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1987년 6월 항쟁 이후 교육민주화운동도 크게 발전해 그해 9월 전국교사협의회가 결성되면서 본격화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나는 서울 ㅅ고등학교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몇몇 선생님들과 함께 열심히 참여했습니다. 그러면서 크게 걱정했던 것 중 하나는 이런 내 모습이 학생들에게는 어떻게 보이고 또 받아들여질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 전해에 있었던 교사들의 교육민주화선언 때 앞장섰던 일로 언론에 크게 보도되는 등 유명세를 치른 바 있고, 전국교사협의회에서도 간부를 맡아 학생들에게 운동권교사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수업시간에 나를 대하는 학생들의 눈초리가 달라 보여 조심스럽기도 했습니다. 더 열심히 준비하고 더 열정적으로 수업에 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창준이(가명)와 친구 몇이 찾아왔습니다. 창준이는 3학년 신문반 학생으로 평소 침착하며 생각이 많아 보였는데 그날따라 더 심각했습니다.

“선생님 저희들도 단체를 만들어 교육운동에 참여하고 싶어서 그동안 우리끼리 모여 토론도 하고 준비도 했는데 선생님께 보고도 드리고 도움도 받고 싶어 왔어요.”

또박또박 말하는 모습이 결의에 차 있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으며 한편으로는 대견하고 한편으로는 걱정스럽고 심경이 복잡했습니다.

“그래도 입시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공부에 지장이 있지 않겠니? 어떻든 우선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야 할 텐데 말이야.”

나도 모르게 인문계 고등학교 꼰대 교사의 반응이 그대로 나오고 말았습니다.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저희들에게 늘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해야 하고 불의를 용납해서는 안 된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실천할 때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할 말이 없었습니다.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아득할 뿐이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늘 누구 앞에서나 당당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우리들 앞에 당당하기 위해 교육운동도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들도 언제나 당당하게 살라 하셨습니다. 저희들도 선생님 앞에 당당하고 싶습니다.”

나는 이 학생들 앞에 부끄럽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하면서 교사의 삶을 살아왔습니다. 어두운 시대는 나를 학교에서 쫓아냈고 감옥에 보냈습니다.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우리 전교조 교사들은 형편은 조금씩 다르나 대부분 나와 비슷한 길을 걸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현재의 지도부나 5만명이 넘는 조합원들은 이명박·박근혜 시대의 모진 탄압을 뚫고 어렵게 우리 학교교육을 지켜 왔습니다.

2016년 1천700만명이 참가한 촛불혁명은 우리 사회를 밝은 사회로 바꿔 가고 있습니다. 적폐청산의 이름으로 과거의 잘못을 들춰내고 책임을 물으며 새로운 시대를 열어 가고 있습니다. 남북분단을 악용한 거짓 반공이념의 먹구름도 걷어 내고,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에 남북이 힘을 모으고 있습니다.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기관에서 저질렀던 통치 차원의 적폐도 하나하나 걷어 내고 있습니다. 유독 교육계만은 적폐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말도 안 되는 국사교과서의 국정화 획책도 책임조차 제대로 묻지 못하고 대충 마무리하더니, 전문성이 핵심인 입시정책을 공론화 방식에 전가하는 무책임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범죄 수준의 여러 비리사학은 그대로 온존하고 사교육의 창궐은 보통교육의 모든 정책을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그중 가장 심각한 것이 전교조의 법외노조 통보입니다. 사법농단의 대상이 되기도 했던 박근혜 정권의 적폐 중 적폐를 문재인 정부는 대선공약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해결하지 않고 있습니다. 행정처분 취소라는 너무도 명확하고 쉬운 방법이 왜 두려운지, 어려운(현 정치지형에서는 불가능한) 방법만 제시하며 시간을 끌고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전교조 교사들이 두려운 것은 학생들입니다. 매일 만나는 학생들은 촛불로 새로 세워진 나라는 아닌 건 아니고 옳은 건 옳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불의는 용납되지 않는 사회로 알고 있는데 전교조만 왜 법 밖에 있어야 하는가를 묻고 있습니다.

오늘도 전교조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당당함을 가르치기 위해 스스로 당당할 뿐입니다.

전태일재단 이사장 (president11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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