부터 고용의무를 부담하므로 국민은행이 김씨에게 고용의 의사표시를 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국민은행이 두 번에 걸쳐 ㅌ사와 근로계약을 체결했지만 같은 인물 운전기사로 근무했고, 2014년 사용사업주가 KB금융에서 국민은행으로 바뀔 때에도 금융지주 인사담당자가 계속근무 여부를 확인했다는 이유였다. 이 과정에서 맺은 근로자파견계약이 거의 일치하고, KB금융과 맺은 근로자파견계약이 종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국민은행과 계약을 맺었는데 누구도 문제 삼지 않았다는 점을 '사용사업주 지위 승계' 근거로 봤다.

재판부는 국민은행 무기계약직 운전기사를 비교대상 노동자로 보고 손해배상액을 산정했다. 재판부는 2015년 7월29일부터 배상금 산정 기준일인 지난해 4월30일까지 정규직이 됐으면 받았을 급여에서 파견사업주에게 받은 월급과 퇴직금, 퇴직 뒤 다른 업체에서 일하고 받은 금액을 제외한 손해배상금을 김씨를 고용하는 날까지 지급하라고 밝혔다.

변영철 변호사(법무법인 민심)는 “2년 미만 일한 파견노동자의 고용의무를 인정한 첫 판결”이라며 “고용의무를 지지 않기 위해 파견노동자가 2년이 되기 전에 계약을 해지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인데 이번 판결로 사용사업주 지위 승계라는 새로운 법리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계열사나 자회사에서 직접고용의무를 피하기 위해 파견노동자를 돌려쓰는 경우 묵시적 합의하에 계속근로를 했다고 볼 수 있다”며 “비슷한 형태의 노동자들이 다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는데 이번 판결로 소송을 포기했던 많은 파견노동자가 구제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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