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몇 달 사이 한반도 정세가 크게 변했다. 올해 초만 해도 미국의 선제공격이 거론됐지만, 6월에 사상 최초로 북미회담이 열렸고, 한미군사훈련 중단과 남북 경제협력도 빠르게 진행 중이다. 한반도 정세를 두고 롤러코스터 같다는 외국 언론들의 평가가 과장이 아니다.

그런데 한반도 정세가 이렇게 변한 원인이 무엇일까. 미국의 대북 전략이 변한 것일까. 아니면 트럼프가 노벨평화상을 받자고 벌인 세기의 버라이어티쇼인 것일까. 우선 트럼프가 추진 중인 대외정책들은 분명히 이전 미국 엘리트들의 정책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냉전 해체 이후 미국의 세계전략은 워싱턴컨센서스로도 불리는 금융세계화와 군사세계화가 핵심이었다. 자유시장경제와 소련사회주의권으로 양분된 세계는 소련사회주의권 몰락 이후 미국 금융자본 주도의 세계화로 통합됐고, 금융시장의 이해와 법칙에 따라 세계적 질서가 구축됐다.

그런데 따져 보면 미국의 세계전략 변화를 언제나 최전선에서 수행한 것이 바로 한국이었다. 냉전시기 한국의 역할(심지어 베트남전 참전까지)이야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고, 냉전에서 금융세계화로 변화하는 과정에서도 한국은 특별한 역할을 했다. 1997년 외환위기가 바로 그것이다. 미국의 냉전정책을 배경으로 성장한 우리나라는 1990년대 소련 몰락 이후 미국의 금융세계화 전략에 섣부르게 참여하다 1997년 외환위기를 겪었고, 외환위기는 한국을 냉전의 최전선에서 국제통화기금(IMF)의 금융세계화 구조조정의 최전선으로 빠르게 이동시켰다. 한국의 당시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국제통화기금과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개발도상국의 금융세계화 개혁의 모범으로 평가받았다. 한국은 냉전에서나 금융세계화에서나 미국 세계전략의 ‘쇼케이스’ 역할을 충실히 한 셈이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미국의 세계전략 변화에서도 한국은 미국의 선봉대 역할에 충실했다. 미국은 2000년대 중반부터 세계 경제의 중심을 대서양 블록에서 아시아·태평양 블록으로 이동시키려 했는데, 부시 행정부의 엘리트 그룹이던 네오콘은 유럽을 ‘늙은 대륙’이라며 평가절하했고, 세계금융위기 이후 오바마 정부는 ‘아시아로의 귀환’으로 불리는 동아시아 경제, 군사정책을 더 강하게 추진했다.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바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한미일 군사동맹이었다.

한미FTA는 1990년대 북미자유무역협정 이후 가장 규모가 크고 강력한 자유무역협정으로, 미국은 이것을 기준으로 이후 태평양 지역의 자유무역협정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2010년부터 추진했다. 세계금융위기 이후 혼란을 벗어나지 못하는 유럽을 대신해 동아시아 경제동맹을 21세기 미국의 경제 파트너로 삼겠다는 중장기적 계획이라 할 수 있다.

특히 TPP와 한미일 군사동맹은 미국의 고분고분한 하위 파트너 역할을 거부하는 중국에 대해서 중요한 위협 수단이기도 했다. 미국은 세계금융위기 이후 중국과의 전략적 대화를 강화하면서도 동시에 중국을 미국 세계패권의 최고 위협으로 간주했다. 미국에게 중국은 단순한 개발도상국이 아니었기 때문에 포섭과 위협이 더욱 중요했다. 중국은 대미 수출 흑자를 다시 미국 자본시장에 투자하는, 세계적 달러 환류의 핵심이었다. 중국은 미국 달러가 세계화폐로서 역할하도록 만드는 금융세계화의 핵심 파트너다. 중국이 금융세계화에서 이탈하면 달러의 안정성도 위태로워진다. 한국은 이런 점에서 미국의 대중국 전략의 핵심 동맹인 셈이다. 2016년 사드배치만 봐도 이를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트럼프는 현재 이 모든 미국 전략을 뒤집고 있다. TPP는 탈퇴했고, 한미일 군사동맹은 약화시키고 있으며, 금융세계화의 파트너 중국에 대해서는 무역전쟁을 선포했다. 최근의 북미 간 관계변화 역시 기존 미국 정부들의 대중국 압박의 일환으로 이뤄지던 북한 관리전략에서 벗어난 듯 보인다. 미국 민주당 싱크탱크들이 올해 초부터 트럼프의 보호무역정책과 대북정책에 대해 일제히 비난을 퍼붓는 이유도 단지 트럼프가 싫어서가 아니란 것이다. 트럼프 정책은 “미치광이” 교섭전술로만 보기에는 미국의 세계패권 전략에서 너무나 벗어나 있다.

미국의 지배 엘리트들이 분석하는 것처럼 현재 트럼프 정책은 일관성도, 그렇다고 미국에 실제적 이득을 가져다주는 것도 없다. 미국은 대중국 무역전쟁으로 손실이 더 크고, 한미일 군사동맹 약화로 잃을 동아시아 지분이 더 크다.

과연 세계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트럼프의 반인종주의-보호무역 포퓰리즘 정책은 지속가능한 것일까. 트럼프가 국내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잃을 경우 환태평양자유무역과 한미일 군사동맹은 다시 예전 궤도로 복귀하는 것일까. 일각에서는 '트럼프 노벨상'을 이야기하며 한반도의 새로운 평화를 낙관적으로 보기도 하지만, 내 생각에 미국의 혼란과 세계정세의 변동성은 오히려 이전보다 더 커졌다. 아직 확정적으로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는 없겠지만, 환호와 낙관보다는 미국의 세계패권 전략을 보다 거시적이고 역사적으로 바라봐야 할 때임은 분명하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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