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민애 변호사(법무법인 향법)

2018년 7월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다시 분향소가 차려졌다. 복직약속을 했던 쌍용자동차는 3년째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정리해고가 정당하다며 원심 판결을 뒤집었던 대법원 판결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재판거래를 자행한 사법농단 결과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온갖 경찰력을 동원해 노동자들의 파업을 진압했던 국가폭력 가해자들이 되레 피해자들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퇴직금까지 가압류했다.

그리고 2013년, 더 이상의 죽음을 막기 위해 22명의 영정을 안고 대한문 앞에 분향소를 차려야 했던 이들의 품에 8명의 영정사진이 늘어났다. ‘2009년 8월5일 공장 옥상의 기억을 조용히 감당하며’ 살아야 했던 고 김주중 조합원은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났다. 한 명 한 명의 삶을 기억하고 그 무게를 안고 가야 하는 것은 오롯이 우리들의 몫이 됐다.

노동자들의 삶을, 그 가족들의 삶을 송두리째 망가뜨린 책임을 져야 할 이들이 너무도 많다.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자들을 폭력적으로 진압했던 경찰, 진압 과정에서 경찰이 피해를 입었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한 정부, 1·2심 법원에서 회계조작사실까지 드러나 정리해고가 부당하다는 사실이 확인됐음에도 스스로 경영상 어려움을 판단해 정리해고가 정당하다며 그 판결을 재판거래 수단으로 삼았던 대법원, 복직 약속만 하고 다시 노동자들을 기약 없는 기다림으로 내몬 쌍용차. 그 누가 노동자들 앞에 고개를 들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조용히 고인을 추모하고 서로의 고통과 아픔을 나누고 치유하는 공간이어야 할 분향소가 온갖 폭력과 폭언으로부터 버티고 견뎌야 하는 곳이 되고 있다. 태극기와 성조기가 흩날리는 가운데 군가가 울려 퍼지고 욕설과 폭언이 난무하는 대한문 앞은 삶과 죽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실종됐다. 동료의 죽음으로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었던 노동자들에게 시체팔이 운운하며 최소한의 양심조차 포기한 자들이 군복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이들의 폭력과 폭언으로부터 분향소와 분향소를 찾은 사람들을 지켜야 하는 상황이 돼 버린 것이다.

대한문 앞에 먼저 집회신고를 했다는 이유로 보수단체 회원들의 위와 같은 행동들은 통제되지 않고, 직접적인 충돌이 우려되는 상황이 되고서야 경찰이 개입하는 상황이다. 신고된 집회라고 할지라도 "집단적인 폭행·협박·손괴·방화 등으로 공공의 안녕 질서에 직접적인 위험을 초래한 경우"에는 제한할 수 있다. 신고된 목적을 뚜렷이 벗어난 행위 역시 금지돼 있다. 이러한 법적 한계를 벗어나 오로지 분향소를 방해하기 위한 발언과 행동이 난무하는 집회가 보호되고 있는 것이다.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과 폭언을 퍼붓고 조금만 틈이 보이면 폭력을 행사하는 이들을 무슨 명분으로 계속 보호하고 방치한단 말인가.

경찰은 2013년 당시 분향소 강제철거와 참가자 연행으로 일관했고, 분향소를 철거한 후에는 화단을 설치해 집회와 분향소 설치를 원천적으로 봉쇄했다. 보수단체 회원들의 위와 같은 행태를 묵인하고 지켜만 본다면 경찰 스스로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그리고 분향소를 찾은 많은 사람들에게 다시 한 번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짓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껏 누구도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았다. 누구라도, 조금이라도 책임을 다하려고 했다면 노동자들이 다시 분향소를 세워야 할 일도, 폭언과 폭력을 견디며 동료의 영정을 지켜야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더 이상의 죽음을 막기 위해 분향소를 다시 세울 수밖에 없었던 노동자들 앞에, 정부는, 경찰은, 쌍용차는, 그리고 대법원은 답해야 한다.

서른 명의 인생을, 그 가족과 동료들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은 대가를 어떻게 치를 것인지, 지금이라도 더 이상의 고통과 기다림의 시간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루라도 빨리 해고노동자들의 복직과 명예회복, 손해배상청구 및 가압류 철회 요구에 제대로 응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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