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호 한국노총 교육선전본부 실장

왼쪽 어깨에 불편함을 느낀 것은 지난 3월, 지금으로부터 4개월 전이다. 팔을 뒤로 돌리다가 뻐근함을 느꼈다. ‘잠을 잘못 잤나’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뻐근함은 통증으로 이어졌다.

말로만 듣던 ‘오십견’이 오십이 되지 않은 나이에 찾아온 것이다. 왼쪽 어깨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잠잘 때 오른쪽으로만 눕다 보니 불편해서 잠을 설치고 어렵게 잠이 들었다가도 수면 통증에 흠칫 놀라 깨어난다.

나는 오른손잡이다. 쓰고 먹고 팔과 관련된 모든 행동을 할 때 오른손만 사용한다.

“도대체 사용하지도 않는 왼쪽 어깨가 왜 아픈 거야?” 하고 후배에게 투덜대자, 후배는 “용불용설이지요”라고 말한다. 자주 사용하는 기관은 발달하고 그렇지 않은 기관은 퇴화한다는 중학교 생물시간에 배웠던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을 나이를 먹고 몸소 체험하고 있다. 후배는 “그래도 오른쪽이 아니어서 다행이에요. 오른쪽 어깨였다면 큰일 볼 때도 그렇고 얼마나 불편했을 거예요”라며 위로 같지 않은 위로를 건넨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진다’는 잘못된 해법을 믿고 참고 견디다가 결국 병원에 갔다. 뼈나 근육에는 이상이 없으니 물리치료를 받으라는 의사의 진단을 받았다. 몇 차례 물리치료를 받다가 치료사에게 “이걸 언제까지 받아야 하나요?” 하고 묻자 “몇 번 받으셨어요?”라고 되묻는다. “세 번째예요”라고 대답하자 픽 웃더니 “매주 최소 3번, 한 달 이상은 물리치료를 받으셔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초기에 치료를 받으셨으면 금방 나아질 텐데 너무 오래 참으셨어요”라는 말을 덧붙인다.

‘병을 키운다’더니 딱 그렇게 돼 버렸다.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일찍 치료를 했다면 고통의 시간을 훨씬 줄였을 것이다. 흔히 ‘시간이 약’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시간이 ‘약’이 될 수 있는 경우는 오직 ‘망각’에 기댔을 때만 가능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낸 시간은 결코 고통을 낫게도, 잊게도 하지 못한다. 오히려 고통을 키우고 시간을 연장시킬 뿐이다.

지난 2일은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인 반올림이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농성을 시작한 지 1천일째 되는 날이었다. 삼성전자에서 일하다 2007년 백혈병으로 숨진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는 “반올림에 제보해 온 분만 300명이 넘고 그중 118명이 사망했다”며 “사람을 죽인 사람은 살인죄로 처벌하는데, 화학약품으로 노동자들을 죽게 한 기업은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얼마 전 쌍용자동차 해고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09년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태 이후 서른 번째 사망자다. 그는 아내에게 ‘고생만 시키고 마지막에도 빚만 남기고 간다’며 ‘부디 행복하라’는 마지막 문자를 보냈다. 쌍용차 노사는 2015년 12월 해고자 복직에 합의했지만 지금까지 복직된 노동자는 45명에 불과하다. 120명의 해고자는 여전히 일터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수천 일이 지나도 이들의 고통은 현재 진행형이다. 사회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이 고통은 계속된다.

반올림과 쌍용차 노동자 등 고통의 수렁에서 여전히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사회의 관심과 연대 목소리다. 그들이 너무 오래 참지 않게, 잔인한 기다림의 시간을 끝낼 수 있게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을 기대한다.

한국노총 교육선전본부 실장 (labornews@hanmail.net)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