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어릴 때 기억이다. '민주정의사회구현'. 온 동네에 이런 표어가 붙어 있었다. 텔레비전에 수시로 나오던 어떤 분도 입만 열면 그 말이었다. 사회교과서에서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그리고 ‘살기 좋은 대한민국’이라고 배웠다. 진짜 그런 줄 알았다. 어린 시절, 꽤 오랜 기간. 그런데 언젠가 그게 다 거짓이란다. 우리나라는 군부독재였고, 주권은 국민에게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만으로도 굉장히 ‘안 좋은’ 나라임이 분명해졌다.

실체와 다른 이름을 붙인 것이다. 결과적으로 국가가 스스로 만든 거짓말에 유년시절이 아름답게 포장됐다. 머리가 큰 지금 생각하면 그때는 현상에 걸맞은 이름을 붙이기가 참으로 중요하다는 나름의 교훈을 만들어 낸 너무나 값비싼 기간이었다.

최저임금(最低賃金). 말과 글자 그대로 가장 낮은 임금이다(이어야 한다). 대부분 현대사회가 그렇듯이 우리 사회도 최저임금을 도입한 지 30여년에 이른다. 그런데 다른 사회와 그 의미를 받아들이는 방식에서는 매우 큰 차이가 있어 보인다. 최저임금이 우리 사회에서는 ‘최고임금’으로 변질된 지 오래라는 평가다. 최저임금은 그야말로 국가와 사회의 도움이 필요한 저임금 노동자를 위한 것이어야 하는데, 직접 대상자가 500만명에 육박하고 2천만 노동자의 절반인 1천만 노동자가 최저임금의 상당한 영향을 받고 있다고 한다.

말하자면 우리에게는 최저임금이 아니다. 최고임금이라고 쓰기 어려우면 ‘가장 중요한 임금’이라고 해야 하는 게 더 맞지 않을까. ‘최고임금위원회’나 ‘가장 중요한 임금을 결정하는 위원회’로 개명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

‘노동시간단축’ ‘주 52시간 시행’ ‘저녁이 있는 삶’ 같은 말들은 아마도 요즘 가장 널리 쓰이는 말일 게다. 초등학생도 ‘노동시간이 뭐냐’고 물을 지경이니 말이다. “노동시간이 단축됐습니까” 아니면, “저녁이 있는 삶을 맞을 준비가 돼 있습니까” 하고 현장노동자에게 물어보자. 과연 그 대답은 어떨까. 적어도 국가와 사회가 노동자에게 그런 정도는 보장해 주고 나서야 가능하지 않을까. 이름과 실제에 너무나 큰 격차가 있다. ‘명실상부’라 했는데, 이름만 요란해 보인다.

말은 존재를 담는 집이라고 하지 않던가. 해석하는 이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그만큼 겉으로 드러난 표현이 실체와 부합해야 하고 때로는 그 표현이 앞으로 만들어질 실체를 정하기도 하기 때문이리라. 고용노동부, 이 말의 목적은 지난 정부에서 잘 설명했다. ‘노동부’에서 ‘고용’을 먼저 강조하는 행정담당부서로 변모를 꾀한 것이다. ‘노동’보다는 ‘고용’으로. 물론 이 이름이 잘못됐다는 비판은 초대 노동부 장관(권중동)부터 현장의 일개 실무가에 이르기까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영주 노동부 장관은 시간이 날 때마다 “노동자에게 노동을 되찾아드리겠다”고 다짐했던 것 아닌가. 하지만 ‘노동자를 노동자라 부르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노동자들 스스로가 간절히 원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노동부 장관’을 ‘근로부 장관’이라고 부를 수는 없지 않은가. 노동과 근로는 전혀 다른 가치를 지향하고, 더구나 고용은 전혀 헌법적 위상을 갖는 말도 아니기 때문에 현재의 모습은 일종의 위헌 상태다.

그래서 우리는 가장 먼저 바로잡을 행정이 노동부의 제 이름 찾기라고 생각했다. 더 나아가 근로기준법을 비롯한 각종 법률에서 노동이 바로 서리라 생각했다. 근로자의 날이 아니라 ‘노동절’로 쓰이길, 너무나 당연히 희망했다. 그런데 아직까지 아무런 응답이 없다. ‘생각을 담는 집’부터 고치지 않고 그 안에 뭘 담은들 제대로 된 ‘집’이 될 수 있을까.

옛말에 정치의 시작은 정명(正名)이라고 했다. ‘이름을 바로잡는다’는 뜻이리라. 이름을 바로잡는 일만큼 중요한 일이 있으랴. 교과서에서 배운 짧은 지식이지만 시인 김춘수는 그 중요함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이름을 불러 주자 자신에게 다가와 꽃이 됐다고 했으니. 문재인 정부 이름 짓기는 매우 잘 됐다. ‘나라다운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 언론에서도 정부의 주요 국정지표 중 하나로 ‘노동존중 사회’를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촛불정부’는 이 모든 것을 담고도 남는다.

나머지는 실천이다. 그 이름이 부끄럽지 않도록 내용을 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는 도리어 ‘바로잡아야 할, 아니면 버려야 할 잘못된 이름 붙이기’로 전락할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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