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 온도계 생산공장에서 일하던 문송면군은 수은중독으로 사망했다. 인조비단을 만들던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은 이황화탄소 중독으로 온몸이 마비되고 머리가 깨지는 듯한 고통 속에 죽어 갔다. 이들 모두 제대로 된 보호장비도 없이 일하다가 직업병에 걸렸지만 산업재해로 인정받기까지 힘겨운 싸움을 해야 했다. 그리고 30년이 흘렀다. 2018년에도 반도체공장에서 원인 모를 병에 걸려 죽어 가는 노동자들이 산재보상을 위해 10년 가까이 싸우고 있다. 입사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23세 청년노동자는 청산가리의 기체형태인 시안화합물을 바가지로 퍼 옮기다가 목숨을 잃었다. 지난 30년간 노동자의 일터는 얼마나 안전하고 건강해졌나. 문송면·원진노동자 산재사망 30주기 추모조직위원회가 노동안전보건의 역사와 현실을 고민하는 글을 보내왔다. 4회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현재순 문송면·원진노동자 산재사망 30주기 추모조직위원회 집행위원장

30년 전인 1988년, 열다섯 살 문송면이 있었다. 그리고 문송면을 보며 직업병 인정투쟁에 나선 원진노동자들이 있었다. 88올림픽의 열기로 뜨겁던 그해 여름 수은에 중독돼 사망한 고 문송면군이 우리에게 던진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열다섯 살 어린 나이로 야간노동에 시달리며 삶을 꾸리던 조건뿐 아니라 입사 두 달 만에 사망에 이를 정도로 열악한 노동환경까지. 그것은 올림픽 열기에 들떠 있던 대한민국의 또 다른 단면이었다.

문송면 산업재해 인정투쟁은 이후 원진레이온 직업병 인정투쟁으로 이어졌다. 단일공장으로는 최대 규모인 915명의 직업병 피해자와 231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사건이다. 10년 넘게 원진레이온 투쟁이 전개된 결과 직업병전문병원(녹색병원)과 연구기관(노동환경건강연구소), 복지관으로 구성된 원진직업병관리재단이 만들어졌다.

1988년 문송면·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의 직업병 인정투쟁은 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을 촉발시켰다. 한국에서 노동자 건강권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계기가 됐다. 그러나 투쟁의 성과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삼성에서는 320명의 직업병 피해자와 118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30년이 지났지만 문송면·원진레이온 직업병 문제는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열다섯 살의 문송면이 그랬던 것처럼, 산재의 그림자는 청소년·청년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현장실습생으로 LG유플러스 고객센터에서 주어진 ‘콜수’를 채워야 했던 여고생은 너무 괴로워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제주도의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은 프레스에 끼여 숨을 거뒀다. 외주업체 소속으로 서울지하철 스크린도어를 혼자서 수리하고 밥 먹을 시간도 없어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던 열아홉 살 수리기사 김군은 문과 열차 사이에 끼여 목숨을 잃었다.

또한 전남 광주에서는 형광등 제조공장 철거작업을 하던 노동자들이 수은에 중독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문송면군을 죽음으로 몰고 간 수은중독이 30년이 지난 지금도 노동자들을 병들게 하고 있다. 우리를 또 충격에 몰아넣은 사건은 1960년대 이후 국제적으로 보고된 적이 없다는 메탄올 중독사고가 2016년 일어났다는 것이다. 사용하는 물질도 모른 채 일하던 청년노동자들은 실명했다. 심지어 고용노동부 감독을 받은 사업장에서도 메탄올 중독사고가 발생했다.

11년간 삼성에서 직업병으로 사망한 노동자는 118명이다. 직업병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반올림의 농성투쟁은 문송면 기일인 7월2일에 1천일을 맞이했다. 하지만 삼성은 산업통상자원부의 비호 아래 작업환경측정결과 보고서 공개를 막았다. 산재 피해자와 유족들의 산재 입증을 방해하고 지역주민의 알권리도 침해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이다.

시대는 다르지만 우리는 같은 아픔을 겪고 있다. 강산이 세 번이나 변했지만 일하는 노동자들의 고통은 여전하다. 이제 죽음의 공장을 안전한 공장으로 바꿔야 한다.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여전히 매해 2천여명의 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하는 나라, 대한민국의 산재사망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의 세 배에 달할 정도로 높다.

문송면·원진노동자 산재사망 30주기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은 산재가 일상이 된 사회를 바꾸기 위한 각계각층의 과감하고 근본적인 변화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노동자가 아프지 않고 병들지 않고 죽지 않을 권리를 찾기 위한 사회 전반의 법·제도 정비를 위한 실효성 있는 논의가 진행돼야 한다.

범국민적인 산재·직업병 추방캠페인이 들불처럼 일어나 죽지 않고 함께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안전한 현장이 되길 희망한다. 기업의 이윤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우선인 건강한 사회가 빠른 시일 내에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이제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 지금부터라도 시작하지 못하면 제2·제3의 문송면·원진레이온·삼성반도체 참사는 앞으로도 30년 동안 계속될 수 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