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용근 변호사(민변 사무차장·공익인권변론센터 상근변호사)

초여름 새벽을 여는 둔탁한 소리에, 구보는 잠을 깬다. 새벽 네 시 반, 대문 앞에는 오늘자 조간신문이 누워 있지만 감히 열어 보기가 두렵다. 요새 같은 세상을 영화로 그려 내면 너무 작위적이어서 관객들이 쳐다보지도 않을 거라는, 어젯밤 이상(李箱)의 푸념이 떠오른다. 거대한 비극 한 귀퉁이의 엑스트라인 구보는, 불안한 마음을 숨긴 채 짐짓 신문 첫 장을 넘겨 본다.

구보는 성실히 살아왔다. 학교에서 시킨 것 잘하고, 부모님 말씀 잘 듣고, 법 잘 지키고, 세금 제때 잘 내며 지내 왔다. 법 없이도 살 사람, 구보는 자신을 이렇게 정의하곤 했다. 그런데 요새 신문에는 ‘법 없이도 살 사람들’보다 ‘법 없이 산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다. 구보가 알아 왔던 소박한 일상과 달리 세상은 법은 고사하고 상식도 없이 돌아가는 것 같다.

오늘도 어지러운 일상이 신문 위에 구더기처럼 기어 다닌다. 현직 경찰이 사용자인 척 전무니 상무니 하며 노사협상에 관여했다고, 고용노동부 장관 보좌관 출신의 어느 인사는 노조파괴를 위해 회사에 거액의 돈을 받고 자문을 해 줬다고, 노동부 공무원은 보고서를 조작해서 발표했다고, 심지어 법관이 어떤 종류의 소송을 누가 제기하도록 유도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따위의 이야기를 나누고 보고서에 끄적이기도 했다고, 이런 이야기들을 하루치 신문에서 쓱 읽고 난 구보는, 그저 헛구역질을 꺽꺽 해 댈 뿐이다.

재작년 겨울, 구보는 이상과 함께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왔다. 그해 겨울은 유독 길고 추웠지만, 끈기는 구보의 제일(第一) 무기였다. "이게 나라냐"는 구호를 목 놓아 외치며 청와대를 삼킬 듯한 위용을 보였던 촛불 민심은 무능하고 부패했던 한 대통령을 탄핵시키고 구속시켰다. 그리고 돌고 돌아 다시 여름이 오기까지, 드러난 적폐의 상흔은 깊고도 길었다.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대통령이 업무를 개시한 지 한 해가 지나도록, 적폐 청산 구호가 아직까지도 현재 진행형이라니. 세계 1위를 대파한 월드컵 소식조차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조간신문을 덮으며, 구보는 신음한다.

오늘 신문에 나온 경찰·판사·공무원…. 그저 글쟁이일 뿐인 비정규직 프리랜서 구보로서는 정해진 때 정해진 월급 나오고, 사회적으로도 선망받는 그들이 부러웠다. 그런데 정작 그들은 겉으론 만인의 존경을 취하고, 속으론 수많은 구보들의 믿음을 배반했다. 지금껏 그들 중 누구 하나 구보들에게 사과다운 사과를 한 사람이 없고, 책임다운 책임을 진 사람이 없다. 많은 적폐 인사들은 공고한 시스템 속에서 오늘도 안온한 하루를 보낸 반면 어제도 그제도 오래전 어느 날도 궁핍하고 억울하며 힘겨웠던 노동자들은 오늘 서른 번째 동료의 주검을 거둬야 하는 구슬픈 현실이, 구보는 섬뜩하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술자리에서 이상이 알 듯 모를 듯한 목소리로 곱씹은 아홉 글자는 어찌 보면 문제 해결의 ABC일지 모른다. 그리고 다른 모든 것을 위해서, 진상규명은 그 시작이 될 수밖에 없다고 구보는 생각한다. 그런데 너무 많은 곳에서 너무 많은 것들을 감추고 있다. 기업의 비밀이라며, 다른 절차에 방해가 된다며, 심지어 이미 컴퓨터를 다 지워 버렸다며…. 글로 먹고사는 구보 입장에서 추리소설의 대원칙을 되뇌어 본다. 그것은 바로 “숨기는 사람이 범인”이라는 것이다.

책임자 처벌은 어떤가. 노동자를 죽인 노동부 공무원 몇 사람을 징계하면, 법과 원칙을 배반한 판사 몇 명을 파면하면, 대기업의 가짜 임원이 된 현직 경찰을 구속하면 그걸로 끝나는 일일까. 세상이 또다시 바뀌면, 제2·제3의 그 누군가가 다시 그 자리에 앉으면, 또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은 아닐까. 책임자 처벌은 그 자체로 중요한 것이지만, 재발방지를 위한 틀 자체의 변화 없이는 그저 시늉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구보는 생각해 본다. 적어도 누군가 그릇된 일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더라도, 절대로 그렇게 할 수 없는 시스템을 만들어 둬야 한다. 그릇된 일을 하면 반드시 엄중하게 처벌받고, 사회적으로 모욕당한다는 사실을 처절한 마음으로 공유하는 제도, 지금 우리에겐 이것이 필요할지 모른다.

구보들은 서로의 합의를 통해 국가를 만들었다. 권한을 누군가에게 몰아줬더니, 그 절대자가 권한을 제멋대로 행사한 역사가 있었다. 그래서 구보들은 삼권분립 같은 도구를 통해 권한을 나누고, 서로 견제하면서 권한을 어느 한쪽이 남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들 서로가 짬짜미를 통해 권한을 공유한 흔적이 드러나는데도, 구보들이 이에 문제를 제기하자 자신에게 배분된 권한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역정을 내고 있다. 한 가지 분명히 할 것은 사실 그 모든 권한은 원래 구보들 것이었다는 점이다. 헌법 1조에 있으니, 그들이 모르지는 않으리라.

이제 구보들은 다시 움직이기로 한다. 대통령이 바뀌었다고 적폐 청산이 끝난 게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준 그들에게, 구보는 오히려 고맙기까지 하다. 피곤하다고? 천만에. 누워 있다가 불타 죽을 수는 없는 일이다.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불을 꺼야 한다. 원래 발 앞의 불은 나부터 꺼야 하는 법이다. 이상, 같이할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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