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19.10.24 목 08:00
상단여백
HOME 칼럼 연재칼럼 비정규직 활동가의 차별없는 세상 속으로
변화하는 노동현실에 늘 뒤처지는 대법원윤애림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 윤애림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얼마 전 ㈜재능교육과 위탁계약을 맺고 일하는 학습지교사들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며, 재능교육이 전국학습지산업노조 조합원인 학습지교사와의 위탁계약을 해지한 것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거의 모든 언론이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노동기본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보도했지만, 필자는 만시지탄(晩時之歎)의 당혹감을 먼저 느꼈다.

이미 20년 전인 1999년 재능교육 학습지교사들은 노조를 결성했고 노동조합 설립신고증도 받은 바 있다. 설립 이후 다섯 차례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등 정상적 노사관계도 형성됐다. 그런데 2007년 사측은 학습지교사의 임금(수수료) 체계를 개악하면서 단체협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했다. 2008년에는 노조를 탈퇴하지 않은 학습지교사 전원과 계약을 해지했다.

이러한 부당노동행위에 맞서 학습지노조 조합원들은 노숙농성·단식·삭발·고공농성 등 안 해 본 투쟁 없이 7년을 싸웠다. 하지만 경찰·검찰·정부·법원 그 누구도 학습지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2014년 고등법원은 재능교육 학습지교사들이 노조법상 근로자임을 인정한 1심 판결을 뒤집기까지 했다. 결국 재능교육 학습지노동자들은 투쟁으로 2014년 단체협약을 다시 체결하고 현장으로 돌아갔다. 그로부터도 4년이나 지나서 나온 대법원 판결은 재능교육의 부당노동행위를 인정했지만, 수년간 노동자들이 입은 피해에 대해서는 아무런 구제조치를 하지 못했다. “너무 늦은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는 말은 이런 경우에 꼭 들어맞는 말이다.

게다가 대법원은 이번 판결을 통해 처음으로 노조법상 근로자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을 제시했는데, 그 구체적 기준 역시 심각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대법원은 △노무제공자의 소득이 특정 사업자에게 주로 의존하고 있는지 △특정 사업자가 노무제공자와 체결하는 계약 내용을 일방적으로 결정하는지 △노무제공자가 특정 사업자의 사업수행에 필수적인 노무를 제공함으로써 특정 사업자의 사업을 통해 시장에 접근하는지 △노무제공자와 특정 사업자의 법률관계가 상당한 정도로 지속적·전속적인지 △사용자와 노무제공자 사이에 어느 정도 지휘·감독관계가 존재하는지 △노무제공자가 특정 사업자에게 받는 임금·급료 등 수입이 노무제공의 대가인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특정 사업자’에게 지속적·전속적으로 노동을 제공하고 그 특정 사업자에게 받는 보수가 소득의 주요 부분을 차지하는 전속적 노동자를 기준으로 삼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문제는 점점 더 많은 노동자들이 근로계약을 맺고 있든지 아니든지 간에 특정 사업자에게 전속돼 있지 못한 현실에 있다. 대학 시간강사 예를 들어 보자. 시간강사들은 대학 강의의 60% 이상을 담당하고 있고 대학측이 일방적으로 마련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있지만, 한 대학과의 계약기간은 길어야 6개월이다. 강의한 시간에만 보수가 책정돼 있기 때문에 1주일에 3시간짜리 한 과목을 맡아도 월임금은 최저임금에 한참 미달한다. 따라서 생계를 위해서는 여러 과목, 여러 학교를 위해 노동할 수밖에 없지만 이것도 원하는 대로 얻을 수 있는 일이 아니어서 다른 프로젝트도 참여하고 여러 부업을 병행할 수밖에 없다.

이런 단시간 노동은 지난 20년간 가장 빠르게 급증한 비정규직 고용형태이기도 하다. 근래에는 사용자가 부를 때만 일할 수 있는 호출노동도 증가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노동형태라고 선전되기도 하지만 그 실태를 알고 보면 고용이 극도로 불안정한 일용직에 다름 아니다. 이들은 다른 대법원 판결에서 인정했듯이 “근로제공관계가 단속(斷續)적인 경우가 일반적이며 특정 사용자에게 전속돼 있지 않는 등의 사정이 있다 하더라도, 최근에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는 시간제 근로자에게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볼 수 있어 이러한 사정만으로 근로자성을 부인할 수 없는” 노동자들이다(대법원 2005두13018·13025 판결).

변화하는 노동현실에 늘 뒤처지는 대법원 판결을 딛고서, 모든 노동자의 노조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입법에 나서야 할 이유가 또 한 번 확인된 셈이다.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laboryun@naver.com)

윤애림  labortoday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윤애림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2
전체보기
  • Asd 2018-09-21 04:22:04

    불체자 노조까지 허용한 나라인데 법원이 퍽이나 뒤쳐졌겠다..   삭제

    • 2018-06-28 09:37:15

      사법농간 재판거래 대법원 판사들 탄핵이 필요하고
      대법관은 선거로 선출해야 한다
      대법관들은 자신들은 인간이 아닌 줄 알고 있는 듯   삭제

      Back to Top