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세계 석학들이 한자리에 모여 고용시스템 변화 속에서 전환기 노사관계를 예측해 보는 세계 학술대회가 열린다. 23일부터 27일까지 서울 코엑스에서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고용노사관계-무엇을 할 것인가?'를 주제로 개최되는 국제노동고용관계학회(ILERA) 2018년 서울 세계대회다.

서울 세계대회는 규모부터 방대하다. 170개 학술세션이 준비돼 있다. 논문만 600편 이상 발표된다. 국제노동기구(ILO) 관계자들과 전 세계 60여개 국가에서 1천800여명이 서울을 찾는다. 매머드급 노사관계학 올림픽이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12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 안암캠퍼스에서 김동원(58·사진) 교수(경영학)를 만났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배출한 ILERA 회장이다. 김 교수는 노사관계 후진국 오명을 벗지 못한 한국에서 ILERA 세계대회가 열리는 것과 관련해 “Now or Never(지금이 아니면 절대 못한다)”라고 표현했다. 한국 사회가 중요한 시기를 관통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김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노동존중·소득주도 성장 정책에 대해 “방향성은 맞지만 방법론에 문제가 있다”며 “너무 성급하고 덜 세련되고 정교함이 떨어진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보다 세밀한 설계가 필요하다”는 주문을 곁들였다.

- ILERA를 소개해 달라.

“국제적인 학회가 많지 않다. 국제적으로 비교연구가 가능한 학문 분야가 생각보다 많지 않기 때문이다. 국제노동고용관계학회는 1966년 냉전시대에 태어났다. 처음에는 명칭이 IIRA(국제산업관계학회·The International Industrial Relations Association)였다. 70~80년대를 지나면서 산업관계학이라는 명칭이 협소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2009년 지금의 ILERA(International Labour and Employment Relations Association)로 바꿨다. 노동관계를 넘어 전반적인 고용문제를 포괄하자는 의미다.

ILERA는 노동 관련 학회 중에서는 최대 조직이다. 48개국의 국가단위 학회가 소속돼 있다. 60개국 이상에서 학자가 참여한다. ILO와는 자매관계다. ILO가 ILERA에 자금도 지원하고 사무실 공간이나 인력도 지원한다. 물론 산하기관은 아니다. ILO가 정책집행조직이라면 ILERA는 연구학술조직이다. 3년 전 ILERA 회장에 취임했다. 종종 ILO 사무총장과 업무협의를 한다.”

- 23일부터 27일까지 ILERA 세계대회가 서울에서 열린다. 어떤 의미가 있나.

“과거 우리나라는 노동탄압 국가라는 이미지가 커서 ‘노사관계 올림픽’을 여는 것 자체를 꺼렸던 게 사실이다. 지금은 다르다. 아시아에서 열리는 것은 일본에 이어 한국이 두 번째다. 대륙별로 돌아가면서 3년에 한 번씩 열린다. 12년마다 아시아국가 개최 순서가 돌아온다. 서울 세계대회는 'Now or Never'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 50여년간 일본에서 두 차례 열렸는데, 12년 뒤에는 중국이나 인도로 넘어가지 않겠나. 운 좋게 이 시기에 서울에서 노동학자들의 큰 잔치를 열게 됐다.”

- 서울 세계대회 주제를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 고용노사관계 : 무엇을 할 것인가’로 정했는데.

“많은 이들이 자본주의 자체가 지속가능한지 의문을 제기한다. 98년 아시아에 경제위기가 닥쳤다. 2008~2009년 유럽과 미국이 금융위기에 봉착했다. 머지않아 경제위기가 다시 도래할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지금 잘살아도 10년 뒤 경제위기가 찾아와 실업과 고통을 겪게 된다면 의미가 없다. 지속가능하게 인간다운 삶을 누리는 것이 중요하다.

양극화는 경제위기의 주요 원인이다. 양극화를 극복하는 노동체제를 만들어야 자본주의도 지속가능하게 발전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고용 문제는 어떻게 다뤄야 하나. 일자리·고용·노사관계 문제에 관한 해법을 모색하는 자리가 ILERA 서울 세계대회다.

뒤에 있는 구절은 레닌의 책 <무엇을 할 것인가(What Is To Be Done?)>에서 따왔다. 지속가능한 고용노사관계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실천을 강조하고 싶었다.”
 

정기훈 기자

“플랫폼 경제로 고용관계 변화, 노조 성격도 달라져야”

- 최근 급격하게 변하는 고용구조와 노사관계가 학계에서 화두일 듯한데.

“일이 획기적으로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한 번 취업하면 길게 고용한다. 풀타임 노동자니까 당연히 노조가 생겼다. 그런데 플랫폼 경제가 대세를 이루면서 장기고용은 사라지고 초단시간 노동자로 대체되고 있다. 프리랜서와 특수고용직이 크게 늘었다. 이들은 과거처럼 노조에 가입하기가 쉽지 않다. 근속이 짧고 근무형태도 다르다. 그래서 생긴 것이 준노조(쿼지노조·quasi-union)다. 알바노조·청년유니온·외국인근로자쉼터가 대표적이다. 법적으로는 노조가 아니지만 사실상 노동자를 보호하는 기구다. 앞으로 노조 역할이 크게 달라지지 않겠나. 노사관계도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노동법도 확 바뀌어야 한다. 노사분규 양상도 달라진다. 준노조의 경우 파업 효과가 크지 않다. 사용자가 명확하지 않아 단체교섭도 쉽지 않다. 그래서 거리로 나서게 된다. 여론에 호소하고 결국에는 정부를 압박해 법을 바꾸는 것으로 이해관계를 달성할 가능성이 높다. ILERA 서울 세계대회 ‘일의 미래’ 세션에서 이런 이야기를 다룬다. 미래 노사관계를 예측해 볼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다.”

