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선휴 변호사(참여연대 공익법센터)

대상판결 : 헌법재판소 2018.5.31. 선고 2013헌바322 등 결정


민주적 정당성을 갖추지 못한 정권일수록 비판의 목소리를 억압하고 시민 간 소통과 연대를 차단한다. 1960년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군사주의 정권도 예외 없이 집회·시위를 철저히 통제했다. 군사혁명위원회는 종교집회를 제외한 일체의 옥내·옥외 집회를 금지했고, 그 후신인 국가재건최고회의도 집회에 관한 임시조치법을 통해 11개 유형의 옥내집회만 허용했다. 62년 12월31일 국가재건최고회의가 제정한 구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도 집회·시위를 억압하기 위해 각종 규제를 도입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절대적 집회금지장소 조항이다.

국회는 언제부터 집회·시위의 성역이었나

국회의사당뿐 아니라 대통령관저, 중앙관서, 시·도청, 각급 법원 등 국가권력이 작동하는 대부분의 장소가 절대적 집회금지장소였다. 민주화 이후에 집회금지장소에서 중앙관서, 시·도청, 역이 삭제되고 금지구역이 200미터에서 100미터로 축소됐지만 절대적 집회금지장소의 기본 틀은 그대로 유지됐다. 2006년에는 국회 앞 절대적 집회금지에 대해 헌법소원이 제기됐지만 2009년 말 헌법재판소는 합헌 결정을 내렸다(헌법재판소 2009.12.29. 선고 2006헌바20 등 결정). 국회가 수행하는 헌법적 기능은 그 특수성과 중요성에 비춰 “특별하고 충분한 보호”가 요청되고, 국회 업무는 성질상 휴일이나 휴회기에도 중단되지 않기 때문에 예외적으로 집회·시위가 가능한 경우를 설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렇게 62년 만들어진 집시법의 독소조항은 그 원형을 유지한 채 50년 넘게 살아남았다.

사건의 배경

2012년 이태호 참여연대 당시 사무처장도 절대적 집회금지장소 조항 위반으로 재판을 받았다. 2011년 11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에 반대하며 국회 담장 근처까지 행진했다가 기소된 것이다. 재판과정에서 절대적 집회금지장소 조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벌금 250만원이 선고됐다. 결국 2013년 9월 헌법재판소에 집시법 11조1호 국회의사당 부분에 대한 헌법소원을 청구하게 됐다.

<심판대상조항>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2007.5.11. 법률 제8424호로 전부개정된 것)

11조(옥외집회와 시위의 금지 장소) 누구든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청사 또는 저택의 경계 지점으로부터 100미터 이내의 장소에서는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해서는 아니 된다.

1. 국회의사당, 각급 법원, 헌법재판소

주권자가 국회를 만나는 곳 100미터 전

국회는 주권자 국민에 의해 선출돼 권한을 위임받은 국회의원이 모인 곳이다. 이곳에서 거의 모든 국가·사회 현안에 대한 입법작용이 이뤄진다. 국회의원이 모든 개별 사안에서 국민의 의사에 반드시 기속되지는 않더라도, 대의민주주의가 정당성을 가지려면 주권자의 의사가 국회에 충분히 전달되고 반영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국회가 국민 다수 의견과 괴리된 결정을 내리거나 무책임한 행태를 보여도 국민이 국회에 의견을 전하거나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법은 매우 제한적이다. 정치적·경제적 권력도 없고 언론접근권도 갖지 못한 평범한 시민의 목소리, 나아가 더욱 소외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목소리는 국회에 닿기 어렵다. 평범한 시민과 소수자를 위한 소통과 연대의 권리로 헌법이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지만, 집시법에 의해 유독 권력이 행사되는 장소에서는 100미터 밖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국회 담장 앞에서 소규모 기자회견을 열어 입장을 발표하는 것까지 경찰의 자의적 법 집행에 의해 빈번이 해산명령을 받고 집시법 위반으로 기소돼 처벌받는 일이 반복됐다.

2013년 헌법소원을 청구한 뒤에도 같은 조항에 대해 네 건의 헌법소원이 더 청구됐고, 올해는 법원도 세 건의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민의의 전당 앞에서 주권자가 모여 의사를 표현했다는 이유로 형사처벌을 받는 위헌적 상황이 계속되자 시민들이, 심지어 법원마저도 해당 조항에 대해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요구한 것이다.

헌법불합치 결정의 의미

헌법재판소는 5월31일 국회의사당 경계지점 100미터 이내에서 절대적으로 집회·시위를 금지하는 집시법 11조1호 중 ‘국회의사당’에 관한 부분이 ‘헌법에 합치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렸다.

심판대상조항이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해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는지 여부를 심사했는데, 국회의 헌법적 기능을 보호한다는 입법목적은 정당하고 국회 인근에서 전면적으로 집회를 금지하는 것도 국회의 기능을 보호하는 데 기여하므로 적합한 수단이라고 봤다.

그러나 ‘민의의 수렴’이라는 국회 기능을 고려할 때 국회가 부당한 압력으로부터 보호될 필요성은 원칙적으로 국회의원에 대한 물리적 압력이나 위해가능성 및 시설 출입이나 안전에 위협을 가할 위험성으로부터의 보호로 한정돼야 한다고 판시했다. 결국 해당조항의 입법목적도 그러한 제한적인 범위에서만 정당화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심판대상조항은 소규모 집회, 휴일이나 휴회기에 개최되는 집회 등 국회 기능에 직접적인 위협을 초래할 가능성이 없는 집회·시위까지도 광범위하게 일률적·전면적으로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기본권 침해의 최소성 원칙에 반한다는 것이 위헌결정에 이르게 된 핵심 논거였다. 또한 집시법과 형법은 폭력집회에 대해서는 이미 충분한 규제수단을 두고 있기 때문에 일률적·절대적 금지가 아니더라도 국회의 헌법적 기능은 충분히 보호될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됐다. 법익의 균형성 판단과정에서는 “국민주권에 바탕을 둔 대의제 민주주의를 충실하게 실현하기 위해서는 국회가 국민의 목소리에서 벗어난 곳에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도 명백히 선언했다.

이로써 국가기능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대부분의 국가기관을 집회·시위의 절대적 성역으로 만들었던 권위주의 입법의 주요 부분이 55년 만에 헌법의 심판을 통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남은 과제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헌법재판소는 단순위헌 결정 대신 잠정적용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며 2019년 12월31일까지 국회가 집시법 11조를 개정해 위헌성을 제거하도록 명령했다. 이제 국회는 헌법재판소 결정 취지에 맞게 집시법을 개정해야 한다. 헌법재판소가 결정문에서 국회 기능을 침해할 가능성이 없는 집회를 몇 가지 예시했지만, 이는 기본권 침해가 명백한 대표적 사례를 든 것이지 오로지 그 경우만 집회·시위가 가능한 것으로 결정의 의미를 협소하게 해석해서는 안 된다.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는 단순히 소규모, 휴일 등에 예외적으로만 허용되는 것이 아니라 평화적 집회라면 원칙적으로 그 규모나 시간에 불문하고 넓게 보장돼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국회가 해결해야 하는 본질적 과제는 보다 가까이에서 주권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의정활동에 임하는 것이다. 그럴 때만이 국회가 시민의 불신을 해소하고 민주주의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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