- ILERA 창립 50주년 기념 심포지엄이 관심을 끄는데.

“노동고용관계에서 이름만 들어 봤던 세계적인 학자들이 서울 세계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대거 방한한다. 역대 회장 17명 가운데 생존해 있는 9명이 서울을 찾는다. ILERA 창립 5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지금까지는 전임회장 5명이 모여 사진을 찍었던 게 다다. 이번에는 전직 회장 9명과 현직, 차기 회장까지 11명 모두가 한자리에 선다. 11명이 ILERA 50주년을 맞아 스스로를 회고하며 노사관계를 전망하는 글을 하나씩 썼다. ‘노사관계학문의 과거·현재·미래(가제)’라는 이름으로 출판할 예정이다.

“노동고용관계학 후속세대 키우겠다”

- ILERA 현직 회장으로서 의미가 남다를 것 같다.

“회장이 되면서 두 가지 약속을 했다. 후속세대 양성과 개발도상국 노사관계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공약이다. 서울 세계대회에 후속세대가 많이 참가할 수 있도록 장학금제도를 개선했다. 학생들의 참가신청이 눈에 띄게 늘었다. 또 노사관계는 불안한데 전문가가 없어 더욱 불안한 개발도상국 학자들을 많이 초청했다. 비자 발급이 쉽지 않아 고생을 많이 했다. 필리핀 마닐라대 전 학장도 우리나라 영사관에서 비자를 안 내줘서 서울에 못 온다고 연락이 왔다. 외교부에 신원보증서를 써 보냈다. 여러 조치들을 강구하고 있다.”

- 우리나라에서 노사관계를 공부하는 학생이 다른 학문보다 적은 편이지 않나.

“노동고용관계학은 매일 신문의 헤드라인을 차지할 정도로 학문 자체의 중요성이 크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이 많지 않다. 학문이 만들어진 게 불과 100여년 전이다. 신생학문이고 다양한 분야를 섭렵해야 하기 때문에 '재미있지만 어렵다'는 평가가 많다. ILERA 서울 세계대회가 젊은이들에게 많은 자극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월드컵이 열리면 장래에 축구선수를 꿈꾸는 학생들이 늘어나지 않나. 골프선수 박세리붐이 일어 박세리키드가 생겨난 것처럼 말이다. 이번 세계대회를 계기로 노사관계 학문이 융성해지고 노사관계 정책이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내년에 100주년을 앞둔 ILO도 특별세션을 준비하고 있다.

“ILO를 학문적으로 조명하는 자리다. ILO는 칭송의 목소리와 비판의 목소리가 공존한다. ILO가 비판받는 이유는 선진국 노동 문제에는 입을 다물고, 후진국에서는 군림하는 듯한 태도 때문이다. 그렇다고 ILO의 긍정적인 측면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노동자들이 혹사당하는 개발도상국에서 ILO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다. ILO가 인류의 근로조건을 공론화하고 향상하는 데 기여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ILERA 서울 세계대회 폐회식에 앞서 ILO 100주년 특별세션이 열린다. 데보라 그린필드 ILO 사무차장과 비판적 입장의 학자들이 참가해 ILO를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자리다. 미래 방향을 제시하는 세션이 될 것이다.”
 

정기훈 기자

문재인호 노동정책 '성급한 방법론' 역풍 맞을 수도

- 문재인 정부 집권 1년이 지나면서 소득주도 성장 정책과 노동존중 정책이 흔들리고 있다는 평가가 있는데.

“기본적으로 노동존중 정책에 찬성한다. 소득주도 성장은 전례가 없지만 신선한 시도로 본다. 큰 방향성에 공감한다. 그런데 지금은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밸런스를 맞춰야 할 때다.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 단계적으로 차근차근 다져 나가야 한다. 단시간에 급격하게 정책을 진행하면 부작용이 나타난다. 문재인 정부가 보호하겠다는 극빈층이나 워킹푸어의 일부가 최저임금으로 직장을 잃거나 주 52시간 상한제로 월급이 줄어드는 측면이 있다. 아직 늦지 않았다. 기조는 유지하되 부작용을 극소화하는 방향으로 보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정책 전체가 역풍을 맞고 침몰할 수도 있다.”

- 방향성은 맞지만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말인가.

“지금 노동정책은 밑바닥에 있는 최하층은 혜택을 받지 못하고 노조가 있는 중간층에만 도움이 된다. 제도가 겨냥하는 계층을 돕지 못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보다 세밀한 설계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방향성은 맞지만 방법론에 문제가 있다. 너무 성급하고 덜 세련되고 정교함이 떨어진다. 필요 이상으로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제도가 성공하려면 여러 예외조항과 더불어 충분한 시간을 두고 연착륙을 시켜야 한다. 과격하게 경착륙을 유도해 제도 자체에 회의감을 야기되면 안 된다. 먼 길을 가야 하지 않나. 막 뛰어가서는 얼마 못 간다. 같이 손잡고 걸어가야 멀리 갈 수 있다.”

- 사회적 대화가 재개 움직임을 보이다 중단됐다. 어떻게 전망하나.

“참여정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참여정부가 그렇게 사회적 대화를 원했지만 민주노총은 나오지 않았다. 파업도 아주 많았고 구속된 노동자도 많았다. 지금은 그때보다 상황이 좋다. 일단 민주노총이 나오지 않았나. 20년 만에 처음이다. 긍정적인 신호다. 노사정이 ‘밀당’을 하겠지만, 그렇다고 미세한 움직임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노사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밸런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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